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향소 파괴한 40대 검거…문 대통령 비난도
시민들 "경악"

제주 4·3 희생자의 피맺힌 한을 추모하고자 시민단체가 창원에 설치한 분향소가 훼손됐다. 제주 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 기념사업위원회는 전국 19곳에 추모 분향소를 설치했는데, 이 중 유일하게 경남지역 분향소가 부서졌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1948년 4·3사건을 '좌익 폭동에 양민이 희생됐다'고 한 발언과 맞물려, 분향소 훼손은 여전히 부족한 역사 인식을 적나라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새벽에 벌어진 '계획범죄'? = 범국민위원회 소속 경남위원회는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사흘간 창원 정우상가 앞에서 분향소를 운영하며, 사진 전시와 문화제 등을 준비했다.

경남위원회에는 경남민예총, 경남진보연합, 민주노총 경남본부 등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 3일 경남위원회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문화 공연 등 행사를 마쳤다. 그런데 4일 오전 8시 40분 이곳을 지나던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경남도의원 예비후보가 분향소 파손 현장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분향소에 있던 국화꽃, 홍보물 등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천막·현수막 등이 칼로 찢겨 있었다. 천막에는 분향소를 훼손한 이가 적은 낙서도 있었다. '김정은 하수인 청와대', '문죄인 ××× ×하고 붙어먹었으니 취임 초 인사갔지', '김정은의 지시를 받은 경남경찰청장'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지문 등을 감식하고, 주변 CCTV를 확보해 이날 오후 2시 46분께 분향소 인근에서 용의자 조모(49) 씨를 붙잡았다. CCTV에는 조 씨가 등산 모자를 쓰고 반소매 티셔츠, 긴 바지 차림으로 4일 오전 4시 4분께 펜으로 글을 쓰는 장면 등이 찍혔다. 경찰은 특수재물손괴 혐의로 조 씨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조 씨가 혼자 분향소에 가서 낙서를 하고, 집기 등을 부순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범행 동기 등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조 씨가 조사를 받으면서 피곤해하고, 횡설수설하고 있다. 내일까지 범행 동기 등을 조사한 후 신병처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추모 행사는 계속된다" = 경남위원회는 기존 분향소 맞은편에 임시분향소를 설치해 5일까지 행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박종철 경남진보연합 집행위원장은 "4·3 추모 행사장을 누군가 부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여전히 아픔이 있는 현장을 보여주고자 훼손된 현장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고 밝혔다. 성춘석 경남민예총 4·3위원도 "분향소를 의도적으로 다 부순 것 같다.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행사였는데, 오히려 아픔을 더하게 해서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현장은 찾은 한은정 창원시의원은 "4·3 항쟁의 아픔이 다 치유되지 않은 시점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4·3 폭동 발언이 시민을 자극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제주 4·3 유족에게 경남의 시민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시민과 전문가들도 이번 사건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분향소를 지나던 이원제(33) 씨는 "어떻게 추모하기 위해 만든 공간을 이런 식으로 훼손할 수 있는지 안타깝다. 지나가던 길에 너무 놀라서 현장을 자세히 보게 됐다"고 말했다.

윤상현 경남대 역사학과 교수는 "굉장히 안타깝다. 4·3을 역사적으로 치유하는 행사를 훼손하는 것은 시민의식이 성숙하지 않은 것이다. 시민의식이 더 성숙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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