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반성, 피해자가 받아들일 때 성립
위안부 문제 사죄 없으니 합의 불가 당연

필자는 형사 재판 사건을 많이 변론하고 있다. 형사 재판은 범죄를 범한 피고인이 과연 죄를 범했는지, 범했다면 얼마의 벌을 주는지가 관건이다. 특히 후자를 양형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형사 사건이 유죄가 나는 만큼 양형은 매우 중요하다. 일선 판사들이 양형을 정함에서 참고하는 양형 기준표에는 피고인에 대한 형의 감경 요소로 진지한 반성이 기술되어 있다. 다만, 진지한 반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필자가 감히 추단컨대 진지한 반성이란 자신이 범한 죄를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마음속 깊이 사죄하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성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피고인의 주관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제3자인 판사가 제대로 알기는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형사 사건에서는 피고인이 기소된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계속해서 반성문을 제출하면 대체로 진지한 반성이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물론 피해자에게 피해변상을 하고 용서를 받았다면 진지한 반성을 인정받기는 더 쉬울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12년간 2000건이 넘는 형사 재판 사건을 변론해 온 경험상 재판부가 진지한 반성을 인정함에 피해자로부터의 용서는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난 3월 31일 한창 진해에 벚꽃이 만발할 무렵 전국 지방변호사회 회장님들을 모시고 진해 잠수함 사령부를 방문했다. 잠수함 사령부 내부 건물에는 잠수함의 역사, 국내 잠수함의 발전 등을 볼 수 있는 코너가 있었다. 그곳에서 필자는 세계 2차 대전에서 나치독일(제3제국) 해군의 첨병 역할을 한 U-보트 기념물을 볼 수 있었다. 독일 해군의 U-보트는 세계 모든 해군 잠수함 부대의 교본이라고 할 만큼 엄청난 실전 경험을 했고 배울 점도 상당히 많다. 하지만, U-보트 모형을 떠나 잠수함 승무원들의 일상을 적은 수첩이나 더 나가 잠수함 부대 사령관이었던 칼 되니츠 제독의 피규어까지 전시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칼 되니츠는 전범재판을 받고 10년을 복역한 인물이다. 그리고 U-보트가 2차 대전 중 올린 전과 대부분은 전투함이 아닌 군수품 수송함이나 상선이다. 현대인들이 잠수함 하면 떠올리는 그렇게 신사적인 전과를 올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나치독일을 철천지원수로 생각하는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 해군에서 이런 기념물을 전시했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우리 해군이 일본제국주의 상징인 야마토 전함과 그 승무원들의 기념물을 전시했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니, 전시한다는 자체를 상상도 못할 것이다. 2차 대전의 전범국가로서 독일은 전쟁 후 진지한 반성을 했고 일본은 진지한 반성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독일과 일본에 대한 감정이 다를까. 그것보다는 독일은 우리와 먼 나라고, 일본은 우리와 가깝고 추상적이 아닌 직접적인 피해를 줬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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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아베 정권이 들어선 후로 위안부 문제 인정에 매우 소극적이다. 2015년 한국과 일본은 위안부 문제 협상 합의를 했지만 합의문에 대해 우리 국민은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졸속으로 처리를 한 면도 크지만 근본적으로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진지한 반성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일제를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제의 만행을 계속 학습해왔고 마음속 깊이 새겨진 분노로 담아오고 있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의 진지한 반성을 인정함에 피해자의 감정은 다소 부차적이다. 하지만, 위안부 합의를 보면서 진지한 반성을 과연 가해자의 주관적인 감정의 영역으로 놔두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해자의 진지한 반성은 피해자가 납득이 되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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