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림시장에서 먹었던 튀김가루 올린 우동의 맛

창원 출신의 박상현(47) 씨는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따비)라는 책으로 유명한 음식평론가이자 맛칼럼니스트다. 박 씨는 "와인을 좋아해 관련 글을 쓰게 됐고 블로거로 활동하다 여기까지 왔다"며 "많은 사람이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자기선택권을 갖고 음식을 고르고 먹는, 다양한 음식과 다양한 취향이 공존하는 세상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특별했던 할머니의 음식 솜씨

Q. 창원 출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출생지 등 간략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1971년 창원시 상남동에서 태어났고 상남초등학교를 5학년 때까지 다니다 부산으로 이주했습니다. 친가, 외가 모두 창원 토박이였어요. 친가는 천선동, 외가는 상남동에 주로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할머니가 상남시장에서 50년 가까이 포목점을 하셔서 친척이나 이웃사촌 대부분이 장사를 했죠. 지금도 창원에 사는 친척이 많고 저도 벌초 등을 하러 종종 찾습니다."

Q. 어릴 때 기억이 남아 있습니까.

"가족, 친척 모두 워낙 가까워서 이 집 저 집 전전하며 밥을 먹기도 하고, 집안 대소사는 대부분 동네 사람 모두가 함께 준비하고 즐기는 잔치 분위기였습니다. 당시는 창원이 계획도시로서 막 지정되고 개발되던 때였습니다. 지금의 창원시청과 경남도청 주변에 건물은 하나도 없고 '여기는 무슨 건물이 들어설 부지다'라는 팻말만 있던 시절이죠. 얼마 전 강의 때문에 창원을 갔더니 제가 태어나고 살았던 집은 상가 건물로 변했더군요. 저희 집터로 짐작되는 곳이 마침 참치 전문점이어서 모처럼 과거를 회상하며 술 한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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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 박상현 씨 제공

Q. 음식 전문가이니 음식에 관한 기억도 묻지 않을 수 없네요.

"할머니 음식 솜씨가 특히 좋았습니다. 동네 대소사가 있으면 음식을 해주러 다니시기도 했고 저희 집 제사가 있는 날이면 동네 어르신들이 밥을 먹기 위해 집 앞에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먹던 음식 말고는, 창원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고 오히려 마산이 많이 떠오릅니다. 당시만 해도 마산은 도시였고 창원은 아직 시골이라 제사나 집안 행사 등 큰 장을 볼 때면 31번 버스를 타고 마산으로 갔습니다. 부림시장과 어시장이 주로 찾던 곳이죠. 부림시장 좌판에서 먹었던, 튀김가루를 고명으로 올린 우동은 지금도 제 기억 속의 소울 푸드로 남아 있습니다. 고려당에서 먹었던 빵도 어린 입맛을 사로잡았죠."

Q. 부산에는 왜 가게 된 건가요. 그리고 서울에는 또 언제, 어떤 계기로 자리 잡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어릴 때 꽤 부유했는데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갑자기 부산으로 가게 됐습니다. 초기 부산 생활은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정서적으로도 적응이 쉽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완전히 '부산사람'으로 적응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창원사람'보다는 '부산사람'이라는 의식이 더 강해요. 서울은, 맛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서울과 부산을 오가다 3년 전부터 완전히 이주하게 됐습니다. 글 쓰고 방송 출연하고 먹고 살기 위한 게 크지만 무엇보다 음식과 맛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서울에 살지 않는 이상 느낄 수 없는 게 많다고 생각했어요. 인적 네트워크 구축에도 좋다고 봤구요."

황교익과 만남이 인생의 전환점으로

Q. 맛칼럼니스트가 된 계기, 이유 등이 궁금합니다. 부산에서 꽤 오랫동안 음식 비평가, 파워블로거로 이름을 날린 것으로 아는데 처음부터 이쪽 분야를 생각한 건가요?

"30대 초에 부산에서 웹에이전시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와인에 입문하게 되었죠. 술을 워낙 좋아하기도 했지만 와인의 독특한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심지어 아내도 와인 동호회에서 만났구요. 감상평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블로그만 한 도구가 없더군요. 학창 시절 문예부 활동으로 단련된 글쓰기 능력 덕분에 순식간에 팬이 늘어났습니다. 네이버가 파워블로그 정책을 시행하던 첫해부터 5년 연속 파워블로그로 선정되기도 했죠. 그런데 40대에 접어들면서 사업이 점점 힘들어지더니 결국 쫄딱 망했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막막한 겁니다. 바로 그때 두 사람의 은인이 나타났습니다. 한 사람은 음식인문학 서적 전문 출판사로 자리 잡은 '따비출판사'의 박성경 대표였고, 또 한 사람은 우리나라 맛칼럼니스트 1호인 황교익 선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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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부산푸드필름페스타(BFFF)'에서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오른쪽)과 함께. 마산 출신의 황교익은 박상현 씨에게 스승이자 선배이며 때로는 동료다. / 박상현 씨 제공

Q. 아, 그 유명한 황교익. 이 분도 마산 출신이죠.

"그렇죠. 당시 블로그를 통해 제 글을 자주 접했던 박성경 대표는 부산까지 와 저에게 출판 계약을 제안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쉽게 결정하기 어렵더군요. 그래서 당시 제가 멘토로 삼고 있던 황교익 선생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당신과 같은 맛칼럼니스트가 되고 싶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좀 알려주라'고. 그런데 뜻밖에도 황 선생이 '너라면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흔쾌히 허락하시는 겁니다. 그때 결심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던 아내에게 부탁했죠. '3년만 백수로 살 테니 좀 도와달라'고. 아내는 어차피 별다른 대안이 없으니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오로지 읽고 쓰는 일에만 집중했습니다. 처지가 절박하니 글이 몰라보게 달라지더군요. 제 글을 대중들로부터 평가받고 싶었습니다. 언론사에 다니는 선배들에게 사정사정해서 겨우 지면을 얻어 칼럼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맛칼럼니스트'라는 바이라인을 그때 처음 사용했습니다. 이후 부산일보, 국제신문, 경남도민일보, 김해뉴스 등에 칼럼을 연재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약속한 3년을 채우던 때에 저의 첫 번째 책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의 초고를 완성하게 된 것입니다. 그 책이 나왔을 때 황교익 선생이 '맛칼럼니스트의 탄생'이라는 표현으로 저를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때 비로소 진짜 맛칼럼니스트가 된 거죠."

Q. 나름 파란만장하군요. 맛칼럼니스트로서 최근 주로 하는 활동은 무엇입니까.

"취재, 집필, 강연이 주요 골격입니다. 취재는 책을 쓰기 위함입니다. 앞으로 쓸 책 주제를 몇 가지 정했고 그 주제에 맞는 현장을 다닙니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다니는데 요즘은 주로 해외 취재가 많습니다. 한 해 20회 이상 혹은 최소 2개월 이상은 외국에서 지내는 것 같습니다. <광주일보> 등 지면 연재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주요 생계 수단은 강의입니다. 다행히 음식인문학 관련 강사로서 인지도가 꽤 높고 인기도 많은 편입니다. 방송 출연은 나름 확고한 원칙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촬영 하는 다큐멘터리를 지향하고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토크쇼 형식은 지양한다는 주의입니다. 지금까지 EBS, KBS, KNN 등과 다섯 편의 다큐멘터리를 촬영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첫 번째로 기획한 부산음식영화제(BFFF)가 4일 동안 5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동원하면서 기대 이상 성공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Q. 어떤 책을 준비 중인지 궁금하네요.

"'부산 음식'과 '통계로 보는 한국 음식 이야기', '햇반의 사회학' 등입니다. '부산 음식'은 일종의 의무 방어전이죠. 어쩌다 일본 음식 책이 먼저 나왔는데, 부산 음식을 통해 우리 근대음식을 들여다보자는 취지죠. '통계'는 왜 어떤 음식은 귀한 음식이 됐고 대중적 음식이 됐는지 수치를 통해 알아보려는 것입니다. '햇반의 사회학'은 제 전문 분야이기도 한 '쌀'을 소비자 관점에서, 품질과 가격 측면에서 분석·정리하고자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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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어시장에서. '모든 음식은 식재료로부터 출발한다'고 믿는 그는 식재료 생산과 유통 현장 취재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마산 최고 음식은 생선국

부산 등 다른 지역 생선국도 마산에서 배운 것

Q. 맛칼럼니스트로서 기본 철학, 원칙, 소신 같은 게 있는지.

"음식은 결국 삶의 흔적입니다. 그래서 음식은 매우 인문적입니다. 일상을 거세하고 오로지 관능에만 의지해서는 음식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어요. 음식 그 자체에 천착하기보다는 세상과 삶의 이해 도구로서 음식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음식을 대하는 인간의 행위를 악식의 시대, 폭식의 시대, 미식의 시대로 나눕니다. 지금은 폭식의 시대입니다. 절대빈곤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악식의 시대를 지나 폭식의 시대로 접어든 거죠. 무엇을 먹느냐가 곧 계급이고 성공의 척도가 됩니다. 우리는 지금 음식이 아니라 음식 유행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이 과도기를 하루빨리 벗어나기 위해 저 같은 사람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Q. 좀 모호한데 구체적으로 어떤 관점과 어떤 역할이 필요한 건가요.

"어디 TV에서 맛집이 나왔다고 찾아가고, 어떤 유명한 사람이 그 음식을 먹어서 따라가고, 이런 문화가 아닌 다수가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자기선택권을 갖고 음식에서 만족을 얻도록 하자는 거죠. 영화로 비유하면 1000만 명이 보는 영화 나왔다고 우르르 따라가는 게 아니라 100명이 100편의 영화를 볼 수 있게, 보다 다양한 식당, 다양한 음식, 다양한 취향이 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봅니다. 무엇을 먹더라도 그 음식의 의미를 이해하고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Q. 마산·창원 등 경남 음식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합니다.

"전 마산의 가장 훌륭한 음식이 생선국 또는 탕 아닌가 싶어요. 맑게 끓여내는 복국, 탱수탕 같은 거요. 부산 등 다른 지역 생선국도 마산에서 거의 배워왔다고 알고 있어요. 같은 맥락에서 곰탕, 돼지국밥도 좋습니다. 마산은 확실히 국물 요리에 강합니다."

Q. 앞으로 삶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가능한 그 순간까지 매년 다큐멘터리 한 편, 책 한 권을 내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이 끝났을 때 마지막 목표는 한국 음식 비평론, 즉 비평 개론을 정리하는 겁니다. 우리나라에 음식 비평은 많지만 죄다 음식을 소재로 한 에세이이고, 비평론은 없거든요. 프랑스 미식가인 브리야 사바랭이 쓴 <미식 예찬> 같은 책을 떠올리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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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현 씨가 펴낸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책 표지. / 박상현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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