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연극제 리뷰]명대사 열전 (4)

한 사람의 생명은 죽음으로 끝나지만, 그의 삶은 아들, 딸, 제자나 친구들에게로 스며들어 이어진다. 인간 세상살이가 수천 년 이어져 오는 근본적인 힘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다음 두 작품은 이렇게 죽음과 이어짐에 대한 이야기다.

◇이제는 늙어버린 우리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며

극단 마산이 공연한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12일 경남과기대 아트홀)는 극본 자체가 이미 훌륭했다. 이 작품은 김광탁 작가가 간암 말기로 고통받던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생각하며 쓴 것이다. 작가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가족애라는 보편적 정서를 담고 있어, 전국적으로 여러 극단이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지난 11일 끝난 제32회 광주연극제에서는 극단 '청춘'이 이 작품으로 최우수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좋은 극본에 극단 마산의 관록이 더해졌으니 좋은 공연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대본을 직접 읽고 명대사를 뽑아봤다.

"여기 40년이 넘는 고단한 노동이 있고, 이 세상 그 무엇도 눈치 볼 필요없는 나만의 안식이 있고, 훌륭한 자식을 키운 보람, 그 대단한 자존심. 끈덕진 그리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붙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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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마산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한 장면./경남연극협회

극 중에서 둘째 아들이 끊어지려는 생명을 겨우 버티는 아버지를 업고 집 마당을 한 바퀴 돌면서 하는 대사다. 자식과 부모가, 남편과 아내가 살가운 애정 표현을 못 하고 티격태격하며 살아온 것이 지금 기성세대다.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에 나오는 가족도 그렇다. 아버지가 마지막 길을 가려는 시점에서야 겨우 조금씩 마음속 애정을 표현한다. 극 중 어머니의 독백도 이를 잘 드러냈다.

"저 양반이 없다고 생각하면 아들 앞에서도 며느리 앞에서도 기를 못 펴겠어. 이상하제, 그 지겹던 양반이 내한테 그런 힘이 없다고?"

공연 내내 객석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 눈물은 우리 시대 어머니, 아버지에 바치는 미안한 마음이었을 테다.

◇그리하여 삶은 계속되고

"인생은 일장춘몽, 한 세상 울고 웃다 사라지는 꿈이요 우리들 세상살이 또한 화류춘몽, 꽃잎처럼 살다 흘러가는 인생이려니 이 세상이 무대요 인생은 한 편의 연극이로다…."

함안 극단 아시랑의 <처녀 뱃사공>(13일 경남문예회관 대공연장)에서 가수 홍정자 역을 맡은 김수현 배우가 꼽은 명대사다. 이는 극 초반 주인공 윤부길이 자신의 유랑극단을 소개하면서 하는 대사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아련한 회상 같은 느낌으로 한 번 더 등장한다.

내용만 보면 산다는 일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말하는 것 같지만, 극의 흐름을 보면 윤부길의 의지가 손자 윤준에게 이어지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전쟁에 나간 죽은 오빠를 대신해 뱃사공 일을 하는 처녀 뱃사공처럼 삶은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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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극단 아시랑 <처녀뱃사공> 한 장면./경남연극협회

<처녀 뱃사공>은 유랑극단이 주인공인 만큼 차력, 마술, 익숙한 옛 가요 등 보고 들을 거리가 다양했다. 무대 세트와 배우들의 움직임도 대극장 공연에 손색이 없었다. 두 시간짜리 공연을 연극제에 맞춰 90분으로 줄이다 보니 이야기 흐름이 조금 어색한 부분이 있긴 했다. 하지만, 이미 두 번 정도 정식 공연으로 검증을 받은 작품이기에 관객들 호응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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