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행색 노인 꺼리는 성당 이야기
외형 아닌 마음에 성전 짓는 종교 돼야

한 노인이 이사를 왔습니다. 천주교 신자인 이 어르신은 주변 성당을 찾아보았습니다. 비슷한 거리에 두 군데 성당이 있었습니다. 한 곳은 재개발 예정 지구인 원주민이 사는 초라한 동네 성당이었고, 또 한 곳은 이미 재개발이 끝나서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이 다니는 제법 번듯한 성당이었습니다. 인심이 어떤가 하고 한 번씩 미사 참례를 하였습니다.

먼저 초라한 동네 성당에 갔습니다. 성당은 규모도 작고 누추했지만 인심이 있어서 신자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신부님도 인자하게 성당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다음 주, 번듯한 새 동네 성당에 갔습니다. 건물도 '비까번쩍'하고 신자들도 말쑥하게 차려입고, 말씨도 아주 사근사근하니 좋았습니다. 그런데 경계하는 눈빛이 완연하고 '이런 늙고 초라한 노인이 왜 이런 고급 성당엘 오느냐?!'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신부님께서 마뜩잖은 얼굴로 "이곳엔 무슨 일이시냐?"고 물었습니다. 노인이 "여기 밑 동네에 이사를 왔는데, 이곳 성당에 다닐까 해서 왔다"고 했습니다.

신부님은 초라한 행색의 노인을 아래위로 쓱 훑어보고는 퉁명스럽게 "돌아가셔서 예수님께 이 성당엘 다녀도 될지 기도해보시고 오십시오"하고는 돌려보냈습니다. 그 신부님은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 정도 눈치를 줬으면 다시는 오지 않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주, 그 노인이 새 동네 '비까번쩍'한 성당에 다시 갔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이 약간 언짢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아니, 어르신. 이 성당에 계속 다니시려고 오셨습니까? 예수님께 기도는 드려 보셨습니까?!" 노인께서 대답하기를 "신부님, 이제 다시는 오지 않을 테니 걱정 마십시오. 기도드리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얘야, 나도 아직 그 성당에 들어 가보질 못했구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전해 드리려고 왔습니다."

요즘 성당 건물을 보면 자꾸 커지고 있습니다. 물론 신자들의 필요에 의해서 규모를 적정하게 맞추는 것이겠습니다. 하지만, 건물 규모가 커진다고 신앙심이 커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가톨릭 '교회론'에서 '교회'는 '하느님 백성의 모임'이라고 정의합니다. 어떤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제도 따위가 (천주)교회가 아니라 하느님 백성이 모여서 함께 기뻐하며 기도하면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교회라고 말합니다.

백남혜.jpg

참 멋진 말씀 아닙니까? 그런데 서울이나 대도시 성당에 가보면, 언제부터인가 한국 가톨릭이 외형에 집착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다행히 마산교구는 아직 그런 모습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 보입니다).

외형에 집착하는 기존 종교의 틈을 이단으로 보이는 유사 종교들이 파고들고 있습니다. 사이비가 많아진다는 것은 기성 종교들이 제 역할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한다는 반증입니다. 땅이 아니라 사람 마음속에 성전을 짓는 종교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