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경제활동 제한 크지만…제도·복지서비스 등 '소외'

청각과 시력을 모두 잃은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지원 정책이 시급하지만 제대로 된 실태조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맞아 기념식이 열리고, 장애인 정책 제고와 장애인차별금지법 10년을 평가하는 토론회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청각과 시력을 동시에 잃은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정책이나 제도 마련에 대한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장애인복지법에 장애 종류는 시각, 청각, 지체 등 15가지로 분류되는데 청각과 시각 장애가 중복된 '시청각장애인'은 따로 규정돼 있지 않다.

정부가 진행하는 장애인 실태조사에서도 제외돼 국내에 시청각장애를 지닌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는지 통계도 없다.

더구나 하나의 장애 유형으로 따로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시청각중복장애인', '시청각장애인', '시청인', '농맹인', '맹농인' 등 지칭하는 용어도 다양하다. 또 그들의 권익을 대변할 협회도 없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어린교오거리 삼각지공원 방향 시각장애인 횡단보도 음향신호기는 점자블록과 거리가 한참이나 떨어져 일반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학계는 1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으나 개별 복지서비스와 지원 정책은 없다. 전문가들은 정책 추진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실태조사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장애인복지법 문제점을 지적했다.

지난해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연구한 내용을 보면 다른 장애인보다 시청각장애인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거의 매일 외출한다는 비율은 장애인 전체 평균이 67.3%이지만 시청각장애인은 14.9%에 그쳤다. 최근 2년 내 건강검진을 받지 않은 비율도 시청각장애인(50.9%)이 장애인 전체 평균(27.1%)의 두 배에 가까웠다. 만성질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전체 장애인(75.8%)보다 높은 86.8%로 나타났다. 일상생활에서 남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14.9%로 전체 장애인(5.9%)보다 월등히 높았다.

사회활동을 하기 어려운 탓에 빈곤의 늪에서 벗어나기도 어렵다. 심지어 기초생활 수급을 받지 않으면 활동보조인을 쓰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어린교오거리 신세계백화점 방향 음향신호기는 바닥에 고정된 정보지 가판대가 있어 시각장애인이 이용하기 어렵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서해정 한국장애인개발원 연구위원은 "단순하게 시각과 청각이 덧셈이 된 장애가 아닌 장애의 곱셈으로 볼 필요가 있다. 시청각장애인에게 절실한 의사소통과 이동지원서비스 등이 우선 선행돼야 한다. 또 실태 파악에 나서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서 위원은 이를 위해 지역에서부터 실태조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제안도 했다.

그는 "전국단위 실태가 파악되지 않았다. 경남에도 시청각장애인이 몇 명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거창한 정책을 펴기에 앞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경남에 몇 명이 있을지 모르나 시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시범사업부터 단계적으로 밟아나가길 바란다"면서 "시청각장애는 사회와 단절된 고립의 장애다. 미국과 일본은 가장 열악한 장애로 구분하고 있다. 이제라도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 뒤 정책과 제도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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