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연극제 리뷰 명대사 열전 (2)

제36회 경남연극제 공연장은 모두 세 곳이다. 경남과기대 아트홀과 현장아트홀은 각각 80석, 120석 규모 소극장이다. 이에 반해 경남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은 1564석 규모 대극장인데 이 중 400석만 쓴다. 경남연극제 공연장은 제비뽑기로 정했다. 극단들은 가능하면 대극장에서 하길 원한다. 무대가 넓어 세트장 설치가 편하고 공연 자체가 규모 있게 보이기도 해서다. 하지만, 소극장 공연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작은 공간 아주 꽉 차게 활용해 세트를 만들고 그 안에서 배우들이 활개친 다음 두 작품이 특히 그렇다.

◇우리가 어찌 왜놈의 검을 만드노

"비천하게 살아도 야장의 혼은 잃지 말라캤다!"

통영 극단 벅수골의 작품 <쇠메소리>(9일 현장아트홀 공연에서 산양양반역을 맡은 이상철 배우가 뽑은 명대사다. 그는 무기를 만드는 데는 조선 최고인 통영 야소골 야장(대장간) 집단을 이끄는 인물이다. 산양양반은 검을 만드는 기술로 임금을 직접 알현했을 정도로 자부심과 신념이 크다. 그런데 왜군이 쳐들어와 마을 사람들을 인질로 잡고 무기를 만들라 요구한다. 대장장이들은 '우리가 만든 검이 우리 병사를 죽이게 할 수 없다'는 신념과 '나와 내 가족만이라도 어떻게 살아남아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몸부림친다. 이런 상황에서 산양양반은 그의 신념을 지키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야장의 혼이란 말은 극 중 그가 수시로 강조하는 말이다. 경남 지역에서는 나름 연배 있는 극단답게 벅수골 배우들의 묵직하고 진중한 연기가 볼만했다.

거제 극단 예도 <나르는 원더우먼>의 한 장면. /경남연극협회

◇저는 산업역군 여차장입니다

"제가 고향을 떠나 처음 가진 직장은 식모였습니다. (중략) 밥때 되면 시장 봐서 밥상 차려 올리고 남들 다 자고 나서야 이제 좀 머리 붙일라 카는데, 새벽같이 깨워서 또 밥상 차리라 하고…. 그래도 배는 안 곯아서 참을 만은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만 아니었어도…. 생각해보니까 주인아줌마한테 맞아 죽든가 아저씨 피하다 지쳐 죽든가 둘 중 하나겠다 싶어갖고, 몰래 다른 일을 찾아봤는데 그때 신문에서 부산에서 큰 버스 회사가 생기는데 여차장을 구한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산업역군 버스 여차장! 여차장이란 말이 너무 멋있어서 그리고 나중에 버스 기사가 될 거라고 야반도주를 안 했습니까. 그래갖고 부산으로 내려왔지요. 그때 제 나이 열아홉에 여차장이 됐습니다."

거제 극단 예도의 작품 <나르는 원더우먼>(8일 경남과기대 아트홀 공연)에서 내레이션과 중년 희숙 역을 맡은 진애숙 배우가 꼽은 명대사다. 배우들의 열연이 빛나는 무대였다. 관객은 배우들의 감정에 따라 웃고 울고 분노했다.

연극은 1970, 80년대 버스회사 여차장들이 주인공이다. 이 중 희숙이 중심인물로 극 전체를 이끌어간다. 이 대사는 극이 시작되면서 배경이 되는 영상과 함께 주인공을 소개하는 내용 첫 부분이다. 진애숙 배우는 이 대사에 희숙의 삶이 다 들어 있다고 했다. 극 중 사장과 작업반장이 여차장을 성폭행하는 장면은 연기인 줄 알면서도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랬을까. 관객들이 가장 통쾌해했던 대사는 마트 계약직 판매원으로 일하는 중년 희숙이 마지막에 용기를 내 사장에게 내뱉은 '○까'라는 욕설이었다.

통영 극단 벅수골 <쇠메소리>의 한 장면. /경남연극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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