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STX조선해양 노사는 경영정상화를 위한 자구계획안과 노사확약서를 산업은행에 제출하였다. 법정관리로 넘어갈 경우 도산위험까지 있는 STX조선 노사는 상호 양보를 통한 합의안을 도출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산업 합리화 정책을 실행해야 하는 중앙정부의 입장에선 지금 당장 거창한 경기분석이나 시장상황에 대한 전망이 필요한 게 아니다. 경남지역에서 조선업은 2016년까지 약 10만 명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했었지만 2017년 들어 2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이미 사라졌다. 현재 조선업에서 일자리가 급속도로 줄어드는 마당에 산업 구조조정과 대량해고 및 대량실직이 필요하다고 말할 정부는 없을 것이다. 경남지역에서 한국경제가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는 식의 거창한 미래를 운운하면서 조선업 일자리를 줄여도 된다고 말할 대중정치인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당장 닥친 위기상황에서 충격을 줄이면서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지혜와 해법만이 필요할 뿐이다. 이 점에서 STX조선 노사의 자구계획안은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기업 구조조정이라는 상황이 연출되면 노동조합은 무조건 반대부터 외칠 수밖에 없었다. 기업의 경영위기는 노동자 때문이 아니라 기업을 막가파식으로 운영해온 경영진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업의 위기는 더욱 그런 성격이 매우 짙다. 하지만, 기업이 처한 위기상황을 타개하려면 노사가 서로 한발씩 양보하는 지혜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의 노사관계에선 그런 사례를 찾기가 어려웠다. 노사협상에 기초가 되어야 할 신뢰관계가 구축되지 못하다 보니 정말로 필요한 위기상황에선 해법을 뻔히 알면서도 입에 올리기조차 어려웠을 뿐이다.

하지만, STX지회는 임금삭감과 무급 순환휴직에 동의하면서 경영진은 고정비 40% 감축이라는 산업은행 요구안을 시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산업부나 산은 입장에선 불충분한 자구계획안이라고 볼 수는 있겠지만 대립적 노사관계로 점철되어온 우리의 경험에서 매우 소중한 실험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조선업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면 STX조선 사례는 노사관계의 성격변화마저 촉진할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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