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분권이다] (13) 공천서 드러난 지방정치 종속
지방선거 중앙당 일방 공천에 예비후보 경선 기회 빼앗겨
지방자치 중앙정치에 종속 '지역주의 투표'행태 탓
정당공천 폐지·상향식 공천 현 구조선 실현 가능성 낮아

최근 경남에는 6·13지방선거 공천 논란 기사가 쏟아졌다.

"조진래 전 경남개발공사 사장이 자유한국당 창원시장 후보로 결정된 데 따른 후폭풍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후보 교체를 요구하며 중앙당에 재심사 신청을 하는가 하면, 탈당을 기정사실화한 당원이 속출하고 있다. 한국당이 애초 약속과는 달리 서둘러 조진래 전 사장을 공천한 이유가 경찰 수사를 무마하려는 의도라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경남도민일보〉 3일 자"

당연히 안상수, 강기윤, 김충관, 김종양, 윤대규, 최형두 예비후보는 경선 기회를 박탈당했다.

중앙당 일방 공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종잡을 수 없는 지방선거 공천 행보가 빈축을 사고 있다. '측근 공천' '사천' 논란으로 시끄러운 조진래 창원시장 전략공천에 더해 '가능성 제로'라고 호언하던 김태호 전 경남지사 후보 제안으로 정점을 찍었다.- 3일 자"

"자유한국당 경남도당 공천관리위원회는 2일 6·13지방선거 광역·기초의원 3차 단수 경선 후보자를 각각 발표했다. …도의원 공천 결과를 두고 반발 조짐이 일고 있다. 낙천한 정광식 도의원은 3일 기자회견을 열어 공천 과정 문제점과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3일 자"

다음날 정 의원의 기자회견 내용이 보도됐다. "이번 공천은 해당 지역구 이주영 국회의원의 '사천'에 따른 것이다. 지금이라도 공정한 경선을 치르도록 중앙당 공심위가 바로잡아야 한다."

"대통령님, 잘 계셨어요?", "저희들은 전라도 고흥에서 왔어요. 보고 싶어서요." 전라남도 고흥 군민들이 지난 6일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지역주의 투표 행태의 유래는 그리 오래지 않다. /이일균 기자

'전략공천'을 일삼으며 '측근 공천' '사천' 논란을 자초한 자유한국당의 중앙당 공심위에 정 의원은 일말의 기대가 남아 있었을까?

이 문제에서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예외가 아니다.

"김경수(더불어민주당·김해 을) 의원이 2일 경남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김 의원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남의 지방정권 교체와 벼랑 끝에 선 지역경제와 민생을 살리기 위해 출마를 결정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사실상 단일후보 추대 전략공천이다. 김 의원 회견은 이날 오후 2시 30분께 열린 추미애 민주당 대표와 공민배·권민호·공윤권 민주당 경남지사 예비후보 간담회가 끝난 직후 진행됐다.-3일 자"

역시 경선 기회를 빼앗긴 공민배·권민호·공윤권 예비후보는 추미애 대표로부터 무슨 말을 들었을까? '선당후사' 하라는 말? 아니면 그렇고 그런 제안들?

당선 가능성과 인지도를 내세워 중앙당에서 내리꽂는 식의 일방적 공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번 자유한국당 공천 논란의 주역인 홍준표 대표 역시 2012년 12월 도지사 보궐선거 때 경남 땅에 뚝 떨어졌다.

중학 입학 이후 50년간 경남을 떠났던 인물이 하루아침에 도지사로 당선되고, 4년 4개월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보궐선거 직전까지 그는 정치적 퇴물로 취급됐다. 원내대표, 당 대표를 거쳤지만 국회의원 끈은 떨어졌다. 그런 그가 일약 도지사로 당선됐던 것은 '순전히' 새누리당 간판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는 경선은 거쳤다. 2012년과 2014년 새누리당 도지사 후보 경선에서 박완수 후보와 대결했다. 그런데 지금은 경선조차 보장되지 않는 일방적으로 내리꽂는다. 이러니 지방선거 후보들이 무서워하는 건 유권자가 아니라 공천권자다.

원인은 '지역주의 투표' 행태 때문이다. ○○당 간판만 달면 당선되는 지역주의 투표는 지방자치를 중앙정치에 종속시키는 결정적 원인이다. 이는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와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거치면서 싹이 텄고, 1990년 노태우·김영삼·김종필에 의한 3당 합당으로 뿌리를 박았다.

지난 2012년 11월 25일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 후보 등록하는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경남도민일보 DB

박정희 치하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는 전남에서 34.4%를 얻었고, 낙선한 신민당 김대중 후보는 부산시에서 43.6%를 획득했다. 1970년대까지 투표 행태는 지역주의보다는 '여촌야도'였다. 대통령이 속한 여당은 시골에서 강세를 보이고, 야당은 도시에서 강세였다. 도시지역 국회의원 열세를 만회하려고 박정희 대통령이 중선거구제 개정을 주도할 정도였다.

정당공천 폐지?

일방적 공천과 지역주의 투표를 극복하기 위해 나온 대안이 '기초지자체 선거 정당공천 폐지'다. 시민 생활과 밀착된 기초단체장과 의원 선거만이라도 정당공천을 폐지해 영향권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1995년 초대 지방자치 단체장·의원 통합선거부터 2002년 지방선거까지는 실제로 그랬다. 당시 공직선거법은 '자치구·시·군의원 선거의 후보자와 무소속 후보자는 특정 정당으로부터의 지지 또는 추천받음을 표방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헌법재판소가 이를 뒤엎었다. 2003년 1월 30일 선고에서 관련 규정을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지방분권과 자율성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선거 후보자에 대해 정당 표방을 금지해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헌법에서 도출되는 과잉 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 …자치 기능 보장의 관점에서 볼 때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나 광역의원 선거는 기초의원 선거와 아무런 본질적 차이가 없는데도 지방선거 중 기초의원 선거의 후보자만을 불리하게 달리 취급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 이에 따라 2006년 제4회 동시지방선거 때부터 기초선거 정당공천은 시행됐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해 대선 주요 후보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공약했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정당공천이 현재 지역주의 정치구조 아래 심각한 폐단을 부른다"고 했으며,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기초단체가 정치적 분쟁과 결별하기 위해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도 "기초단체 정당공천과 함께 지역주의, 진영정치를 득세하게 한 소선거구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입장이 달랐다. "왜 정당공천에서 원인을 찾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수많은 생각을 크게 몇 갈래로 수렴하는 역할은 정당만이 할 수 있고, 이런 정당정치를 구현하는 유력한 수단이 공직선거 후보자의 정당추천제라는 것이다. 지방의 중앙정치 의존은 지방분권과 재정 확충으로 해결해야 한다. 정당별 상향식 공천을 제도화하고, 책임정치·풀뿌리정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향식 공천제'는 과연 현실 가능한 이야기인가?

이에 대해 정의당 여영국 도의원은 지난해 <경남도민일보> 인터뷰에서 "정당에서 제대로 검증된 사람을 공천하면 책임 있는 정치를 할 수 있다. 후보 선출 방식, 민주적 절차, 당원 추천 등 공천 과정이 제대로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금 같은 비민주적 정당 구조에서 상향식 공천제 실현 가능성을 확신하는 이들은 드물다. 그래서 나오는 요구가 '지역정당 허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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