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정부가 만든 38번째 ‘장애인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진보적인 장애인 단체들은 매년 4월 20일이 되면 집회를 열고 있다. “1년에 단 한 번, 집 밖으로 장애인을 불러내서 일회성 혜택을 주기에 급급한 날. 364일을 집 안에만 갇혀 있게 만들어 놓고는, 단 하루만 집 밖으로 불러내는 장애인의 날은 없어져야 한다”며 대신에 장애인차별철페의 날로 지정하고, 장애차별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준비하고, 맞춤형 복지를 통하여 장애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4월 20일을 전후로 미디어 속에는 장애인 관련 내용이 넘쳐난다. 장애인들을 불쌍하고 나약한 이미지로 조장하고서 “그럼에도~” 식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일상을 용감하게 살아간다는 스토리 구성이 대부분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할 때 ‘장애를 이겨낸’ 서사 구조를 취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러한 서사 구조는 장애 탓에 사회에서 겪는 차별과 어려움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부작용을 만들어낸다. 그리고는 ‘저렇게 힘든 사람도 행복하게 사는데 나도 힘내야지’라는 식의 잘못된 동기부여로 소비되는 문제도 발생한다.

기존 장애인의 날은 시혜적 관점에서 제정된 과정이 있었다. 1970년 국제재활협회에서 그 해를 ‘재활 10년’으로 정하고, 각 나라에 ‘재활의 날’을 지정·기념할 것을 권고하였다. 1972년 4월 11일 한국장애인재활협회에서 재활의 의미가 있는 4월 중, 통계적으로 비가 오지 않는 4월 20일을 선택하여 ‘재활의 날’로 지정하여 행사를 거행하였다. UN이 ‘세계 장애인의 해’로 지정한 1981년에 보건사회부는 4월 20일을 ‘제1회 장애자의 날’로 정하고 기념하였다. 1989년 12월 30일 「장애인복지법」, 같은법 시행령에 의해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하였으며, 1994년 3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포함되었다.

국제 장애인의 날은 12월 3일인데 국내에서는 4월 20일이 장애인의 날이 된 이유는 장애인복지적으로는 의미를 찾을 수 없다. 국가가 정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전두환 정권이 정했다. 특별히 기억해야 할 장애인과 관련한 역사적 사건이나 상황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신군부가 장애인 복지법을 이날 공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다. 서울시의 중증장애인 자립생활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1주일간 동거 가족 외에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장애인이 48% 정도 되며, 1주일 동안 전혀 외출을 못한 장애인도 19%나 된다. 경남의 시군과 비교했을 때 대중교통의 다양성과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아시아의 중심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는 서울시의 현실도 이러한데 재정이 열악한 지방자치단체는 오죽하겠는가?

2015년 UN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지속가능한 개발목표’는 바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을 제시하고 있다.

서민우.jpg

이제는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 그 차별을 은폐하고 정당화하려고 이용하고 있는 장애인의 날에 마지막을 고하고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새로이 거듭나야 한다. 또한, 장애인을 죽음으로 내모는 잘못된 제도들의 청산과 OECD 평균 수준의 장애인복지예산 확보를 해야 한다. 집에서만 지내는 장애인의 자립생활 실현은 결국 인권의 문제 해결에서 시작된다. 저상버스 및 교통약자콜택시 보급률 증가를 통한 장애인 이동권 확보와 활동보조서비스 24시간 지원으로 중증장애인의 생존권 보장을 통해서 경상남도는 장애인이 인간으로서 가지는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