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차만들기 여러해 반복하니 손이 기억
자연속 공부 머리보다 몸 움직여 익혀야

봄이 오면 쑥이 얼마나 자랐나 싶어 땅을 보고 걷게 된다. 해마다 쑥이 자라는 때가 조금씩 다르지만 춘분 즈음이 되면 쑥차를 만들기 좋은 크기로 자라 있다. 이번 해에는 추운 날씨 때문에 쑥이 자라지 못해서 지난해보다 일주일 늦게 쑥차 만들기를 시작했다. 자연과 더불어 하는 일은 사람과 약속을 정하듯 날짜를 정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연을 살피며 때를 맞추어야 하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어주는 만큼만 일구어 갈 수 있다. 지구가 몸살을 앓는 가운데도 봄풀들이 들녘을 가득 채워주니 고마운 마음이 든다.

쑥을 캐다 보면 보랏빛 제비꽃을 만나고, 겨울잠을 자고 나온 청개구리도 만난다. 가끔 멍하니 앉아서 복사꽃, 매화, 목련을 보고 있기도 한다. 쑥차를 만드는 건 봄을 누리기 딱 좋은 일이다. 이 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웃마을에 사는 은실 이모와 쑥차를 만든 지 사 년이 되었다. 이제는 쑥을 캐고, 티끌을 가리는 데 꽤 속도가 붙었다. 쑥도 다양한 맛과 모양이 있는데, 어떤 쑥이 맛있는 쑥인지도 안다. 무엇보다 쑥차를 만들 때 잘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은 쑥을 덖는 일이다. 쑥차는 덖었다가 식히기를 되풀이하면서 여덟 번에서 아홉 번을 덖는다. 첫해에 쑥을 덖는 일은 거의 은실 이모가 하셨다. 쑥차 맛에 영향을 덜 주는 네 번째와 다섯 번째를 내가 덖어 보는 것으로 감각을 익히기 시작했다. 두 번째 해에 쑥차를 만들 때에는 내가 조금 더 많이 차를 덖었다. 은실 이모가 설명을 해주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색깔을 보고, 향을 맡고,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으로 쑥을 덖고, 빼내는 때를 정해야 한다. 차라리 덖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면 배우기가 편할 텐데 온전히 감각을 익히는 것밖에는 배울 방법이 없다.

첫해에 쑥차를 만들면서 은실 이모가 해준 말들과 내가 느낀 감각들을 기록해 놓았다. 차 맛이 좋았던 날은 무엇을 잘했고, 차 맛이 좋지 않은 날에는 맛이 어떻게 달랐는지, 덖는 방법에 어떤 실수가 있었는지를 썼다. 이번에 쑥차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서 그 기록을 펼쳐 보았다. 이른 봄에만 하는 일이다 보니 차를 덖었던 감각을 다시 떠올려야 한다.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해마다 든다. 왜냐하면, 지난해에 은실 이모가 덖은 것과 내가 덖은 쑥차 맛이 완전히 달라 당황했기 때문이다.

이번 해에는 쑥차 덖는 일을 조금 더 많이 나에게 맡겨 주셨다. 은실 이모는 내가 실수를 해도 "배우는 과정이니까, 실수한 만큼 배웠잖아" 하시며 나한테 기회를 만들어 주신다. 쑥차를 덖으니 조금씩 손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내 손이 덖고, 멈출 때를 알았다. 그리고 차를 덖을 때 날씨와 쑥 상태도 살피게 되었다. 손이 기억을 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손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쑥차를 만든 지 사 년이 지나서야 '이제 조금만 더 해보면 내가 쑥차를 만들 줄 안다고 해도 되겠구나' 하는 마음이 생긴다. 해마다 경험이 쌓이고 손과 머리가 하는 기억이 뚜렷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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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을 익히는 방법은 끊임없이 해보고 실수를 하면서 조금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시간이 필요한 더딘 공부다. 사람들은 대부분 책상 앞에서 머리로 하는 것만 공부라고 여긴다. 하지만, 무뎌진 감각을 깨우는 공부도 중요하다. 자연 속에 있으면 머리보다는 몸을 먼저 움직이며 익혀야 한다. 생각하는 손과 더불어 머리도 공부를 하니까 말이다. 해마다 몸을 깨우는 공부를 하며 꿈틀꿈틀 살아 있는 봄을 맞이하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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