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12일 국방백서에 언급된 ‘북한=주적’ 규정을 둘러싸고 국회 본회의 통일·외교·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과 장외 성명 등을 통해 공방을 벌였다. 이날 논쟁은 최근 남북 경의선 군사실무회담에서 북한쪽이 주적개념 변경을 요구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문제에 대한 국방부의 공식적 태도는 “남북관계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군사적으로 여전히 현존하는 위협”이라며 “북한이 대남 군사전략을 명백히 수정하지 않는한 주적개념 변경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주적개념에 대한 종전의 태도를 고수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북한=주적’ 개념은 이북을 ‘북괴’라고 부르던 시절의 냉전적 사고의 산물이다. 북한 즉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우리의 영원한 적이 아니다.

국제사회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특정국가를 주적으로 명시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 북한은 이미 유럽의 여러나라와 수교를 하고 있고, 미국과도 지난해 10월 적대관계를 종식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렇게 국제질서가 급변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만 구시대 사고에 얽매여 있어서는 안된다. 더욱이 남북 정상회담 이후 평화와 화해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지금 주적개념을 아직도 국방백서에 명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는 냉전적 방법으로 남북문제에 접근하는 한 평화적 통일은 물론 진정한 화해와 교류도 기대하기 어렵다.

주적개념은 1994년 국방부가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삭제했다가 보수세력의 요구에 밀려 다시 백서에 집어넣었다. 1994년이 어떤 시기인가. 그해 6월 미국이 북한과 핵전쟁을 하기 위해 전쟁준비를 했던 때다. 당시와 같이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주적개념을 삭제했는데 오늘날과 같은 남북 화해시대에 신뢰구축에 걸림돌이 될 주적개념을 고수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당연히 없어져야 할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인다는 것도 창피스런 일이다. 다시는 이러한 소모적인 논쟁이 벌어지지 않도록 정부는 주적개념을 당장 삭제하고 남북간 신뢰구축에 정진하기 바란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