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객 자처 브로커 손 뿌리치기 어려워
후보 주변인물 면면 살피면 선택에 도움

'정치'나 '경제'라는 단어를 앞머리에 붙인 각종 '연구소'를 자주 접하게 된다. 유력 정치인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기도 하고, 그야말로 '재야의 고수'들이 자신의 정치·경제 철학을 담금질하며 그것이 가치있게 쓰일 곳을 기다리는 탁마의 공간으로도 읽힌다. 물론 간판만 달아놓은 곳도 많고 '싱크탱크'라는 의미를 부여할 가치도 없을 정도로 선거철 브로커들의 집결 공간에 머무는 경우 역시 허다하다.

그런 와중에서도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는 말에 들어맞듯 정책 역량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연구 집단' 또한 다수 발견할 수 있다. '어떻게 이런 분들이 책임 있는 위치에서 국정을 이끌어 가지 못하고 있지?'라는 의문이 들 때가 종종 있다. 흡사 2000여 년 전 춘추전국 시대를 활보하던 '유세객'의 모습이 떠오를 때가 있는데, 어쩌면 그들은 눈 밝은 '군주'를 만나지 못한 이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니, 나의 협소한 시각이 만들어낸 과대평가일 수 있다. 그저 그런 특출나지 않은 유세객이 눈 밝은 군주에게 등용될 리는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물론 개인적인 판단이긴 하지만- 뛰어난 정책 역량으로 무장한 '○○연구소' 소장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분은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을 '유세객'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떤 이유에서든 아직 대한민국의 정치경제 구조가 그 '유세객'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만은 분명했다. 자신의 사상과 정치철학,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는 전략을 군주에게 팔고 그 대가로 지위와 영지를 얻으려다 실패한 유세객이 한둘인가. 합종과 연횡으로 세상의 판도를 바꾸고 들썩이게 했던 소진과 장의와 같은 출세한 유세가는 한 줌도 되지 않는 걸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요즘 시대에는 선거판에 모여드는 유세객들을 '브로커'라고 일컬으며 평가절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상도의를 지키지 않는 약삭빠른 장사꾼 같고, 당장 목이 떨어지더라도 명분만큼은 움켜쥐었던 유세객의 기본 품격조차 갖추지 못한 군상이 많았으니 그럴 것이다. 당장 한 표가 아쉬운 후보들은 유세객을 자처하는 브로커들이 내미는 손을 내치기 쉽지 않다. '군주가 유세객을 등용하듯 군주를 등용하는' 위치에 선 우리 시대 유권자들로서는 후보의 번지르르한 언행만 보고 지지 여부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토사구팽' 당했다는 브로커들이 넘쳐나고, 실제 이들로 인해 낭패를 당하는 단체장들도 속출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 즉 '충신(?)'을 멀리하고 단체장이라는 권력의 단맛에만 매몰되는 사례 역시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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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을, 최악을 막을 수 있는 차악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그럴 때면, 눈을 살짝 돌려 후보 주변에 몰려드는 유세객 내지는 브로커들의 면면을 언론을 통해 꼼꼼하게 살펴보는 게 의외로 올바른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전해드리고자 한다. '인물을 보고 뽑는다'는 말도 먹혀들지 않을 만큼, 점점 복잡다단한 선거판이 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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