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하고 환한 홍춘호(80) 할머니께선

봄날 꽃밭에 서서 한숨에 쉬지 않고 많은 말씀을 해주셨다.

"저 밭에서 10명이 영문도 모르고 총에 맞아 죽었지.

저기 잠복학살터에서도 할머니고 아이들이고 할 것 없이 죽창에 찔리고 불태워졌지.

죽창에 찔리니까 사람이 한 번에 죽지를 못해요.

죽지 않은 이들이 불 속에서 데굴데굴 굴러나오면 그 위로 다시 죽창을 찔러댔지.

토벌대를 피해 큰넓게라는 동굴에 숨어 살 때

남동생 하나는 너무 춥고 배고파서 말라서 죽었어

발각되면 죽으니 나가서 시신을 묻지도 못했지.

그때 나는 열한 살이었고.

여기 무등이왓이 연자방아가 다섯 개나 있던 부자 동네였어.

그런 일이 있고는 지금까지 아무도 여기서 살지 않아.

기억이 무서우니까."

할머니는 작년부터 4·3길 문화해설사로 일하시는데

끔찍한 기억을 다시 떠올릴 때마다 기가 콱 막힌다고 하셨다.

그래도 이렇게들 와줘서 고맙다고 해맑게 웃으실 때

울컥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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