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 본질은 사회적 약자의 절규
사람이 하늘처럼 대접받는 세상 오길

구한말 봉건질서가 무너지고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을 때 동학의 창도자 수운이 '후천개벽'을 주장하며 '새로운 문명세상의 열림'을 주창하다가 당시 기득권 세력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의 도통(道通)을 이은 혜월 역시 지명수배를 받아 숨어 지내던 중 하루는 야음을 틈타 신도 집을 찾았다. 마당에 이르렀을 때, 문간방에서 짤칵짤칵 베를 짜는 소리가 들려왔다. 혜월이 걸음을 멈추고 집주인에게 물었다. '누가 베를 짜고 있습니까?' '저희 집 며느리가 베를 짜고 있습니다.' 다시 혜월이 물었다. '지금 누가 베를 짜고 있습니까?' '저희 집 며느리가 베를 짜고 있습니다.' 혜월이 또다시 물었다. '지금 누가 베를 짜고 있습니까?' '지금 저희 집 며느리가 베를 짜고 있습니다.' 혜월이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말했다. '아닙니다. 지금 하늘이 베를 짜고 있습니다.' 이 소스라치게 감동적인 이야기가 인내천(人乃天)의 배후 스토리다.

이조 오백 년의 오랜 봉건사회는 세상을 거미줄처럼 종횡으로 나누어 차별화하고 서열화하였다. 양반과 상민, 적자와 서자, 남자와 여자의 질서 등은 사회를 유지하는 근간이 되었다. 나름 그 시절 세상을 끌어가는 괜찮은 제도적 방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차별의 해묵은 관습은 곪을 대로 곪아 공동체를 약화시키고 마침내 억눌린 민심은 폭발하였다. 실은 지금도 목하 폭발의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동안 양반과 상민이기 전에 사람이었던 것을 잊었다. 적자와 서자이기 전에 사람이고 남자와 여자이기 전에 사람이었던 기억을 잊은 것이다. 노인과 젊은이이기 전에 사람이고 흑인과 백인, 혹은 황인이기 전에 사람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음을 잊었던 것이다. 봉건의 유산들이 많이 무너졌다고 하나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잔해들을 본다. 양반과 상민의 신분계급과 차별은 금수저와 흙수저의 신분세습으로 형식을 바꾸었을 뿐. 남성과 여성의 차별은 사회적 강자와 약자의 갑을 문화로 변질하였을 뿐이다. 여성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의 대표다. 지금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는 Me Too의 본질은 억울한 약자, 특히 여성들의 절규가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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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하늘이다. 인권은 하늘이 주신 선물이다. 사람이 하늘처럼 대접받는 세상. 종교는 더는 아편과 같은 몽롱한 하늘나라 이야기로 세상의 초점을 흐리거나 미래세에 기피하여 심리적 위안을 일삼는 행태를 버리고 지상의 낙원에 대한 비전을 이야기해야 한다. 정치도 기득권의 묵은 관행을 핑계 대지 말고 '사람이 사는 사회' '강약이 함께 조화로운 사회'에 대한 구체적 정책 실현에 나서야 한다. 약자도 인권은 투쟁에 의해서만 쟁취되는 것이 아니라 자력으로 우뚝 서는 성찰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임을 자각했으면 싶다. 새 봄날, 가지가지 꽃들이 흐드러져 제멋에 겨운 것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도 사람마다 다 제 뜻을 따라 조화롭게 피어났으면 좋겠다. 그러기로 하면 아직도 사회적 강자들의 절제와 너그러움이 많이 필요한 때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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