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대체복무 중 목숨 끊어…유족 "회사에 알려도 묵살"

"어제도 오늘도 엄마 생각하면서 버티려 했지만 더는 괴롭힘을 참지 못하겠다."

지난달 16일 선박관리회사에서 선원으로 군 대체복무를 하던 구민회(25) 씨는 이역만리에서 이 같은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들은 구 씨가 직장 상사의 괴롭힘으로 힘들어했다고 주장했다.

구 씨는 지난해 2월 해양대를 졸업하고 3등 기관사로 군 대체복무제도인 승선근무예비역으로 지난해 11월부터 배에 올랐다. 그는 선상 생활 넉 달 만에 유명을 달리했다. 요르단 암만의 한 병원에 있던 망인은 한 달이 넘어서야 가족 곁으로 힘들게 돌아왔다. 유족들은 지난 23일부터 창원 경상대병원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고 25일 발인한다.

구 씨의 누나(27)는 "어렸을 적부터 바다를 좋아해 '마도로스'를 꿈꿨던 동생이었는데, 이렇게 돌아올 줄 몰랐다. 배를 타기 전 10월에 동생 얼굴을 마지막으로 봤다. 군대보다 힘들다고는 알았지만, 어차피 군대도 가야하고 돈도 벌 수 있어서 택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동생이 사망하기 직전 계단에서 넘어져서 오른팔을 다쳤다. 다친 것도 서러운데 괴롭힘을 당하자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다"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군복무를 배에서 하는 승선근무예비역으로 근무하다 목숨을 끊은 구민회 씨 빈소가 마련된 창원시 성산구 창원 경상대학교 병원 장례식장.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고인은 사망하기 전 가족, 친구에게 해외에서 선상 생활 어려움을 호소했다. 한 지인과의 대화에서 '이제 본격적으로 괴롭힌다', '쉬지도 못한다', '동물원 원숭이 취급한다'는 등의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유족은 구 씨가 상급자의 괴롭힘을 회사에 알렸지만, 묵살했다고도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선박회사 측은 "지금 특별히 대답할 게 없다. 경찰 조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답했다. 부산해경이 수사를 하고 있다.

유족 측은 승선근무예비역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2007년 도입된 승선근무예비역제도는 항해사·기관사 면허 소지자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시에 국민경제에 긴요한 물자와 군수물자를 수송하기 위한 업무 등을 위해 해운·수산업체에 일정기간 승선 근무하면서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제도다. 대체복무이지만, 민간인 신분으로 민간 선박에서 근무해 감독이 어렵다.

유족 대리인 정소연 변호사는 "병역으로 만기가 됐지만 하선시켜주지 않아 8~9개월까지도 배에 갇혀 있는 일도 있다. 승선근무예비역은 복무기간이 36개월로 대체복무 중 가장 길고, 회사가 해고하면 군대를 현역으로 입대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승선근무예비역으로 일했던 ㄱ(26) 씨는 "선상 생활도 학교생활의 연속이다. 위계질서가 확실하다. 배에서 상사가 괴롭혀서 견디다 못해 본사에 보고서를 냈더니 '내부고발자'로 찍혔다. 13개월 동안 배를 안 태워줘서 겨우 복무 기한을 채웠다. 승선근무예비역 전에 실습 때는 하선하지 못해 계약한 일정보다 더 일했다"고 말했다.

민간공익단체 '직장갑질 119'는 "승선근무예비역은 배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상사의 갑질과 괴롭힘에 노출되기 쉽고, 당해도 피할 곳이 없다"며 "고인의 가족은 정부에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승선근무예비역 제도를 폐지하거나 개선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족 대리인 변호사는 '직장갑질 119' 소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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