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의 마음으로는 해협이나 강이 좁아서 건너편까지만 날아가면 풀 속을 기어서 매를 따돌리겠지만, 매는 바로 뒤에 따라오고 건너편 연안은 너무나 멀다. 매가 거리를 좁혀오면 어디든지 몸을 가려야 한다. 똥통이고 장롱이고 아궁이고 가릴 틈이 없다. 꿩은 막다른 궁지에 해수면에 처박힌다.

악착같은 매는 바다에까지 뛰어들어 기어코 꿩의 등짝을 꿰찬다. 매가 공중치기에 성공하더라도 제 몸보다 더 무거운 꿩을 매달고 해안까지 돌아오지는 못한다. 꿩과 함께 땅으로 떨어지면 그 자리서 뜯지만 물에 떨어지면 헤어 나와야 한다. 매는 물갈퀴가 없으니 물에 잠긴 꿩을 의지 삼아 한쪽 죽(날개)을 물 밖으로 내세워 돛으로 삼아 바람을 타고 해안으로 나온다. 이순신은 이 장면을 보고 '관침렵치(觀沈獵雉)'라고 적은 것이다.

바닷가에서 해상으로 달아난 꿩을 물속까지 따라가 붙잡는 모습을 보면 초상집 상주도 환호하게 된다. 축구로 치면 2-1 역전승이고 야구로 치면 9회말 역전승이다. '침렵치'의 뜻을 이렇게 풀이하고 나면 그 뒤에 번역된 대목도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바다까지 뛰어들어 기어코 꿩을 잡아오는 매를 보고 환호작약하는 표현이다. 마지막 '승석환래(乘夕還來)'는 곧 어두워지겠다고 헤아려 아쉬운 걸음을 나서서 동헌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매로 사냥을 하다 보면 내륙에서는 공중치기를 하는 장면이 가장 역동적이고 재미있다. 해안도서지방인 남해에서는 매가 바다에 뛰어들어 꿩을 사냥하던 일화를 노인들께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이날 치 일기를 다시 번역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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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계묘일. 날도 맑고 바람도 고요하다. 밥 먹고 동헌에 출근하여 공무를 처리했다. 해운대에 가 앉았다가 활쏘기를 연습했다. 바다로 달아난 꿩을 매가 물속까지 뛰어들어 잡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야말로 숨죽은 듯 극도로 조용하더니, 군관 무리들까지 모두 일어나 춤을 추었다. 조이립은 절구를 지어 읊었다. 해거름을 헤아려 돌아왔다.'

425년 만에 풀린 수수께끼의 사냥 장면을 3월 31일과 4월 1일에 남해 설천면 문항마을에서 열리는 '설천참굴축제' 현장에서 재현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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