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양의 꿈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1975년, 들리는 거라곤 총소리뿐이었던 어느 허름한 차고에 전과 5범 소년을 포함한 11명의 아이가 모였다. 이들은 총 대신 악기를 손에 들고, 난생처음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5년 뒤, 차고에서 열렸던 음악 교실은 베네수엘라 전역의 센터로 퍼져 나갔고 11명이었던 단원 수는 30만 명에 이르렀다. 거리의 아이들에게 새로운 오늘을 선물한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엘 시스테마' 그 기적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2008년에 제작한 영화 <기적의 오케스트라 - 엘 시스테마> 소개 글이다. 베네수엘라 국가 지원을 받는 음악 교육 재단인 엘 시스테마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경남에도 엘 시스테마가 있다. 문화예술활동 경험이 취약한 소외계층 아동을 대상으로 한 음악 교실인 '꿈의 오케스트라'다. 그중 경남 1호인 꿈의 오케스트라 창원(3기·2013년)은 소외계층 문화예술 교육사업 선도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꿈의 오케스트라는 누군가에게는 재능 발견의 장이 되고, 누군가에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올바른 가치관이 성장하는 곳이 되고 있다. 그 기적 같은 이야기기가 펼쳐진다.

흥미·긍정·화합 강조하는 음악 놀이터

한국형 엘 시스테마 예술교육사업인 '꿈의 오케스트라'는 청소년 오케스트라 교육사업이다. 지난 2011년 시작해 현재 전국 42개 지역 거점기관이 운영하고 있다. 경남에는 창원(창원문화재단)·통영(통영국제음악단)·창녕(창녕군청소년수련관) 3개 거점기관이 있다. 도내에서 처음 자리 잡은 꿈의 오케스트라 창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창원문화재단이 주관하고 있다. 3·15 아트센터에 합주용 공간, 파트연습용 공간, 악기 보관 장소가 있다.

창원지역 초등학교 3~6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매년 신입 단원을 모집한다. 한국형 엘 시스테마라는 교육 방침에서 알 수 있듯이 취약계층 아동이 단원의 70%를 차지한다. 이동이 잦은 도시 특성상 연 20명 정도는 이사 등 개인 사정으로 탈퇴한다. 최고 70명 오케스트라 구성을 위해 매년 모자란 수만큼 학생을 모집한다. 이렇게 꿈의 오케스트라 창원을 거쳐 간 아이들은 6년간 200여 명에 이른다. 단원 중에는 4~5년 활동한 학생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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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오케스트라, 꿈의 오케스트라 창원(3기·2013년). / 박일호 기자

무학여중 김민지(1학년), 김예진(2학년), 최아름(2학년) 학생은 동네 친구·동생 사이다. 민지 양 권유로 예진 양이 가입했다. 민지 양은 엄마 권유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오케스트라 단원 생활을 한 5년 차다. 첼로에서 타악기로 파트를 바꾼 민지 양은 꿈의 오케스트라 창원을 찾는 발걸음이 즐겁다고 말했다. 오케스트라 수업 분위기와 5년간 누적된 실력으로 학교 음악 시간에서 자신감을 이유로 꼽았다.

많은 학생이 악기나 활동에 대한 관심 정도로 찾았다가 흥미를 느끼고 재능을 발견하기도 한다.

김정원 코디네이터는 "학부모나 학생들이 바로 결과물을 보고 싶어 해 악기부터 다루게 했더니 힘들어하며 흥미를 잃었다. 강사들이 모여 창원만의 융합형 기초케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음계 지도부터 감상 수업, 지휘법, 음악 전문용어를 3·4월 익히고 5월부터 악기 연습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6년 차 꿈의 오케스트라 창원은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하나둘 늘려가며 전국 거점기관 중 우수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즐기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 심화 수업

꿈의 오케스트라 창원은 작년부터 화·목요일 오후 5시~8시까지, 교육 시수 외 금요일 분반 심화 수업(17주)을 진행하고 있다. 악기 테크닉 등 소규모 수준별 맞춤 수업이다. 창원시향 단원이 교육 봉사를 하는 등 15명 강사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클라리넷, 플루트, 호른, 타악기 등을 지도한다.

아름 양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지만 5학년 때 꿈의 오케스트라 창원에 와서 실력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이후 대학 진학까지 음악 전공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4학년 때까지 문화센터에서 받은 바이올린 수업은 사람이 많기도 했고 실력이 제자리걸음이었어요. 이곳에서 자세 교정 지도를 받고 포지션을 꼼꼼하게 배워 단원생활 첫해인 5학년 때 급성장한 느낌을 스스로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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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 오케스트라 창원을 이끄는 차문호 음악감독. / 박일호 기자

예진 양은 무대 경험을 큰 자산으로 꼽았다. 꿈의 오케스트라 창원은 정기연주회, 교류연주회, 초청음악회 등 연 6~7회 특별 공연을 한다. 특히 1박 2일 교류 캠프는 다른 기관과 합동으로 오케스트라 공연을 펼치기 때문에 많은 연습량을 요구한다. 예진 양은 이 교류 캠프를 일 년 중 가장 기다리는 행사로 꼽았다.

"교류 캠프를 앞두고 연습량이 늘어나는 것은 힘들지만 큰 무대를 통해 성취감 등 특별한 경험을 합니다."

김 코디네이터는 "지난해까지 창원·청주·목포 거점기관과 '세모난 꿈'이라는 교류 캠프를 진행했다. 올해는 경상권 6개 오케스트라 230명이 모여 합동캠프를 할 계획이다. 이번 캠프에서 모든 학생들이 자신감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제2·3 오케스트라 창원 기대"

꿈의 오케스트라 창원을 제안하고 이끄는 차문호 음악감독은 6년째 운영하면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오케스트라 운영 안정과 성장은 틀을 잡았지만 4년 차, 5년 차 학생들이 늘면서 학년 차이와 실력 차이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에 왔다.

"내년이면 자립거점 기관으로 거듭나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어요. 창원만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고 교육과 예술을 어떻게 고도화시켜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차 감독은 장기적으로 110만 인구 규모 창원시에는 문화예술교육을 위해 적어도 60명 규모 2개 오케스트라는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생계로 바쁜 부모 밑에서 자라는 소외계층 학생들에게 음악을 통해 심리적, 정서적 지원을 하는 기관과 더 나아가 재능을 발견하고 진로로 연결해주는 제법 수준 있는 오케스트라 운영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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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 오케스트라 창원을 이끄는 차문호 음악감독. / 박일호 기자

마산회원구 3·15아트센터에 있는 교육 공간이 접근성이 떨어지는 점도 이유다. 진해구와 창원성산·의창구 각 하나씩 운영돼 음악교육에서 소외되는 학생이 없어야 하는 점이 강조된다.

꿈의 오케스트라는 국비와 지방비,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캠프 참여에서부터 악기까지 학생들이 부담하는 금액은 없다. 취약계층-일반계층이 함께 지내면서 보이지 않는 차등과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는 것 역시 교육 방침이다.

"꿈의 오케스트라는 단순한 음악 지도를 넘어 인성교육으로 문화예술교육을 지도하는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교육 기반이 됩니다. 더 많은 혜택을 주려면 주변 기업의 관심과 후원이 절실하기도 해요."

성장을 거듭하는 꿈의 오케스트라 자체가, 단원 한명 한명이 '드림스타'로 빛이 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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