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멍 손잡고 달리고 달렸겠지
사망자 10명 중 1명은 아이
학살의 고통 시·소설에 담아
'누가 왜 그랬나' 묻고 있어

세계사에 기록될 만한 학살. 하지만, 이런 건조한 수식어로는 사실 잘 와닿지 않는 게 제주 4·3입니다.

한국전쟁 전후 기간 약 3만 명이 4·3 학살로 목숨을 잃었다고 추정합니다. 공식 집계는 1만 4000여 명입니다. 이 중에서도 15세 이하 아이들이 1310명, 전체 10%입니다. 특히 3세 이하 아기들이 339명에 이른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너븐숭이에 가면, 있다 / 이름 없는 이름의 이름들이 있다. / 김상순 자 여 3세 1949년 1월 17일 북촌교 인근 밭에서 토벌대에게 총살당함 / 김석호 자 여 7세 1949년 1월 17일 북촌교 인근 밭에서 토벌대에게 총살당함 / 김석호 자 여 9세 1949년 1월 17일 북촌교 인근 밭에서 토벌대에게 총살당함 / 김완기 자 여 6세 1949년 1월 17일 북촌교 인근 밭에서 토벌대에게 총살당함 / 김완림 자 남 4세 1949년 1월 17일 북촌교 인근 밭에서 토벌대에게 총살당함 / 김완림 자 남 6세 1949년 1월 17일 북촌교 인근 밭에서 토벌대에게 총살당함 / 한석찬 자 남 2세 1949년 1월 17일 북촌교 인근 밭에서 토벌대에게 총살당함 / 이름 없어도 영원히 기억해야 할 이름이 / 있다, 북촌 너븐숭이에 가면"

▲ 제주 4·3평화공원 내 희생자 이름을 새겨놓은 각명비 일부. 2세, 8세 아이들이 포함돼 있다. /이서후 기자

한국작가회의 소속 시인 90명이 참여해 만든 4·3 70주년 기념 시 모음집 <검은 돌 숨비소리>(걷는사람, 2018년)에 김수열 시인이 쓴 '몰명(沒名)-애기무덤' 전문입니다.

이런 아이들의 죽음을 두고 그저 광기의 시대였다고 넘겨버리기에는, 아니 그러려면 도대체 사람이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 자체를 포기해야 합니다. 4·3 학살은 사람의 이름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 검은 돌 숨비소리 > 신경림 외 지음

이승만 정권 아래에서 탄압이 심해지자 남조선노동당 제주도당이 무장 폭동을 감행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남로당 생존자들도 토벌대가 그럴 정도로 끔찍하게 '초토화 작전'을 감행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증언합니다.

오랜 군사독재 정권들을 거치며 4·3은 제주도민들에게도 금기였습니다. 그 시퍼런 금기를 깬 것은 제주 출신 소설가 현기영의 단편소설 <순이 삼촌>(창작과 비평, 1987년)이었습니다.

현기영은 이 소설을 쓰고 군 수사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습니다.

< 순이 삼촌 > 현기영 지음

"그러나 작전명령에 의해 소탕된 것은 거개가 노인과 아녀자들이었다. 그러니 군경 쪽에서 찾던 소위 도피자들도 못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총질을 하다니!"

삼촌이라지만 주인공 순이는 나이 든 여성입니다. 제주도에서는 촌수를 따지기 어려운 먼 친척 어른을 남녀 구별 없이 흔히 삼촌이라고 불러 가까이 지낸다고 소설은 설명합니다. 순이는 4·3 학살 당시 두 자식을 잃고 기적적으로 혼자 살아남습니다. 학살은 자신이 일구던 '옴팡밭'에서 일어났습니다. 순이는 평생을 신경 쇠약과 환청에 시달리다 결국 그 '옴팡밭'에서 자살을 합니다. 소설은 순이 삼촌이 자살한 원인을 추적하는 내용입니다.

허영선 제주4·3연구소 소장이 쓴 책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서해문집, 2014년)에는 '아동과 여성 그 숨죽인 고통'이란 섹션을 통해 <순이 삼촌> 속 이야기처럼 여성과 아이들이 당한 수난을 잘 정리했습니다.

학살을 피해 중산간지대로 피신한 4·3 당시 아이들 모습. /제주4·3평화재단

"살자고 피신한 굴속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는 아이들이었지, 아이의 울음소리 때문에 많은 사람이 숨은 은신처가 발각될 것이 두려웠다. 때문에 아이의 입을 틀어막았다가 아이가 숨지는 일도 일어났다."

이렇게 잠시나마 학살은 피했지만, 학살보다 잔인한 상처가 사람들 마음을 후벼 팠겠지요.

"남원리의 한 아낙네는 만삭의 몸으로 토벌대를 피해 오름과 계곡을 달리다 그만 아이를 낳았고, 아이는 곧 죽었다. 어느새 할머니가 된 그녀는 지금도 그때 죽은 아이를 생각하면 큰 죄를 지은 것만 같다고 한다."

<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허영선 지음

시인이기도 한 허영선 소장이 이 할머니의 증언을 듣고 쓴 시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4·3의 그 기막힌 끔찍함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아가야 / 거친오름 능선이 발딱 일어나 나를 일으켰고/ 나는 맨발로 너를 품고 사생결단 내질렀다/ 네 곧 터져 나올 숨소리 막아내며 달렸다 / 거친오름 낮은 계곡으로 치달을 때 / 기어이 너는 세상을 열었구나 / 와랑와랑 핏물 흥건한 바닥에 너를 내려놓고 / 불속 뛰듯 달려야 했다 아가야 / 길적삼 통몸빼에 궂은 피 계곡으로 / 콸콸 쏟아져 내렸으나 / 너를 어쩌지 못했다 아가야 / 내달릴 수밖에 없었다 / 그때 내 몸은, 검붉다 못해 뜨거운 용암덩이 / 나의 몸은 나의 몸이 아니었다 아가야 / 용서해라 사정없는 칼바람은 / 죄업으로 몰아친 내 심장을 가격했다 / 너를 버티게 해 줄 숲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가야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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