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연극제가 15일 막을 내렸다. 올해 행사는 전례 없는 관심 속에 치러졌다. 두 달 전만 해도 경남 연극계는 지역을 터전으로 삼은 연극계 거장의 성폭력 가해 혐의가 잇따라 폭로됨으로써 쑥대밭 분위기였고, 이후 줄줄이 터져 나온 '미투 운동'의 시발점으로 지목받았다.

극단이나 배우들의 주요 수입원이던 초중등학교와의 계약이 줄줄이 취소됐고 기업의 연극제 협찬도 크게 줄었다. 연극제를 코앞에 두고 연습이나 준비가 제대로 될 리도 없었다. 이 때문에 올해 경남연극제가 제대로 치러질지조차 회의적이었다. 올해는 행사를 취소하고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안팎의 여론도 있었겠지만 경남연극협회는 거듭된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예년처럼 행사를 치렀다. 그럼에도, 올해 경남연극제는 예년과 달라진 점이 눈에 띈다. 우선 개막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지 않고 간소한 축하공연으로 대체했다. 무대에 올려진 연극 중에도 미투 운동과 관련하여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이 몇 편 눈에 띄었다. 미투 운동을 계기로 새로 쓴 작품도 있었다. 지역 연극인들이 자성과 함께 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덕분에 올해 경남연극제는 호응이 컸다. 경남연극계는 연극을 외면하지 않은 시민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이제 경남연극협회는 도민에게 공언한 대로 성폭력을 뿌리뽑는 데 나서야 한다. 그러나 설문조사나 성폭력 예방 교육 위주의 대응으로는 한계가 크다. 유독 문화예술계에 성폭력이 만연한 것으로 드러난 점은, 문화예술계 특유의 도제 시스템과 관련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한다고 하면서 정작 전근대적인 스승-제자 관계로 묶여있는 문화예술계의 구조를 혁파하지 않는 한 성폭력을 발본색원하기는 어렵다. 경남연극협회 스스로 조직 구성을 민주화하고 젊은 예술인으로의 물갈이 등 쇄신 노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이는 비단 문화예술계뿐만 아니라 도제 시스템이나 수직적 위계질서가 정착한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피해자들의 용기로 촉발된 미투 폭로가 성폭력 문제에 구조적으로 대응하는 사후 대책으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우리 사회는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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