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화해 무드 '드루킹'에 목매는 보수
'종전선언' 막으려는 욕망 애처롭기까지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부드러운 개화의 기운이 이제 꽃을 피우려는가. 양측의 핵심 인사들이 알게 모르게 분주히 오가며 흘리는 말들이 이전 같잖게 연하더니만 종전선언이니 평화협정이니 하는 달달한 소리가 들려온다. 북은 미사일 발사를 중지하고 풍계리 핵 실험장을 폐기한다는 선언을 했고 이쪽도 한미 양군이 해마다 북의 턱밑에서 벌이던 대규모 군사훈련 축소문제를 거론했다. 마침내 북의 젊은 지도자가 군사 분계선을 넘어오기로 한 날이 코앞에 다가왔다. 불과 몇 발자국의 걸음으로 경계를 넘는데 10년 세월이 후딱 갔다. 이 광경을 보도하려 프레스센터에 등록을 한 내외신 기자가 자그마치 2800명이 넘는단다. CNN은 세종로 역사박물관 옥상에다 중계본부를 차리고 지구촌 유일 분단현장에서 벌어지는 이 소식을 생생히 찍어 보내리라 벼르고 있다.

스무 살! 청춘의 박동이 가장 왕성한 청년들을 강제 징발해 총 쥐여 마주 세우고는 서로 멸절의 대상으로 삼아 증오에 찬 시선으로 노려보게 만든 것이 '분단'이다. 금하나 그어놓고 그리 대치한 것이 어언 65년. 한 줌도 안 되는 남북의 위정자들은 그 분단의 상황을 '공포'로 치환해 권력획득과 연장의 기제로 사용했다. 항거하는 자들은 무자비한 폭력에 스러졌다. 전쟁이 갈라놓은 남북의 이산가족은 몽매에도 그리던 혈육 상봉의 한을 품은 채 하나 둘 세상을 떠났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군사적 적대관계를 끝내고 긴장 완화와 평화 보장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며 나아가 지금의 정전체제를 종식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자"는 합의에 이른 것이 2007년이다. 말대로만 되면 서로 쏟아붓는 그 엄청난 군비로 아이들 배불리 먹이고 노인들 따습게 하고 북의 부존자원과 질 높은 인력, 남의 기술과 경험을 서로에 퍼주고 뒤섞어 세상 어느 땅 못잖은 풍요를 누릴 수 있으련만. 그러나 이 문제가 남북의 합의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이 근현대사에서 물려받은 우리의 가혹한 유산인 것을 어쩌랴.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그 누구도 남북이 합해져 강대해지길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열강의 틈바구니에 낀 우리 좌표가 안고 있는 지정학적 운명이니 어쩌누. 그걸 타개하자는 인식을 안고 남북 정상이 내린 공동의 해법이 6·15요 10·4 공동선언이다. 깊은 고심의 결정체임에도 환영받지 못하고 체결의 당사자들은 세상을 떠났다. 다시 싸늘한 긴장국면으로 빠져들고 남쪽은 계속 미제 무기를 사들여야 했으며 아이들은 군대로 끌려가고 북한은 미사일을 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비슷한 몸피의 두 사내가 서로 쏘겠다며 험악한 말로 을러대던 지난겨울은 끔찍했다. 사드 문제로 토라진 중국의 몽니로 제주도와 명동이 썰렁하고 일본조차 깐죽거리며 신경을 긁던 사면초가의 시기였다. "설마 전쟁이 나기야 하랴" 하며 궂은 전망에 손사래 쳤지만 저 천방지축의 '트럼프'라면 버튼을 누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한편으론 으스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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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봄이 절정에 달해 만화방창의 한반도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는데 정작 우리 언론 명색과 보수 정당은 드루킹에 목을 매고 있다. 불안할 것이다. '종북, 빨갱이, 천안함, 핵' 이런 단어만 꺼내 흔들면 권세가 유지되던 시절이 '훅' 갈 수도 있다는 그 두려움을 이해한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의원 중심의 '국회인권포럼'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형태의 합의가 추진 중이라는 보도에 우려를 표명한다.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할 경우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성명발표엔 '졌다'. '종전'을 막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 버얼겋게 보이니 애처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무망해 보인다. 천지신명의 보살핌으로 상승하는 국운을 가래로 막을 것인가. 트럼프의 '재선'과 '노오벨상 수상'을 진심 기원한다.ㅎ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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