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8일은 음력 2월 12일이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중 1592년 임진년 2월 12일 꿩 사냥 장면은 425년째 수수께끼이다. 기존의 번역은 아래와 같다.

'1592년 2월 12일. 맑았고, 바람도 고요했다. 식사를 한 뒤, 동헌에 나가 공무를 처리했다. 해운대로 옮겨 앉았다. 훈련용 화살을 쏘았다. 사냥한 꿩을 물에 가라앉히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아주 조용했다. 군관 무리가 모두 일어나 춤을 추었다. 조이립은 시를 읊었다. 석양을 타고 돌아왔다.'

해운대는 여수시 동북쪽에 있는 작은 반도다. 이순신이 직접 쓴 '海雲臺'라는 글씨도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 여수 외항 축조 때 파괴돼 지금 흔적도 없다. 일기에서 꿩 사냥하는 것을 보았다는 표현 '觀沈獵雉(관침렵치)' 부분은 대학자들이 모두 번역을 보류한 대목이다. 노산 이은상, 북한 학자 홍기문, 최두환, 노승석 등 기라성 같은 학자들이 갖가지 짐작만 할 뿐 뜻을 모른다. 이 키워드가 안 풀리니 당연히 그 뒤의 문장들도 알 수 없다. '침렵치(沈獵雉)'라고 쓴 장면은 남해나 여수와 같은 해안도서 지방 매사냥이 성행하던 시기에 희귀하게 볼 수 있었던 장면이다.

'침렵치'란 어떤 장면일까. 매를 데리고 꿩 사냥을 하려면 높은 산으로 가지 않는다. 꿩은 민가에서 멀지 않은 산기슭 경작지 주변에 많다. 지대가 높은 데서 꿩을 발견하여 매를 내보낸들 매와 꿩이 쫓고 쫓기며 너무 멀리 달아나면 거두기도 어렵다. 그래서 매를 이용한 사냥은 지대가 낮은 데서 한다. 해안지방에서는 몰이꾼이 해안 가까운 갈대나 수풀을 두드려 꿩을 띄우고 매를 다루는 기술자 '주갈치'는 언덕배기 쪽에서 꿩이 뜨기를 기다린다. 꿩을 기다리는 것을 '봉받는다'고 한다. 몰이꾼들의 푸닥거리에 놀란 꿩은 다시 숨을 수풀을 찾아 강이나 바다를 등지고 언덕배기로 날아오른다. 매는 바로 그 길목에서 주갈치의 팔뚝에 앉아 숨이 차서 날아오르는 꿩을 '공중치기'를 해서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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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끔 눈 밝은 꿩은 봉받이의 팔뚝을 박차고 나서는 매를 보고 화급히 바다 쪽으로 방향을 튼다. 바다는 풀도 나무도 없으니 자꾸만 날아간다. 바다 건너 연안까지 가면 속담대로 '꿩 떨구고 매 떨구는' 사태가 난다. 과장없이 문자 그대로 죽기 살기로 쫓고 쫓기는 매와 꿩을 지켜보며 사람들은 망연자실 숨이 멎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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