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 이어지며 행사 위축, 개막식 취소 등 자숙 모드
성폭력 교육 등 자정결의

제36회 경상남도연극제가 지난 15일 폐막식을 끝으로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이날 폐회사를 한 경남연극협회 이훈호 회장의 얼굴은 밝았다. 그는 지난 2월 불거진 연극계 성폭력 미투에 그동안 무거운 마음으로 연극제를 준비했을 터였다.

경남연극제는 경남 연극인이 만드는 대표적인 연극 잔치다. 하지만, 미투운동에 따른 자숙 분위기 속에서 축제 분위기를 제대로 낼 수 없었다. 실제 협찬이 일부 취소되는 등 연극계를 보는 시선이 싸늘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경남 연극인은 묵묵히 연극제를 준비했다.

연극제 참여 극단은 보통 2월 초 본격적으로 연극제 연습에 들어간다. 밀양연극촌을 운영하던 연희단거리패 이윤택 연출가의 성폭력 미투 폭로가 불거진 건 설 연휴를 앞둔 2월 14일, 그리고 김해 극단 번작이 대표 관련 폭로가 나온 게 18일이었다. 그렇게 2월은 충격 속에서 지나가 버렸다.

밀양연극협회 김은민 회장은 밀양연극촌이 있는 지역이라 특히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연극제 출품작인 밀양 극단 메들리 <토우>의 연출가다. 김 회장은 2월 내내 여기저기서 오는 전화를 받느라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였다. 아침에 눈 뜨면 바로 뉴스부터 검색했다. 3월에야 겨우 정신을 추스르고 본격적으로 연습을 시작할 수 있었다.

거제 극단 예도 단원은 연극계 미투운동이 벌어지면서 아예 작품을 폐지할 고민까지 했다. 바로 이번 연극제 대상을 받은 <나르는 원더우먼> 내용 때문이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대본 속 어린 여차장들 이야기가 폭로 내용과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이다.

창원 극단 미소 <대찬 이발소>는 연극계 미투운동을 계기로 연극제 한달 전에야 쓴 작품이다. 대본을 쓴 장종도 연출가는 원래는 이발사를 소재로한 다른 내용을 고민하고 있었지만, 이윤택 사태를 보며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 관습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한다.

경남연극협회는 연극제 준비로 바쁜 가운데서도 3월 말 전체 소속 극단을 대상으로 권역별 성폭력 예방교육을 진행했다. 연극제 개막도 굉장히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지난 4일 개막일에는 개막식 행사가 없었다. 미투 여파 속에서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뜻이었다. 경남과기대 아트홀에서 진행한 간단한 축하공연이 전부였다.

사실 경남 연극인에게 이번 연극제를 여유롭게 즐길 여유도 없었다. 예년보다 연습 기간이 짧았기에 공연 전날까지 연습에 몰두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극제 기간 만난 관객은 공연을 즐기면서도 여전히 연극계 '나쁜 관습'에 대한 의혹을 떨쳐내지 않고 있었다.

관객 심다나(28·진주시) 씨는 "연극을 보면서 혹시 저 극단에도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박예지(24·진주시) 씨도 "미투가 나와는 먼 이야기 같았는데, 연극을 보면서 지역 극단에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 했다"고 밝혔다.

경남연극협회는 그동안 두 번의 기자회견을 통해 연극계 악습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면서 뼈를 깎는 자정 노력을 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이제 연극제가 끝난 만큼 약속한 대책을 하나씩 실천해야 할 것이다.

협회는 우선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정유 사무처장은 "앞서 자체 시행한 설문조사는 응답률이 저조하고 피해자 노출 우려 등 한계가 있어, 전문기관에 의뢰해 세밀한 조사를 할 계획"이라며 "피해 사실이 확인되면 협회 차원 징계와 사법처리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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