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전후 민간인피학살 창원유족회 <해원> 공동체 상영
구자환 감독, 학살 증거 기록…트라우마 현재 진행형

'이런 영화를 만들면서 정신이 온전할 수 있을까?'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해원>(감독 구자환)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지난달 31일 오전 10시 (사)한국전쟁전후 민간인피학살 창원유족회 2018년 정기총회가 열리기 전 진행된 공동체 상영 자리에서다.

영화 구성은 간단하다. 한국전쟁 직전부터 전쟁 기간까지 시기별로 역사 배경을 설명하고 전국에 있는 민간인 학살 현장을 찾아 생존자와 목격자들의 증언을 듣는 방식이다.

증언을 가만히 듣다 보면 너무나 끔찍한 일이 많다. 그야말로 생지옥이 따로 없다. 그래서 그럴까 <레드툼>에서 <해원>까지 구자환 감독은 늘 우울을 달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광기의 시대였을 것이다. 무지와 야만의 시대였을 것이다. 당시 민간인 학살은 좌익과 우익이 따로 없었다. 경찰, 군인, 미군, 우익, 좌익, 인민군은 노인,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지 않고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 영화에서도 이 부분은 분명히 밝혔다.

민간인 학살 발굴 현장에서 나온 사람 뼈. /영화 <해원> 예고편 캡처

이런 일들이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마치 없었던 일처럼 취급됐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민간인 학살 유족회가 구성돼 있다. 하지만, 이전까지 유족과 생존자들은 끔찍하게 학살당한 사람들의 가족이라는 사실 자체가 콤플렉스였다. 그들이 한국전쟁 때 해병대에 지원해 전공을 세우거나 경찰에 지원하는 것은 자신들이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발버둥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유족들은 자식들에게까지 끔찍한 기억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주눅이 든 사람들 위로 독재와 권위주의가 손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사람 목숨이 마치 장난감처럼 다뤄진 이 끔찍한 일들을 누군가는 꾸준히 기록하고 알려왔다.

구 감독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스스로 홍보물 수준의 영화라고 겸손해하지만 그의 관점은 명확하다.

"연구자는 학술적인 방법으로, 저는 영화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본다. 연구자들 하는 걸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게 가장 어렵다."

당시를 증언하는 유족과 생존자들. /영화 <해원> 예고편 캡처

어찌 보면 <해원>을 역사 다큐멘터리라고 볼 수는 없다. 나이가 많긴 해도 영화 속 증언자들은 이 시대 우리 사회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하여 영화 속 사실과 그로 말미암은 트라우마는 지난 일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올해 70주년을 맞았지만, 제주 4·3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 이야기가 지금 활발하게 진행되는 사실 자체가 이를 역설한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일은 돈이 되기는커녕 돈이 나가기만 하는 일이다. 다음은 구 감독이 SNS를 통해 고백한 내용이다.

"다큐멘터리는 제작비용이 부족해도 그런대로 만들 수 있다. 그 순간만큼은 사건을 파헤치고 촬영에 몰두하고 구성하면서 다른 일을 잊을 수 있다. 정작 힘겨운 순간은 영화를 알리고 개봉해야 하는 때이다. 나는 영화개봉이 제작의 마지막 단계라고 본다. 개봉하지 않을 영화는 만들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가 되면 어김없이 정서적 불안감과 재정적 어려움이 함께 찾아온다. 상업영화는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개봉까지 짜인 상태에서 제작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독립영화는 대부분 제작 이후가 거의 불투명하다. 이런 걸 알면서 또 반복한다. 순간순간 후회하면서도 이러는 이유를 나도 잘 모른다."

학살터에서 나온 유품. /영화 <해원> 예고편 캡처

그럼에도, 그는 "돌아보니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은 힘겹지만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한다.

5월 10일 정식 개봉하는 <해원>은 현재까지 전국 9개 관에서 개봉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서울 CGV 아트하우스 2곳(예정), 경북 안동 안동중앙시네마, 부산 영화의 전당과 CGV 아트하우스(예정), 인천 추억극장 미림, 창원 시네아트 리좀, 대구 오오극장, 전북 전주 조이앤시네마 전주다. 앞으로 개봉관은 더 늘어날 예정이다.

구 감독은 해원 개봉 준비와 함께 세 번째 영화를 구상 중이다. <레드툼>, <해원>에 이은 민간인학살 다큐멘터리 세 번째 영화로 가칭 <악인열전>이다. 이는 역사에 묻힌 학살자를 다시 세상 밖으로 불러내는 작업이다. 이들이 잔인한 방법으로 죄의식 없이 민간인을 학살할 수 있었던 배경, 그들에게서 학살된 이들의 이야기를 다룰 계획이다.

지난달 31일 (사)창원유족회 정기총회에서 공동체 상영을 준비하는 구자환 감독. /이서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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