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기업 일정액 적립시 10만원 지원
여행 현실 외면…'쉼표' 아닌 '한숨' 정책

한국관광공사가 '근로자 휴가지원 사업'에 참여할 기업을 모집한단다. 오호! 휴가를 지원한다고? 노동자들이 휴가를 편히 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일까?

사실, 있는 휴가도 제대로 다 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나의 경우 특별휴가(여름휴가) 4일에, 수당을 주지 않고 휴가로 대체된 의무연차에, 휴일 일하고 생긴 대체휴무까지 거의 20일 가까운 휴가가 있었다. 이중 절반도 가기 힘들었다. 하루에 해야 할 일, 일주일 동안 해야 할 일의 양이 정해져 있다. 휴가기간 해야 할 일을 미리 다 해놓고 가거나, 동료들이 그 일을 대신해야 한다. 그래서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휴가 갈 생각을 하기 어렵다. 그나마 휴가를 가려고 할 때 가지 못하게 눈치 주는 일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다른 회사 노동자 중에서는 자신을 대신할 인력을 자비로 대체시켜야 하거나, 휴가 신청을 하려면 엄청난 눈치를 줘서 휴가는 엄두도 못 내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런데 정부가 휴가를 지원한단다. 중소기업 소속 노동자 2만 명에게 휴가비를 지원한다는 한국관광공사의 '근로자 휴가지원 사업', 우리 회사도 신청 가능한지 한 번 살펴보자.

이 사업은 노동자가 20만 원, 기업이 10만 원의 여행 적립금을 조성하면 정부가 10만 원을 추가지원한다. 한국관광공사는 노동자들이 레크리에이션을 통해 사기를 진작하고, 업무 효율을 제고하는 한편, 여행을 통해 내수경기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 적립금은 국내 여행 경비로 쓸 수 있는데, 모두 포인트로 전환돼 관광공사가 개설 예정인 전용 온라인몰에서 사용 가능하다.

여기서 잠깐. 노동자가 20만 원, 기업이 10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고? 당장 내일 거래처에 결제할 대금을 준비 못 하고, 눈앞에 닥친 월급 줄 돈이 없어 쩔쩔매는 중소기업에 휴가비 10만 원은 배부른 소리다. 결국 그 돈을 지원할 여력이 있는 기업들만 신청하게 될 테다. 정작 지원이 필요한 노동자들은 혜택을 기대하기 어렵다. 휴가비는커녕 쉴 여유조차 없는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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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적립금은 현금이 아닌 온라인몰에서 여행사를 이용할 수 있는 포인트로 전환된다고 한다. 온라인몰은 웹투어, 모두투어, 인터파크투어 등 20여 곳 제휴업체의 국내 여행 상품들로 구성된다. 즉 해당 상품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에겐 혜택이 없다는 말이다. 펜션 혜택을 보려면 야놀자나 펜션라이프를 통해야만 하므로 선택의 폭이 줄어든다. 그렇다면 이것은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여행사를 위한 것이 아닌가. 보통 해외여행은 여행사 상품을 많이 이용하지만, 국내여행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결국 이 사업은 20여 곳 여행사(제휴사)에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고객 2만 명을 안정적으로 모집해 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관광공사는 '대한민국의 쉼표가 있는 삶'을 위해 이 사업을 한다고 밝혔지만, 아마도 내 주위 대다수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이 사업을 보고 '쉼표'가 아닌 '한숨'을 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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