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통영국제음악당 블랙박스 홀에서 통영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정윤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실내악 중심의 음악회였지만 정윤주의 음악을 단편적으로라도 이해할 수 있는 뜻깊은 음악회였다.

통영국제음악제는 '윤이상 음악제'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윤이상 음악 중심에서 새로운 지평을 넓히는 통영음악제로 탈바꿈하고 있다. 작년에 윤이상 탄생 100주기를 맞았고 올해는 그의 유해가 옮겨져 이 정부가 남북대화를 주도하는 정치적인 분위기가 고조되는 틈바구니에서 귀향이라는 주제를 담은 음악제의 한 구석에 정윤주 음악은 귀향이라는 주제를 더욱 뜻깊게 하였다.

정윤주는 토박이 통영사람이다. 윤이상은 산청 덕산에서 태어나 어릴 적 통영에서 자랐다. 그리고 한 살 아래인 정윤주와 초등학교(보통학교)를 함께 다녀 죽마고우였다. 아마도 두 사람의 영혼이 함께 만나 기뻐할 것으로 생각이 든다.

이번 음악회를 접하고 우리나라 현대 음악사를 새로이 써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절실한 바람이 일게 되었다. 그럴 적에 정윤주와 그의 스승인 임동혁(任東爀)으로부터 한국 현대음악사가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정윤주는 가장 통영적인 작곡가다. 가장 한국적인 작곡가이며, 가장 세계적인 작곡가라는 등식을 떠오르게 했다. 정윤주는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아니한 유일한 한국의 대작곡가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천재적인 작곡가이다. 백남준, 윤이상은 모두 외국에서 제도권 교육을 받았지만, 정윤주는 홀로 국내 전통음악가와 같이 음악을 혼과 마음과 몸으로 익혔다.

그 시대 서양의 가장 앞선 사람들의 음악과 한국 전통음악을 잘 녹여서 융합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새로운 창작가였다. 그의 첫 번째 작품인 '현악 4중주 1번'은 전쟁 중인 1950년 12월 통영중학교 음악교사로 재직할 때 작곡되었다. 이 작품은 형식, 음의 배열 등 한국 전통음악의 바탕 위에 쓰인 혁명적인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절제되고 정돈되어 한국의 문인화를 접하는 듯하였다. 한국 현대음악의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정윤주는 가곡을 많이 쓰지 않았다. 그는 시를 좋아했지만, 가곡을 많이 작곡하지 않은 것은 시를 너무 깊이 음미해서 그 가락을 만들어내기에 깊은 고심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복사꽃 그늘에 서면' '내가 그의 이름을' '아지랑이' 등 비교적 초기의 작품인데 시의 억양과 뜻을 녹여내는 데 심혈을 기울인 것 같다. 비교적 그의 만년의 작품인 가야금과 첼로를 위한 2중주 '바다 위의 달빛'(1995), 가야금과 첼로를 위한 '배꽃과 벌'(1994), 플루트와 가야금을 위한 '석란'(1992) 등은 한국 전통악기와 서양악기의 이질적인 면을 조화롭게 대비시켜 완성도를 높인 전형적인 작품이었다.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산수도'(1971), 4대의 첼로를 위한 4중주 음시 '봄날'(1996) 등은 악기들 표현의 폭을 넓혀주는 미디어로서의 활용이 돋보였다. 현악기와 타악기를 위한 '향로'는 1970년 작품인데 이번 연주된 작품으론 가장 큰 규모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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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하늘에 통하는 작품이었다. 그의 음악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음악이었다. 이 작품이 쓰이고 나서 1978년 무령왕릉에서 큰 향로가 출토되었다. 이 작품을 듣고 백제 향로 생각이 들었다. 하늘에 상달되는 그의 음악, 통영에서 나고 자란 정윤주의 음악은 우리의 삶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값진 유산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번 연주회를 통해 경남쳄버쏘싸이어티와 지휘자 차문호 교수, 진규영 통영국제음악재단 상임 부이사장의 배려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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