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튼 누르면 출력되는 문학자판기 관심
입만 열면 막말 쏟아내는 홍 대표 연상

자판기(자동판매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커피, 음료 등에 국한됐던 품목도 신선식품, 화장품, 꽃, 과일, 책 등으로 다양해졌다. 게다가 버튼을 누르면 문학이 나오는 자판기까지 등장해 관심을 끈다. 버튼을 누르면 폭 8cm의 종이에 500~2000자 안팎의 글이 인쇄돼 나온다. 국내외 유명 작가의 시나 소설, 수필, 명언 등이다. 경남엔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경기도 용인시를 비롯해 광명시 파주시, 강원도 강릉 등에서 꾸준히 설치되고 있다. 지친 마음을 따뜻하게 달래주는 글 자판기도 이색적이다. 부산대학교 대학생 창업팀이 개발해 교내 도서관에 설치한 이 자판기는 재학생들로부터 공모한 글을 손바닥만 한 종이에 뽑아준다. '마음약방'이란 이름의 자판기도 등장했다.

삶에 지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이 자판기들과는 달리 우리에겐 지금 또 하나의 자판기가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개발한 '막말 자판기'(?)다. 정치인들의 말은 생명이고 그 사람의 품격을 대변하는 만큼 이 자판기의 등장은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돈 1원 받지 않고 친한 지인에게 국정 조언을 부탁하고 도와준 죄로 파면되고 징역 24년 가는 세상."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개발한 자판기에서 최근 뽑아낸 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이 선고되자 '공주'를 '마녀'로 만들었다며 그를 감싸는 자판기 속의 말은 때에 따라 달라진다. 지난해 3월 대선 경선 당시에는 "우파의 대표를 뽑아 대통령을 만들어놨더니 허접하고 단순한 여자였다. 탄핵당해도 싸다"며 "춘향이인 줄 알고 뽑았는데 향단이었다"는 그야말로 '허접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역시 이 '막말 자판기'의 가장 큰 매력은 뭐가 나올지, 어떻게 반전될지 모르는 말이 쏟아진다는 것. '바퀴벌레'는 물론 '암덩어리', '연탄가스' '영감탱이' 등이 '문학적으로'(?)포장되어 나온다.

자판기를 개발한 주인공답게 그는 스스로 "우리가 통상 쓰는 서민적 용어를 알기 쉬운 비유법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자신의 세 치 혀를 포장할 줄 안다. 홍 대표의 말을 두고 그에게 빌붙은 측근들은 '직설의 미학' '본질을 꿰뚫는 언어근육'이라며 치켜세운다. 이 말대로라면 앞에서 예를 든 '문학 자판기' '글 자판기'보다 미학적이고 이즈음 서민들에게 꼭 필요한 자판기다. 그러니까 우리가 통상 쓰는 서민적 용어를 알기 쉬운 비유법으로 표현한, 이른바 그의 혀에서 나온 말이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처럼 쏟아지는 자판기인 셈이다. 실제 진해 벚꽃축제가 시작된 지난달 31일 그는 '막말 논란'과 관련, "나는 막말을 한 일이 없다"고 적극 반박했다.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그 상황에 가장 적절한 비유를 하면 할 말 없는 상대방은 언제나 그걸 막말로 반격을 한다"는 것이다. "나를 막말 프레임에 가둔 것의 출발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말"이라며 "서거했다는 말을 했다면 그런 프레임이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자살이라는 표현은 가장 알기 쉬운 일상적인 용어인데 자기들이 존경하는 전직 대통령을 모욕했다고 받아들이다 보니 그걸 막말이라고 반격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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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런저런 주장은 과연 타당할까.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11년 10월 '이대 계집애들' 발언 등은 건너뛰더라도 경남에서 벌어진 일만 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2012년 11월엔 방송사 경비원에게 "니들 면상을 보러 온 게 아니다. 네까짓 게"라고 해 논란이 됐다. 당시 새누리당 경남지사 후보로 한 종합편성채널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하려고 이 방송사를 찾았는데, 경비원이 입구에서 출입을 통제하며 신분증을 요구하자 "날 불러놓고 왜 기다리게 하느냐. 이런 데서 방송 안 하겠다"며 승강이를 하는 과정에서 이같이 말한 사실은 아직도 회자하고 있는 막말이다. 이 나라에 산다는 게 참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명색이 가장 많은 의원을 거느린 야당의 대표라는 사람의 입과 혀가 어떻게 이렇게 역겨울 수 있을까.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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