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군 영산면 성내리에 있는 영산읍성지 입니다.

읍성은 도시 전체를 성벽으로 둘러 쌓아 관청과 민가를 보호하는 군사적·행정적 기능을 수행하는 성을 말하는데, 영산읍성도 이런 필요에 의해서 축조된 것이랍니다.

영산면은 고려 말부터 낙동강을 타고 거슬러 온 왜구의 침략이 많았던 곳이었습니다.

이에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당시 흙으로 읍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고려에 이어 조선시대까지 왜구의 침입이 빈번해지자 전국의 읍성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게 됩니다.

영산읍성도 이 시기에 맞춰 대대적인 정비에 들어가게 되는데, 1477년 성종 8년 무렵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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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녕군 영산면 성내리에 있는 영산읍성지. / 김구연 기자

조선시대 영산에는 영산현의 치소, 즉 관찰사가 집무하는 관청인 감영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국가 기관인 관청을 보호하고 왜구의 약탈로부터 백성을 보호하기 용이하도록 성을 재축성하게 됩니다.

영축산 서남쪽 구릉 끝에서 평지인 현재 시가지 있는 곳까지 오각형 배 모양 형태로 축성했는데, 이때 흙으로 되어 있던 성벽도 돌로 쌓아 새롭게 축성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영산읍성은 현재 260m 정도만 남아 있는데, <영산읍지>에 따르면 축성 당시 둘레는 1465m, 높이는 4m 정도의 규모였다고 합니다.

영산읍성은 현재 역사적인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어 경상남도 기념물 제59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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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읍성은 고려시대에 흙으로 쌓은 읍성에다 조선시대 들어 돌로 새롭게 축성한 것으로 보인다. / 김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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