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 한창 강릉 전주이씨 선교장 방문
존경받는 적선가 진정한 아름다움 새겨

"평생에 눈썹 찌푸리는 일을 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응당 이를 가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平生不作皺眉事 世間應無切齒人)" 풍수에 밝은 조용헌 사주명리학자는 경남 창녕 성씨 고가, 강원도 강릉 선교장, 전남 구례 운조루 터를 조선 3대 천하명당이라고 했다는데, 강릉 생활 100일이 지나서야 선교장을 문화답사했다.

강원도의 영감(靈感)을 담아 100만 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관람한 평창 문화올림픽 예술축제 '파이어 아트페스타 2018(FIRE ART FESTA 2018)'을 마치고 뒷정리를 하던 중, 봄꽃이 한창인 선교장을 찾았다. 경포호수가 메워지기 전에는 이 집을 다닐 때 배를 타야 했기에 이름을 배다리(船橋)라고 불렀고, 99칸의 전형적인 사대부가 상류주택으로서 개인소유의 국가 문화재인 전주이씨 종가를 선교장이라 한다. 선교장은 9대에 걸쳐 240여 년간 유지되어온 고택이자,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면서도 전통미가 살아있는 조선시대 대표적 장원이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은 어디인가?' 여론조사에서도 1위로 꼽혔단다.

야트막한 뒷산을 따라 고택들을 감싸고 있는 수령 300년 이상의 금강송(金剛松)이 아름다운 청룡, 백호 길을 걸으며 보는 전통가옥 선교장 터는 관동제일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즐겁게 이야기하는 집'이라 열화당(悅話堂)이라고 부르는 사랑채 주변을 서성거렸다. 미술서적을 많이 만든 이 집안 후손의 열화당 출판사 때문에 오래전부터 방문하고 싶었다. 열화당은 도연명의 '귀거래사' 열친척지정화(悅親戚之情話·친척들과 정다운 이야기를 즐겨 듣고)에서 유래되었고, 단순한 사랑채가 아니라 족보도 찍고 문집도 발행하는 출판기능을 가진 인문정신 함양 문화공간이었다.

선교장은 독립운동가 성재 이시영, 백범 김구 등과 당대 유명 예술가, 시인, 묵객, 정치인들이 많이 들렀다. 추사 김정희가 금강산 유람 후 들러 '홍엽산거(紅葉山居)'라는 편액을 남겼고,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해준 감사의 글도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선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고, 불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재앙이 있다.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고 자식이 그 아비를 죽이는 일이 벌어진 것은 하루아침과 하룻저녁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그 유래는 점차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臣弑其君, 子弑其父, 非一朝一夕之故. 其所由來者漸矣.)"

주역(周易) '문언전(文言傳)'의 적선지가 필유여경을 읊조리며 걷던 명문가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의 향기가 난다. 족제비 인연의 명당 집터에는 적선(積善)의 공동체 선행이 있었다. 대대로 명문가 '선비정신'을 교육받은 만석꾼은 흉년에 곳간을 열어 이웃에게 식량을 나누어주었다. 감사의 표시로 일만 명의 소작인이 서명해서 만든 우산, '만인솔'이 있는 명문가. 유난히 난리가 많았던 코리아의 근현대사, 인심을 잃으면 분노한 민중은 고택에 불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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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무십일홍' 완장을 차고 정치적 몽니를 부리는 위정자를 만난 '예향' 강릉. 문화올림픽 중 가장 뜨거웠지만, 미완의 축제를 마치고 심신이 지친 역마살 나그네에게 업보를 떠올리며 자신을 뒤돌아보게 했다. 미투 운동(#MeToo)으로 성폭력과 성추행 치부가 만천하에 공개된 문화예술인, 연예인, 정치인, 공직자 등의 몰락, 대기업 총수 일가의 천박한 갑질 사건 등…. 요즘 대한민국 국민의 공분을 사는 사건에서도 권선징악의 육도윤회와 인과응보가 작용하는 것 같다.

조선 사대부 상류사회의 풍류와 멋, 자연과 합일하는 순수함과 높은 심미안의 가풍을 느낀 관동의 제일명가(第一名家) 선교장 소요유. 존경받는 적선지가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되새겼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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