익숙한 이름, 생소한 얼굴
감칠맛 나는 생선의 왕

냉이와 쑥 

"맛있는 요리의 근본은 재료다." '일본 요리의 전설'로 불리는 기타오지 로산진의 말입니다. 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린 음식이 곧 '맛있는 음식'이라는 설명입니다. 지역마다 훌륭한 음식 재료가 따로 있듯, 제철 재료도 따로 있습니다. 무엇이 제철 재료이고, 어떻게 다듬어야 하는지,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 잘 알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데 한걸음 가까워집니다. 먹는다는 것은 곧 행복해지는 일입니다. 직접 요리를 하지 않더라도, 재료 본연의 맛과 가치를 알고 먹는다면 행복은 증폭합니다. 계절의 맛을 알면 자연을 보는 눈도 달라집니다. 발에 치이는 이름 모를 잡초가 어제 먹은 산나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말이죠. 잘 알고 잘 먹는 행복을 함께 나눠볼까 합니다.

3월 중순을 지난 지금 냉이는 사실 다소 억세다. 냉이를 캐는 적절한 시기는 늦가을부터 4월 초까지다.

냉이는 늦가을 싹을 틔운다. 겨우내 추위를 이긴 냉이는 동장군이 주춤할 때를 놓치지 않고 훌쩍 자란다. 보통 냉이는 4월에 씨앗을 뿌린다. 늦게 자란 냉이는 6월께 씨앗을 맺는다.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냉이는 장소를 크게 가리지 않고 잘 자란다.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다는 뜻. 하지만 냉이라는 이름은 익숙할지언정 모양새는 생소하다.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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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을 피운 냉이. 꽃잎 네 개가 십자를 이룬다. / 최환석 기자

냉이는 뿌리에서 잎이 나와 둥글게 뭉쳐난다. 중앙 한 점에서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모양이다. 냉이 같은 근생엽이 방사형으로 퍼지는 모습은 로제트라 통칭한다.

장미꽃처럼 보이기도 한다. 별을 닮기도 한다. 냉이는 거미줄처럼 땅바닥에 엎드려 지열을 받아 겨울을 난다.

로제트 형태라고 모두 냉이는 아니다. 지칭개, 뽀리뱅이, 서양민들레, 속속이풀, 황새냉이, 애기똥풀과 냉이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냉이 잎은 처음 났을 때 혀 모양이다. 자라면서 잎 가에 거친 톱니가 생긴다. 특유의 향도 짙다. 4월 중순 이후 자란 냉이는 향으로 구별하기 어렵다.

냉이를 캐내 뿌리의 향을 맡는다. 당장 캐낸 냉이는 흙냄새가 섞였다. 뜸을 들였다가 다시 맡으니 고유의 향이 은은하다.

벌써 꽃을 피운 냉이도 보인다. 꽃잎 네 개가 십자를 이룬다. 냉이는 따로 번식에 공을 들일 필요가 없다. 잘 자라는 데다 알아서 씨앗을 잘 흩뿌려서다. 직접 키우려면 4월 말이나 5월 초 뿌리째 뽑아 말린 냉이를 치면 씨앗을 떨어낸다.

흔히 봄에 냉이 캐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산에서 냉이 캐는 모습이 잦은데, 엄밀히 따지면 불법이다. 모든 임야에는 주인이 따로 있다. 주인 허락을 받지 않고 산나물을 캐서는 안 된다.

냉이를 재료로 요리를 하려면 흙을 제거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30분가량 물에 담갔다가 재차 흐르는 물에 씻는 것이 좋다. 여러 번 씻었어도 흙이 씹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흙만 잘 씻어내면 잎줄기부터 뿌리까지 훌륭한 재료가 된다. 그러니 캘 때 뿌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봄이 제철이라고 소개하지만, 가을 냉이가 들으면 섭섭하겠다. 어린 가을 냉이로 국을 하거나, 양념을 무쳐 먹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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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에 납작 엎드린 냉이는 지열을 받아 겨울을 난다. 냉이처럼 근생엽이 방사형으로 퍼지는 모습을 로제트라 부른다. / 최환석 기자

쑥도 냉이와 마찬가지로 흔하다. 흙이 있는 곳에 어김없이 쑥이 있다. 쑥은 냉이보다는 구별하기가 쉽다. 특유의 색과 향, 흰 털로 구분한다. 잎은 국화잎과 비슷한데, 잎 뒷면이 흰색을 띠면 쑥이다.

쑥은 활용법이 다양하다. 당장 목욕탕에 가보자. 사우나 안에 쑥을 걸어둔 곳이 더러 있을 정도다. 이른 봄 어린 쑥은 국으로 먹으면 좋다. 덖어서 차로 마시기도 한다. 음식 재료로 쓰려거든 4월 말이 좋다고 하나, 세지 않은 지금의 쑥도 훌륭한 음식 재료다.

냉이와 쑥을 캐어 잘 씻은 다음, 밀가루 옷을 한 번 입힌다. 냉이와 쑥은 덜어내고, 남은 밀가루에 계란을 넣어 잘 섞는다. 이렇게 만든 튀김옷을 냉이와 쑥에 입혀 기름에 튀겨내면 바삭바삭한 식감과 봄 향기가 어우러진 음식이 탄생한다.

남은 냉이와 쑥은 무쳐 먹어도 좋겠다. 특히 쑥 무침은 쌉쌀한 것이 입맛을 돋운다. 쑥은 도다리와 함께 국을 해 먹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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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은 도다리는 살을 한 차례 발라내고, 쑥을 넣어 담백하고 시원하면서 특유의 향이 물씬한 도다리쑥국을 해먹었다. / 최환석 기자

도다리쑥국 만드는 법

물에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5분가량 끓여 국물을 낸다. 손질한 도다리를 깨끗하게 씻어 국물에 넣고 한 번 끓인다. 이때 먹기 편하도록 도다리 살을 발라내기도 한다.

물을 추가하면서 된장을 한 숟갈 정도 적당히 넣는다. 나중에 싱거우면 간장으로 간을 한다. 이제 팔팔 끓이는데, 쑥의 향을 제대로 즐기려면 마늘은 넣지 않는다.

냄비 뚜껑을 열고 마지막으로 쑥을 넣는다. 뚜껑을 닫지 않은 상태에서 1분가량 끓이면 숨이 죽는다. 불을 끄고 맛있게 먹는다. 기호에 따라 도다리쑥국에 들깨를 넣는 집도 있다.

도미

도미 준말 '돔'이 이름에 붙은 물고기는 극조가 특징이다. 가시처럼 뻗은 지느러미 말이다. 납작하면서 몸 높이가 높다. 몸에서 머리가 차지하는 부분이 넓다.

도미 구경을 하려고 창원 마산수협남성공판장 옆 시장을 들렀다. 이른 새벽 경매를 마친 중매인들이 점포 앞에 생선을 깔고 손님을 맞는다.

붉고 머리가 큰 물고기 두 마리와 검은빛이 돌며 색이 어두운 물고기 한 마리가 쟁반 위에 놓였다. '생선의 왕'이라 불리는 '참돔'이다. 자연산 도미는 통영 바다에서 잡아 온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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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돔. 붉은색이 강한 아래 두 놈이 자연산. 맨 위가 양식 도미다. 색, 콧구멍, 꼬리지느러미로 구별하면 된다. / 최환석 기자

붉은색이 강한 놈은 자연산이며, 어두운 빛이 도는 놈은 양식이다. 자연산과 양식을 구별하려면 몸의 색과 더불어 콧구멍을 보면 된다. 콧구멍이 선명하게 두 개면 자연산, 하나로 이어진 듯 보이면 양식이다. 양식 도미는 갇혀 지낸 탓인지 꼬리지느러미가 성하지 않고 많이 닳았다.

3월 말을 기준으로 한 마리 2만 원 선. 설 명절 지난 덕분에 비교적 싸다. 자연산과 양식 가격 차이는 크지 않다. 오히려 양식 도미에 DHA, EPA(불포화 지방산)가 더 많단다.

요즘은 양식으로 참돔 공급이 늘면서 감성돔이 인기 1등 자리를 넘본다. 참돔보다 느리게 커서 양식 어종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감성돔은 멀리서 보면 대체로 검다. 가까이 보면 은빛을 띤 청색이다. 어두운 회색 가로줄 무늬가 더러 있다. 머리가 큰 모양새가 딱 도미스럽다. 참돔보다는 크기가 작다.

도미는 맛있다. 개인적인 입맛으로 평가하는 말이 아니다. 감칠맛을 내는 글루탐산과 이노산 등 성분이 많아서다. 지방은 적고 단백질은 많다. 비타민 B1을 품어 피로 해소에도 도움을 준다. 몸속 나트륨 배출을 돕고 혈압을 낮추는 칼륨·마그네슘도 많다.

좋은 도미를 고르려면 눈과 아가미, 꼬리지느러미를 보자. 신선한 도미는 눈이 맑다. 아가미는 붉은색이 뚜렷하면 좋다. 눈과 아가미로 고르기 어려우면 꼬리지느러미가 끝까지 곧게 뻗은 놈을 찾으면 된다.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씻고 나서 물기를 뺀다. 비늘이 크고 딱딱해서 꼼꼼하게 벗겨야 한다. 흡수력 좋은 종이 수건으로 감싸 랩을 씌우고 보관하면 된다. 머리는 찜, 탕용 재료로 쓴다. 육수를 낼 때 써도 좋다. 버릴 것 전혀 없는 훌륭한 음식 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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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성돔. 대체로 검은 편인데, 가까이 보면 은빛을 띤 청색이다. 참돔보다는 크기가 작다. / 최환석 기자

도밋과 생선은 잔치나 제사가 있을 때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대접을 받는 물고기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도미를 일품으로 친다. 값어치가 있는 물건은 흠이 있어도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잖은가. 일본에서는 비슷한 뜻으로 '썩어도 도미'라는 말을 쓴다.

일본 미식가 기타오지 로산진(1883~1959)은 4·5월 아와지 섬과 혼슈 사이 바다인 아카시 해협에서 잡은 도미가 가장 맛있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조선 도미'를 극찬한 바 있다. 책 <로산진의 요리왕국>을 보면, 그는 1928년 옛 가마터를 탐사하고 도자기 원료를 모으려고 조선을 찾았다. 그해 5월 일정이었는데, 그때 기타오지 로산진은 옛 마산 등을 찾아 도미를 먹고 감탄한다.

"여기서 뜻밖에도 정말 맛있는 도미회를 듬뿍 먹었다. 내가 이제껏 맛본 아카시 도미보다 훨씬 나았다. 나는 가는 곳마다 먹고 또 먹으며 그 맛에 감탄했다. 이 지역에 이주해 온 일본인과 현지 지역민만 맛보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울 정도였다."

한반도 남단에서 자란 도미는 알을 낳으려고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 동쪽으로 향한다. 이 까닭에 아카시 도미가 맛있다는 4·5월께 한반도 남단과 일본 동쪽에서 잡힌 도미는 같은 맛을 선보인다. 부지런한 도미 덕에 한국인과 일본인은 같은 도미 맛을 공유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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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 마산수협남성공판장 주변 풍경. 질 좋고 값싼 생선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이다. / 최환석 기자

도미 회

냉동 기술 발달로 대중화

도미는 쪄서 먹기도 하지만 횟감으로도 훌륭한 선택지다. 보통 살아 있는 생선을 잘라서 간장 등에 찍어 먹는데, 기본적으로 일본식 사시미다.

책 <식탁 위의 한국사>에 따르면, 지금의 사시미는 일본 에도시대 에도 앞바다에서 신선한 생선이 잡히면서 시작됐다. 냉장이 어려운 환경이어서 도미 사시미는 에도에서만 먹을 수 있었다.

냉동 기술 발달로 신선한 생선 사시미를 어디서든 먹을 수 있게 됐다. 기타오지 로산진이 극찬한 마산 도미는 시모노세키로 향했다. 1905년부터 조선 부산과 시모노세키 사이에 냉동 수송이 시작됐고, 기타오지 로산진이 조선을 찾은 1928년에도 대부분 도미가 시모노세키에서 온 직매 선박을 타고 일본으로 팔려 갔다.

해방 이후 사시미는 생선회로 대체됐다. 한국식 회는 바로 잡은 생선을 좋은 횟감으로 본다. 일본식 사시미는 대부분 생선살을 두껍게 썰어낸다. 생선 본연의 맛을 살리려는 까닭이다. 한국식 회는 일본식에 비해 얇게 썰어낸다.

<식탁 위의 한국사>를 쓴 주영하는 사시미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할 수 있었던 까닭을 "한국인이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일본 음식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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