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 크레인 참사 1년] (상) 고통에 시달리는 노동자들
부상자·목격자 트라우마 지속…환청·사고장면 떠올라
"피해자 모두 하청 비정규직, 안전 무시 가장 큰 문제"

지난해 5월 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800t급 골리앗 크레인과 32t급 타워크레인이 충돌해 타워크레인 지지대가 현장을 덮쳤다. '노동자의 날' 쉬지 못하고 일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6명이 목숨을 잃고, 25명이 다쳤다. 참사가 난 지 어느덧 1년이 됐다. 그동안 조선소 현장과 노동자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재해 노동자,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조사위원회, 사고 현장에서 제작 중이던 해양플랜트를 발주한 노르웨이에서 취재 온 기자 등을 통해 사고 후 1년을 짚어본다.

2017년 5월 1일 오후 2시 52분. 삼성중공업이 수주한 마틴 링게(Maritin Linge) 모듈에서 동생과 함께 있던 박철희(46) 씨, 도장 공정을 마치고 작업 검사를 기다리던 ㄱ(55) 씨, 화장실을 가려던 김은주(56) 씨, 작업 준비를 하려던 ㄴ(37), ㄷ(36) 씨는 그 시간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들에게 그날 사고는 온몸에 아로새겨져 여전히 일생 생활조차 쉽지 않다. 이들을 지난 16일 경기도 고양, 17일 창원에서 만났다.

지난 16일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 사고로 동생을 잃은 박철희(46) 씨가 동생 성우 씨 유해가 안치된 경기도 고양의 한 추모관을 찾은 모습. 이날 노르웨이 신문 <클라세캄펜(KLASSEKAMPEN)> 이 박 씨를 취재했다. /우귀화 기자

◇'삼성' 여전히 사과 안해 = 박 씨는 친동생 성우(45) 씨와 그날 현장에 있었다. 그는 그날 동생을 잃었고, 자신도 왼쪽 팔을 다쳤다. 경기도가 고향인 이들 형제는 가족을 위해 돈을 벌고자 거제에 일자리를 구해 온 터였다. 하루 12시간씩 일하던 형제는 쉬는 날인 노동절에도 출근했다. 6월 모듈 인도 시기가 다가오자 하청업체는 공정을 서두르며 쉬는 사람을 일일이 체크했다. 이들 형제도 일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형은 사고 현장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에 지브 크레인을 봤다. 지브 크레인이 쓰레기통을 옮기는 것을 보면서 평소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고가 날 것이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근처에 있던 동생은 크레인 와이어에 등을 맞고서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형은 사고 당시를 떠올리며 눈물을 쏟았다. 그는 "제가 119에 가장 먼저 신고했다. 사고가 난 곳이 지상 20미터 공간인데, 현장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없어서 결국 사고를 낸 골리앗 크레인으로 부상자를 내렸다. 동생은 1시간 만에 병원에 갔다"고 말했다.

그는 그날 이후 모든 사고가 자신의 일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환청이 들리고, 사고 장면을 반복해서 기억하는 일도 잦다. 이 때문에 박 씨는 트라우마 치료도 받고 있다.

그는 "삼성이 언론을 통해 고개를 숙인 적은 있지만, 유가족에게 직접 사과하지는 않았다. 그 점이 가장 화가 난다"며 "삼성이 사과를 하고,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고가 쉽게 잊히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자비로 치료비 댄 부상자 = ㄱ(55) 씨는 사고 이후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다. 2시간 간격으로 잠에서 깼고, 물체가 떨어지는 악몽에 계속 시달린다. 20년 넘게 조선업계에서 일해왔지만 조선소에서는 몸이 먼저 반응을 하기에 이제는 일할 수 없다.

하청업체 반장이자 물량팀장이던 그는 업체 지시에 따라 일하며 일당을 받아왔다. 업체 요청에 따라 사업자등록증을 냈다는 이유로 '노동자'가 아니라며 산업재해 신청을 기각당했다. 이 탓에 치료비조차 받지 못했다. 그는 산재 재심사 청구를 준비하고 있다.

사고 당일 도장공정 검사를 받으려고 대기하던 그는 크레인 와이어에 오른쪽 팔·다리를 강타당해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했다. ㄱ 씨는 "보통 크레인이 움직일 때 신호수가 호루라기를 불고, 비키라고 하는데 그날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사고 직후 지시자가 없어 다친 사람과 안 다친 사람이 모두 한꺼번에 계단으로 몰리면서 서로 다 목격했다. 그날 사고당한 사람들이 40분 이상 인적사항을 적으면서 대기했다. 아프니까 병원에 먼저 보내달라고 해도, 모두 기다리게 했다"고 말했다.

사고 이후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그는 삼성중공업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통해서라도 삼성의 책임을 묻고 싶다고 했다.

◇갈 곳 잃은 재해 노동자 = 김은주(여·56) 씨는 사고를 당한 후 바다를 낀 거제를 떠나 하동 산속으로 거처를 옮겼다. 트라우마를 견딜 수 없어서다.

사고 당시 화장실에 가려던 그는 크레인 와이어가 사람을 순식간에 덮치는 장면을 봤다. 와이어가 튕기면서 노동자 신체 일부가 잘려나가는 장면도 목격했다. 사고 후 2시간가량이나 지난 5시까지 대기하라는 지시를 따랐다. 김 씨는 살려달라고 하던 사람들 모습이 떠올라 일상생활이 힘들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이 땅에 태어나서 내가 노동자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노동자로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트라우마 치료를 받고 있다.

하청 노동자여서 납기일에 맞추고자 출근했던 그는 당시 휴일이었지만, 하청노동자가 일하는 만큼 현장에서 대응할 수 있는 삼성 책임자도 있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년간 알고 지낸 ㄴ(37), ㄷ(36) 씨는 사고 당시 크레인 바로 밑에 있었다. 와이어에 부딪혀 갈비뼈와 다리가 부러진 ㄴ 씨는 다리에 쇠를 박은 채 생활하고 있다. ㄴ 씨는 "크레인으로 사고가 났는데, 사고 크레인으로 이송을 했다. 다쳐서 누운 채 그걸 본 기억이 내내 난다. 함께 일했던 동료가 현장에서 숨진 것에 대한 자책감도 들어서 힘들다"고 했다.

ㄷ 씨도 다치지 않았지만 사고로 숨진 동료에 대한 죄책감이 내내 마음을 짓누른다고 했다. 사고 보름 후 복귀하라고 해서 현장으로 갔지만 고통스러워 일을 할 수 없었다. ㄷ 씨는 "사고당한 사람은 다 하청 비정규직이다. 일이 바빠지면서 혼재 작업을 하면서 안전이 무시됐다. 그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부양할 가족이 있는 ㄴ, ㄷ 씨는 몸과 마음의 상처를 회복한 후에 조선소 말고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결국, 오랜 기간 해온 일자리를 떠날 수 있을지, 현장은 안전하게 바뀔지 어느 것 하나 확신할 수도 없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