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멀리하려는 남성의 미투 대응방식
공존하며 존중하는 성숙한 관계가 돼야

미투운동이 확산하면서 공공기관에서도 미투운동을 지지하는 여러 행사를 하고 있다. 얼마 전 미투운동을 지지하는 기초지자체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지역의 여성단체, 공무원들이 함께 모여 미투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일상에서 성폭력을 예방하도록 각자 실천할 수 있는 일들, 혹은 다짐들을 쓰는 행사였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이 지긋한 한 여성단체 회원이 "서로 어색하고 그럴 때는 야한 농담이 분위기를 띄우는 데 최곤데…"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어떤 자리인지 모르지 않았을 텐데 이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용기에 놀라웠다. 어쩌면 너무 일상이어서 용기랄 것도 필요없이 그냥 튀어나온 말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야한 농담이 아니고는 분위기를 띄울 수 없다는 생각, 그것이 지금까지 아무렇지 않았다는 것, 그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해 보였던 현실이 지금의 일상화된 성폭력을 만들어 내었을 것이다.

행사를 마치고 나오면서는 한 남성 분이 악수를 청하며 '악수도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이제 악수하기도 무서워요'라는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을 건넸다. 이런 말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호의인지 반감인지 난감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최근 미투운동에 대한 대처방식으로 '펜스룰'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 펜스룰은 미국 부통령 마이크펜스가 어느 인터뷰에서 "부인이 없는 곳에서 다른 여성들과 절대로 단둘이 식사를 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에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남성들이 성폭력의 가해자가 되지 않으려고 여성들과의 접촉 자체를 기피하고 직장 내에서는 여성 직원들과 회식을 하지 않고 업무지시도 전화와 메신저로 하는 등 스킨십을 최소화하는 행동 규칙으로 펜스룰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성폭력으로 오해받을만한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겠다, 또는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을 사전에 조심하겠다는 의도인 것은 분명하나 펜스룰이 과연 미투에 대처하는 올바른 방법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펜스룰'은 지금까지 직장 내 성폭력이 일상적 관행으로 자리 잡은 것에 대한 사회적 반성과 대안을 담기보다는 미투에 대한 또 다른 반감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마치 여성들이 남성의 모든 행동과 말들을 성폭력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여성들도 친근한 관계에서의 스킨십과 성희롱은 구분할 줄 안다. 서로 상대를 어떠한 감정으로 대하는지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남성들이 우려하는 그 오해가 발생할 일은 실제로 별로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직장 내 성희롱과 성추행은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습관이며 문화이다. 상대가 싫어하는 행동과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상대가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이자 동료로서 상대를 배려하는 기본적인 매너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접촉의 차단이 아니라 기본적인 매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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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스룰이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태도가 여성에 대한 또 다른 차별과 배제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의 조직 내 관행과 부조리 탓에 여성들의 능력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승진이 차단되는 유리천장은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펜스룰이 여성의 채용을 기피하게 만들고 유리천장을 더욱 공고히 할 것에 대한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미투에 대응하는 올바른 자세가 펜스룰처럼 여성과의 접촉을 사전에 차단해 또 다른 차별과 배제를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며 매너를 지키는 것, 공존을 통해 성숙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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