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루트 따라 떠나다] (4) 내 영혼에 오래 머문 생각 하나
괴테 여정에 따른 여행길 이탈리아 볼차노서 '첫발'
안정적 생활 벗어던졌던 그, '생각의 여행'한 건 아닐는지

나는 '드디어' 이 도시에서 괴테와 합류를 했다. 그가 오늘의 체코 땅인 카를스바트(오늘날의 지명은 카를로비바리)를 잠행하듯 떠난 후 8일 만이었다. 그동안 그는 독일의 레겐스부르크, 뮌헨, 볼프라첸하우스와 오스트리아의 인스브루크를 거쳐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그의 나이 37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출간한 지 12년, 바이마르공화국에서 국무에 종사한 지 10년 만이다.

그의 행장은 단출했다. 짐을 실은 수레 한 대에 동행이라고는 마부뿐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한 나라의 국무를 총괄했던 37세의 전도가 양양한 유력 인사의 그랜드 투어치고는 초라할 지경이다. 유력 인사 자제의 그랜드 투어는 동행 교사와 하인, 심지어 의사와 회계사, 화가까지 동반했던 경우가 있었으니 말이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의 모든 것과 만나는 것이다. 전 인격과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만나는 것이다. 그가 요한 케스트너를 만나지 않았던들, 샤를로테 부프라는 케스트너의 약혼녀를 만나지 않았던들 그의 초년 히트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후에 바이마르에서 카를 아우구스트 대공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이탈리아 여행' 자체도 시도되지 않았을 것이며 오늘 나와의 만남도 없었을 것이다. 나 또한 떠나지 않는들 누구를 만날 수 있겠는가?

볼차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본 시가지. 1930년대 사진과 비교해서 조망할 수 있다. /시민기자 조문환

우리가 만난 장소는 골목시장이었다. 이날도 복숭아와 배 같은 과일을 파는 아낙네들이 장터에 앉아서 자기네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직접 팔았다. 이 시장은 예전에는 비단이나 산악지대에서 생산되었던 동물 가죽도 거래가 되었고 볼차노 연시(年市)가 열리는 날에는 인근 나라와 도시에서 가지각색의 물건이 거래되었던 곳이다. 어떤 상인은 당장 물건 거래도 중요했겠지만 서로 안면을 트고 신용을 쌓기 위한 목적으로 방문하였다.

1930년대의 볼차노 사진을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산언저리의 산책로에서 볼 수 있으므로 내려가는 도로만 명확하게 보일 뿐 다른 것은 당시에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약 80년 만에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다. 당시에는 생각보다 동네가 작았다. 지금의 성당과 그 인근 주택들 그리고 트렌토 쪽인 것이다. 볼차노 사람의 삶의 중심지는 지오바니 광장과 볼차노 대성당 부근이다. 이곳은 아침저녁 할 것 없이 주민과 여행자로 북적거렸다.

나는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면서 늘 볼차노를 상상하고 머리에 그렸다. 발달한 지도 덕분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좁은 계곡과 알프스 산지, 도시를 관통하는 강, 포도밭, 성당, 내 여정의 사실상의 출발지인 볼차노와 주파수를 맞춰놓고 있었다. 지금까지 지나온 오스트리아의 여정은 앞으로 준비하는 예비적인 여정이었으니 사실상 여행의 시작은 이곳부터이기 때문이었다. 소도시인 이 도시는 오랜 역사를 통해서 사람이 모이고 흩어지는 문화의 용광로와 같은 역할을 했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지오바니 광장. 이곳은 볼차노의 정치·종교·문화의 중심지였다.

출발하기 두 달도 더 전에 예약해놓은 숙소에 도착하여 주인인 시에그리드의 언니에게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은 어떤 언어가 이 도시의 주 언어인지였다. 우리는 오로지 단일 언어로만 소통을 해왔기에 이들의 언어적 감각은 어떤 것일지 매우 궁금했었다.

그녀의 대답은 독일어와 이탈리아어가 거의 같다고 했다. 어떤 언어가 우선인지를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떤 학교는 독일어로 수업을 하고 어떤 학교는 이탈리아어로 수업을 한다고 했다. 국경을 맞대고 전혀 제한 없이 이동할 수 있는 도시라면 그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도시의 간판이나 홍보물도 두 언어가 병기되었지만 그래도 좀 더 강하게 다가오는 느낌은 이탈리아어 쪽이었다.

근 30년 가까이 하나의 일에 몰두해왔던 삶을 던져버리고 여행이라는 것으로 급선회한 지금까지는 주로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고, 궁리하고, 부탁하고 했던 삶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두 스스로 해야 하는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저녁에 침대에 내 몸이 던져질 때까지 생각이나, 궁리나, 부탁이 아닌 내 손과 발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괴테도 나와 다를 바 없었나 보다. "스스로 자신을 보살펴야 하는 지금, 점점 더 깊은 주의력을 동원하면서 겨우 며칠 만에 정신의 탄성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하면서 스스로 환전하고 지급하고 기록하는 일을 손수 하고 있다. 여행은 숙고도 하게 되지만 직관적 사고가 훌륭하게 작동되는 시간이다.

물이 고이면 썩기도 하지만 더 많은 물이 고이면 보가 터지고 보가 터지면 새로운 물길이 생기고 새로운 물길이 생기면 새로운 문명이 발생하는 것이다. 사람의 영혼이나 정신도 같은 것이어서 하나의 생각이 넘쳐나게 되면 분명히 그쪽으로 발전하게 되고 발전한 그 생각으로 행동이 이어지게 마련이다.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간절하지 못했거나 생각이 그만큼 미치지 못한 것이리라.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다른 것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지니 모든 것이 다 좋을 수는 없다.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이 있는 것은 순리가 아닐까? 내 속에 오래 머문 생각, 그것이 작은 봇물이 되어 터져나와 새로운 물길을 만들었으니 앞으로 피는 그곳을 주로 흐르게 될 것이다. 이미 너무 오래 내 영혼에 머문 생각 하나를 실천할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인들 내주지 않으랴!

괴테가 내놓은 것은 40년 가까이 살아왔던 그의 머문 삶이었다. 잠행하듯 체코의 카를스바트를 떠난 것은 그만의 영혼에 머문 생각을 실천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오랜 세월 생존의 터전으로 삼아왔던 직장을 내려놓고서 숨겨놓았던 황금 덩어리라도 찾기 위한 것처럼 모든 것을 제쳐둔 채 떠나왔다. 모두 의아해했다. 미래가 어느 정도 보장되는 사람이 뜬금없이 여행은 왜 하려고 하느냐는 의견들이었다. 괴테가 그랬듯이 내 영혼에 오래 머문 생각 하나를 실천하려는 것이라면 어떤가? 그곳의 시작이 볼차노라면 또한 어떤가?

사람이 모이고, 물이 모이고, 눈이 내리면 그 눈 녹은 물이 모이고, 산에서 흩어졌던 빛이 모여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들고, 서쪽으로 스위스와 프랑스에서, 동쪽으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마치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모여드는 형상처럼 알프스와 티롤의 오목한 분지 볼차노에서 내 영혼에 머문 생각을 풀어헤쳐 놓는다면 어떤가? /시민기자 조문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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