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 민들레 동백꽃 '꽃대궐' 차리인 동네
도서관 뒤 오솔길 '동백꽃길'남산공원 가득 푸른 나뭇잎
주택가 골목마다 움튼 생명, 그속에서 노는 내가 즐겁다

고향의봄도서관은 창원시 서상동 남산(98.6m) 남쪽 자락에 있습니다. 산 중턱에 우뚝 솟아 있어 도서관에 닿을 즈음엔 숨이 거칠어집니다. 이 도서관 지하 1층에 이원수문학관이 있습니다. 산 중턱을 깎아 건물을 짓다 보니 층수로 보면 지하지만 사실상 1층 같은 곳입니다.

우리나라 아동문학 선구자 이원수(1911~1981) 선생이 1926년 지은 동시에 1929년 작곡가 홍난파가 곡을 붙인 '고향의 봄'이란 동요를 다들 아실 겁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여기서 고향은 천주산 아래 당시 창원읍을 말합니다. 지금은 창원시 의창구 중동과 소답동 지역입니다. 중동 쪽이 읍내랑 가까웠을 거고요. 소답동은 이원수 선생이 말한 '동문 밖 작은 마을 소답리'였지요. 어릴 적 선생은 소답리 서당에 다녔습니다. 어느 봄날 뒷산 가득 진달래와 철쭉이 핀 장면과 그 아래 우람한 기와집들 돌담 너머로 복숭아꽃, 살구꽃이 환한 것을 보았을 테지요. 여기서 '기와집들'이란 지금 김종영 생가로 불리는 김해 김씨 고가(古家)를 포함해 그 주변에 살던 일가들의 집입니다.

동네 할머니들이 칭찬하던 골목길 민들레.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제가 보기엔 여기서 꽃대궐은 단순히 기와집뿐만 아니라 기와집을 포함해 진달래와 철쭉이 가득 핀 뒷산 풍경 전체를 말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원수문학관 입구 로비에는 민들레, 해바라기, 코스모스, 수국 같은 꽃들이 가득합니다. 바로 '이원수 꽃 시(詩), 캘리그래피로 피다'란 전시가 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이 지은 꽃과 관련한 동시 16편을 이원수동시동화연구모임 꽃대궐 회원들이 캘리그래피로 표현한 것입니다. 꽃 시들을 가만히 보자니 선생이 참 꽃을 자세히 들여다봤구나 싶습니다. 29일까지니 시간 내서 한번 둘러봐도 좋겠습니다.

캘리그래피로 적은 꽃 시를 보다가 문득 이대로 꽃대궐까지 걸어보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도서관 뒤 오솔길로 향했습니다. 남산 정상으로 가는 길입니다. 오솔길이 끝나는 지점에 동백나무 사이를 지나는 샛길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등산로입니다. 동백꽃이 한창이니 꽃 터널을 통과하는 셈입니다. 송이째 바닥에 진 꽃들이 꽃길을 만들었습니다.

남산 정상부는 잔디로 말끔하게 정리된 남산공원입니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창원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어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남산공원 정상은 청동기시대에서 삼한시대를 지나 삼국시대에 이르는 마을 유적입니다. 정상에 움푹 팬 자리는 청동기시대 일종의 방어시설로 우리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라고 합니다. 현재 경남도기념물 201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공원을 한 바퀴 둘러봅니다. 봄날이란 생각 때문인지 유독 나뭇잎들이 푸르러 보입니다. 공원 입구 바로 아래 몇 가지 비석이 있는데, 그중 기념식수 비석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느 나무 앞에 창원시 북면 외산리 김영호 씨에게서 기증받아 심었다고 돼 있습니다. 눈에 들어온 것은 대리석으로 반듯하게 만든 게 아니라 바로 옆 돌덩이에 거칠게 글자를 새긴 것입니다. 돌덩이에는 '증, 북면 외산리 김영호'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바로 옆 말끔한 대리석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그 투박함입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돌덩이에 새긴 글자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무슨 사연으로 나무를 기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기념으로 이런 돌덩이 하나 놓아둔 이라면 꽤 소박한 심성을 지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소답동 한 어르신의 꽃대궐.

공원을 내려오니 창원 중동초등학교 뒤편입니다. 학교 주변으로 아이들을 태울 학원 차량이 줄을 서 있습니다. 주위는 온통 삭막한 빌라촌이네요. 길을 건너 소답동으로 향합니다. 이원수 선생이 말한 소답리는 창원읍성 동문 밖에 있는 농촌 마을이었습니다. 지금은 빌라며 주택이며, 전형적인 도시 주택가지요. 하지만 옛날에는 이곳이 죄다 논밭이었다고 합니다.

큰길만 걷자니 삭막해서 주택가 골목으로 접어듭니다. 제법 긴 주택가 골목, 그 구석에 민들레들이 꽃씨를 달고 있습니다. 유독 그림자가 예쁜 것이 있어 사진을 찍습니다. 문득 뒤에서 인기척이 납니다. "아이고, 민들레를 찍어 샀네." 동네 할머니 두 분입니다. 보통은 "도대체 뭘 찍노?" 의아해하시는 분이 많은데 할머니들은 꽃 사진 열심히 찍는다고 좋아하십니다. 그러면서 반대편 그늘에 있는 민들레 줄기를 가리키며 "이 꽃이 얼마 전까지 을매나 이쁘게 피었닸고, 이걸 찍으야 하는 긴데!" 아쉬워하시네요.

"와 진짜 예뻤겠다." 맞장구를 치면서 또 그걸 열심히 찍었습니다. "근데 어머이, 이 동네가 옛날에 다 논밭이었다 카든데 맞습니꺼?" "그랬다카드라. 요자리는 미나리꽝(미나리밭)이었다 카데."

소답동에서 만난 유채꽃 한 무더기. 꽃은 빛을 향한 식물의 의지다. /이서후 기자

좋은 거 찍으러 다니니 멋지다는 할머니 칭찬을 뒤로하고 계속 길을 걷습니다. 와, 오래된 빌라 옆 텃밭에 유채꽃이 딱 한 무더기 피었습니다. 그 뒤 담벼락에는 빌라 그늘이 드리워있습니다. 꽃 무더기는 그림자와 햇살 그 중간에 놓여 있습니다. 꽃송이들은 온 힘을 기울여 햇살이 있는 쪽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꽃은 빛을 향한 식물의 의지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문득 2012년 이맘때 찾았던 제주 곤을동 유채꽃이 떠올랐습니다. 4·3사건 당시 토벌대에 통째로 사라진 마을입니다. 검은 돌담들만이 이곳이 마을이었다는 걸 표시하고 있었습니다. 그 집터마다 유채꽃이 가득했습니다. 날씨는 매우 맑았고, 유채꽃은 너무나 환했습니다. 그 장면이 왜 그렇게 슬프던지요. 지금 생각해보니 끔찍한 비극을 환하게 이겨내려는 꽃의 의지가 만든 풍경이었구나 싶습니다.

꽃대궐, 김종영 생가는 문이 닫혀 있습니다. 돌아 나오는 길 어느 골목에서 정원 화분에 물을 주는 어르신을 봤습니다. 좁지만 독특한 구조 꽃을 가득 심은 정원입니다.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여쭈니 무심히 그러라고 하고는 여전히 물을 주십니다. 그러고 보니 이 어르신의 정원이야말로 꽃대궐입니다. 화분 위로 쏟아지는 쏴 하는 물소리를 한참이나 듣다 돌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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