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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굉무의 음악이야기]인고의 세월을 초월한 최고의 명곡

이영훈의 ‘슬픈 사랑의 노래’

고굉무 음악카페 해거름 대표 goingmu@dreamwiz.com 입력 : 2018-04-05 13:55:38 목     노출 : 2018-04-05 14:17:00 목

10여 년 동안 수많은 노래신청을 받는 가운데, 어떤 노래를 가장 많이 틀어주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여태까지 모아둔 리퀘스트 용지 보관함을 열어보니 일 년 단위로 고무줄에 잘 묶어져 있었다. 한 장 한 장 뒤적이며 가만히 살펴보니 다양한 장르의 곡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초창기 진땀을 빼가며 어렵사리 틀어줬던 노래들, 음반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던 모습들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객들이 남겨놓은 기록은 저편에 두었던 기억을 되살려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게 한다.

리퀘스트 용지의 곡명을 훑어보면 신청자의 연령대와 좋아하는 취향의 장르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신청자의 나이와 관계없이 한 가수의 곡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8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인기를 누리며, 한국 대중 가요사에 한 획을 그은 가수 이문세의 노래가 적힌 용지가 한 곳에 수북하게 쌓이고 있다.

그러고 보면 굳이 적지 않고 바로 신청한 노래 중에서도 많았던 것 같다. 근래 젊은 층의 신청곡에서 심심찮게 이문세의 오래된 노래를 볼 수 있다. 이문세 노래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다. 한 번씩 곡을 주문하는 객들에게 "이문세 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없냐"고 질문을 던져보면 십중팔구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노래 부른 가수는 쉽게 기억되지만 정작 곡을 만든 작곡가나 작사가는 알기가 쉽지 않다. 구태여 알아야 할 필요성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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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훈과 이문세.

하지만 가수 이문세의 경우는 예외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바로 이영훈 작곡가가 있어 지금의 이문세가 존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작곡가 이영훈과 가수 이문세, 그들의 운명적인 만남이 대중가요의 경이로운 이정표를 세울 것이라 짐작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1960년 3월 6일 서울에서 태어난 이영훈은 정규음악 수업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구축한 독특한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프로필에는 학력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자신을 음악가로 만들어 준 사람은 어머니라고 했다. 유난히 신앙심이 깊었던 어머니는 막내아들의 앞날을 위해 늘 골방기도를 했고, 가족 모두 반대했던 음악가의 길로 들어섰을 때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음악을 하겠다는 아들의 뜻을 결사반대했던 아버지와 다른 가족들과 달리 남몰래 늘 격려했다. "영훈아, 나는 네가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네가 선택한 만큼 네가 책임져야 한다. 그래도 엄마는 네가 착해서 참 이쁘다"라며, 어머니는 독학으로 음악공부를 하는 아들의 부탁으로 70여만 원 되는 월급에서 서슴없이 58만 원 하는 피아노를 사 주었다. 그는 그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고 했다. 무엇이든지, 어떤 음악이든지 그 피아노만 있으면 가능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래서 믿어준 어머니에게 자신의 성공을 보여 드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유방암으로 꼬박 3년을 투병하였다. 그가 처음 발표한 '난 아직 모르잖아요'가 10주 동안 각종 가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을 때 어머니는 혼수상태로 중환자실에 있었다. 그는 잠깐 의식이 돌아온 어머니를 붙잡고 성공 소식을 알려드렸더니, "이젠 피아노 사준 돈 다 갚아"라며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결국 어머니는 2주 후에 운명하였다. 그는 어머니가 사주신 그 피아노로 곡을 만들었고, 골든디스크상을 세 번이나 받을 수 있었다. (이영훈, 김은옥, <Art Book 광화문 연가, 이영훈의 삶과 음악>, 민음사(2009년), 78~79쪽)

이영훈은 원래 연극, 방송, 무용음악 등을 만드는 비교적 순수예술의 영역에서 활동하던 작곡가였다. 그러던 중 1984년 김의석 감독의 데뷔작인 '창수의 취업 시대' 단편 영화음악을 맡으며 대중음악 작곡가로서의 서막을 올린다.

한편 대학가요제 출신으로 1977년 가수 겸 MC로 데뷔한 이문세는 1집과 2집에서 '나는 행복한 사람'과 '파랑새'를 발표하지만, 가수보다는 오히려 라디오 DJ로서 명성을 더 얻고 있었다. 1985년 어느 날, 이문세는 신촌블루스의 엄인호를 만난 자리에서 새 앨범 작업을 위한 작곡가를 부탁하였다. 이때 엄인호는 마침 그의 연습실에서 작업하고 있던 신인 작곡가를 소개하게 된다. 연습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 이문세가 작곡가 이영훈을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 "굉장히 수줍어하는 그에게 곡을 좀 들려 달라고 했다. 그가 마지못해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첫 멜로디가 내 심장을 쳤다. 지금의 '소녀'였다. 나한테 곡을 줄 수 있느냐고 묻자, 자기는 아마추어여서 히트도 안 될 거라며 겸연쩍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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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세 12집 <휴(休)>.

이렇게 만난 두 사람은 곧 의기투합해 서울 수유리 자취방에서 밤을 새우며 작업했다. 6개월에 걸쳐 8곡을 완성한 이영훈은 "쉬운 노래를 하나 만들어 보겠다"고 하더니 30분 만에 한 곡을 만들었다. 그 곡이 바로 '난 아직도 모르잖아요'였다. 이문세의 3집 대표곡이 된 이 노래는 KBS의 '가요 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였으며, 동시에 라디오 인기가요 차트에서 10주 연속 1위를 거머쥐는 대 히트곡이었다.

이영훈이 대중가요 작곡가로 출발한 시점을 보통 이문세 3집으로 본다. 그런데 1985년 9월 이문세에게 7곡, 무명이었던 가수 태희에게 2곡을 주면서 비슷한 시기에 녹음을 마쳤다. 이문세 3집 앨범은 그해 12월, 태희 1집은 1986년 1월에 발매되어 거의 같은 시기에 두 가수에게 곡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영훈이 가수 태희의 앨범 작업에 참여한 이유는 아마도 그녀의 음반을 신촌블루스의 리더 엄인호가 프로듀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녀의 앨범에 실린 노래는 '문밖에서', '그대는 비가 좋아서'라는 두 곡인데, 이문세 3집의 인기로 부각 되지 못했다. 이영훈은 3집의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필두로 '휘파람', '소녀'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팝 발라드'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선구자의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1987년에 발표한 '사랑이 지나가면', '이별 이야기', '그녀의 웃음소리뿐' 등이 수록된 이문세 4집은 그야말로 '발표는 곧 히트'라는 등식을 성립시키며, 그해 골든디스크 대상과 작곡가상을 휩쓸며 최고의 작곡가로 등극한다. 150만 장이 팔린 3집 앨범은 한국 최초의 밀리언셀러 시대를 열었고, 무려 285만 장이나 팔린 4집은 그때까지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사상 최다 음반판매기록을 세우는 경이적인 사건이었다.

1988년 그의 모든 역량이 녹아든 명반인 이문세 5집은 선주문만 수십만 장에 달했다. 5집에 실린 '가로수 그늘 아래서면', '광화문 연가', '붉은 노을' 등은 10~20대의 입에서 저절로 흥얼거리게 만들며, 전파를 탄 이문세의 노래는 온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이 음반으로 이문세는 골든디스크상 3연패를 이룩하게 되었고, 이영훈이 추구했던 고품격의 팝 발라드는 대중가요에 대한 이전 인식을 바꾸게 하였다.

이에 그동안 라디오 음악의 전성기를 누렸던 팝송프로그램들이 서서히 사라지며, 가요프로그램들이 대거 편성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팝 발라드의 태동은 대중가요 변화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현대 한국 발라드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이영훈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유재하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클래식을 가미한 독특한 작곡법, 작사가로서의 뛰어난 재능은 두 사람이 여러 가지로 비교될 수도 있지만, 직접적인 비교 대상으로 거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단지 음악성향으로 보아 둘의 차이점을 찾을 수 있는데, 유재하는 다루는 악기도 많고 참신하고 창의적인 작법, 편곡까지 도맡아 하는 전형적인 천재형 음악가였다. 이에 반해 이영훈의 작업방식은 강박에 가까웠다. 피아노 앞에 앉아 커피 40잔을 마시고 담배를 4갑씩 피우며 밤을 새웠고, 가사 하나를 쓰는데 한 달 이상 매달릴 정도로 완벽을 추구했다.

그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고궁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평소 일상에서 느끼는 깊은 성찰과 명상, 인고의 노력은 고스란히 그의 작품에 묻어나 있다. 이영훈이 가장 아끼며 스스로 최고의 곡이라 말하는 '슬픈 사랑의 노래'도 이런 맥락에서 탄생했다.

1999년에 발표된 '슬픈 사랑의 노래'는 이문세 12집 앨범 <休(휴)>에 수록된 곡으로 이문세와 이소라가 듀엣으로 불렀다. 남녀의 대화형식으로 작곡되어 이문세의 저음과 이소라의 흐느끼는 듯한 창법이 어우러져 가슴에 와닿는 느낌을 준다. 나중에 이 노래는 2006년 9월에 발매된 이영훈의 작품집 <옛사랑1>에서 김연우와 이소은이 듀엣으로 리메이크하여 부른다. 이때 이문세와 이소라 버전과 달리 이소은이 먼저 부르고 김연우가 뒤를 이어 노래한다. <옛사랑1>이 발매되었던 2006년에는 그의 병이 깊어지던 때인데 한 언론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김연우와 이소은이 함께 부른 '슬픈 사랑의 노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곡이며, 내 생에 다시 작곡하기 힘든 곡이다"라고 하였다. 이어 "1986년에 시작해 6년 만에 멜로디를 완성했고, 96년에야 가사를 붙였다. 곡의 모티브가 아름다운 반면 그 성격이 단순하고 강해 후렴부를 만들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 노래가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서 그의 소품집 <사랑이 지나가면>에서는 "이 곡은 1987년에 주제 멜로디를 얻었으나 앞부분인 16마디를 작곡하였을 뿐, 멜로디가 주는 영감이 강하여 후렴 부분을 작곡하지 못한 채 미완성으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5년 후인 1991년 겨울에 후렴 부분을 작곡하여 1992년에 지금의 연주곡으로 녹음하여 완성하였고, 노래로서 가사 또한 멜로디가 강하여 쓰지 못하다가 1997년에야 글을 쓰고 노래로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쓴 곡 중에 완성하기까지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곡이었고, 또한 제가 가장 사랑하는 곡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그런 연주곡입니다"라 밝히며 인터뷰 내용과 다소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 곡은 1993년 발매된 이영훈의 첫 번째 소품집 <A Short Piece>에 연주곡으로 선보였다. 당시에는 노랫말 없이 관현악으로 편곡되었고 러시아 볼쇼이 오케스트라가 연주하였다. 그 후 97년에 이르러 가사를 붙였고 다시 2년이 지난 1999년에 비로소 이문세의 노래로 발표되었으니, 12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명곡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이영훈은 작곡 노트에서 '슬픈 사랑의 노래'를 두고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사랑의 감미로움과 그 아름다운 슬픔에 대해 독백하듯 표현했으나, 후렴부에는 숭고한 사랑의 아픔과 영원할 수 없는 인간들의 만남을 종교적으로 승화시켜, 절망하지만 운명에 순응하는 연인이 사랑의 대화를 묻고 답하듯이 표현했다. 가냘픈 여인의 독백 같은 바이올린 솔로에 이어, 곡의 중반부에 나오는 첼로의 음률로 남자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 멜로디에 겹쳐나오는 듀엣 느낌의 바이올린은 슬픈 운명을 부인하고 싶은 여인의 질문들이다. 영원할 듯 이어지는 여인의 슬픈 사랑에 대한 질문에 묵묵히 답해줄 수 없는 남자의 마음, 스스로 위로할 수 없는 질문과 대답에 서로 슬픔이 격해지며 곡이 끝난다. 사랑의 노래가 아닌 슬픈 사랑의 노래로 말이다."

- 광화문 연가, 민음사

이후 이문세와의 작업 외에도 드라마, 영화음악을 만들며, 히트한 자신의 곡을 편곡하여 관현악으로 구성된 소품집들을 발표한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아바의 히트곡들로 만들어진 뮤지컬 '맘마미아'처럼 자신의 인기곡들로 구성한 뮤지컬 '광화문 연가'를 기획하였지만, 대장암 판정을 받은 후 투병하다가 2008년 2월 14일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고작이 된 뮤지컬 '광화문 연가'는 뜻을 이어받은 제작진들에 의해 2011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초연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성황리에 공연되고 있다.

이영훈, 그를 말할 때 이문세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와 이문세의 관계를 떠나서, 두 사람은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대중 가요사에 기념비적인 업적을 이룩할 수 있었다. 분명한 사실은 이문세가 뛰어난 재능을 지닌 가수이지만, 그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은 아마도 좋은 작곡가를 선택했던 안목이었을 것이다.

너를 스쳐 갈 수 있었다면 지금 더 행복할 수 있을까

너를 모르고 살던 세상이 마음은 더 편했을 텐데

인연이 아닌 사람이었어. 사랑할 수 없다 생각했지

우린 둘이 같이 서 있어도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걸

새하얀 저 거리에서 쌓이던 첫눈 같은 사랑

너를 안고 숨을 쉬면 세상엔 너밖에 없는데

너는 내 곁에 있어야만 해 세상이 조금 더 아플지라도

너를 볼 수 있는 밤이 오면 슬픔은 다시 없을 거야

 

인연이 아닌 사람이었어. 사랑할 수 없다 생각했지

우린 둘이 같이 서 있어도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걸

새하얀 저 거리에서 쌓이던 첫눈 같은 사랑

너를 안고 숨을 쉬면 세상에 너밖에 없는데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어 세상이 더 아플지라도

너를 볼 수 있는 밤이 오면 슬픔은 다신 없을 거야

슬픔은 다신

- '슬픈 사랑의 노래' 작곡·작사 이영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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