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한글학회 정기총회가 지난 3월 24일 한글회관에서 열렸다. 한글학회 정회원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회의장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진입을 시도했다. 참관조차 못하게 하는 총회라면 그건 문제가 많다는 반증이지 않는가! 필자는 한글학회의 운명을 가를 총회 참관기를 남기는 것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총회 진행을 맡은 한글학회 회장(권재일·서울대 언어학과)은 회의 초반에 한글학회가 "학술단체이지 시민운동단체가 아니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이것은 한글학회의 목적을 축소 왜곡한 것이다. 한글학회 회칙 제3조에는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고, 널리 펴고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는' 것은 학술단체의 역할에 맞다. 그렇지만 '우리말과 글을 널리 펴서 발전시키는 것'은 한글운동! 바로 시민운동이다.

110년 전 한글학회를 만든 주시경 선생 역시 한글연구와 한글운동을 병행하였다. 쉼 없이 한글 문법체계를 연구하고 방학을 맞아 제자들과 함께 전국적으로 한글을 보급시키고자 애썼다. 일제강점기 한글운동이 바로 항일 민족운동인 이유이다. 오늘날 한글학회는 주시경 선생의 정신을 회복하고 그 시절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한글학회 개혁위원회 운영위원장인 박용규(고려대 역사학과) 박사는 민주적인 회칙 개정으로 한글학회에 일대 변화와 개혁을 역설했다. 한글학회 모 지회장은 회칙 개정과 같은 주요 사항일 경우 전체 한글학회 정회원들에게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우선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회의 진행을 맡은 회장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다른 정회원이 회장의 회의진행에 문제를 제기했다. 어떤 정회원은 "한글학회는 선비와 학자 집단"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면서 박용규 박사의 1인 시위는 한글학회의 격을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순간 뜨악했다. 시위는 헌법이 보장한 민주시민의 권리인데 한글학회의 격을 떨어뜨리는 행위라니…. 고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총회 시작 1시간이 지나갈 무렵 회장은 의견 발표를 일방적으로 종료하고 회칙 개정 안건에 대해 표결처리를 강행했다. 표결처리 결과 총회 직전 열렸던 평의원회 결정대로 끝났다. 그 순간 한글학회 변화를 열망하던 개혁위원들은 허탈한 심정을 가눌 길 없었다. 평의원회 결정대로 다시 회칙개정에 대한 절충(?)을 시도하며 올해도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글학회 개혁이 다시 지연되는 것으로 총회는 씁쓸히 막을 내렸다.

총회를 참관한 시민으로서 상식 밖의 한글학회 회칙에 놀랐다. 먼저 총회의 회의 정족수가 '정회원의 출석으로 개회한다'(회칙 제16조 1항)고 규정된 사실이다. 통상적인 의사정족수를 따르고 않지 않았다. 실제로 3·24총회 당시 참석한 정회원은 50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만일에 20명이나 10명만 참석해도 개회 선언과 안건 처리에서 법규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참으로 부끄러운 한글학회 회칙의 민낯이다. 두 번째는 1988년 회칙 개악으로 등장한 평의원회이다. 평의원회는 일종의 대의원제도인데 문제는 정회원이 평의원을 선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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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기능이 없는 평의원회는 정회원의 역할을 부정하고 총회를 무력화시킬 뿐이다. 개혁을 향한 길은 간단하다. 개혁을 열망하는 정회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들과 소통할 때 한글학회는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다. 바라건대, 10월 9일 한글날까지 기다리지 말고 시급히 회칙 개정을 통해 한글학회가 거듭나야 한다. 한글학회의 맹성을 촉구하며 이 글에 대한 반론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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