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마라

것치 거믄들 속조차 거믈소야

아마도 것희고 속 검을슨 너뿐인가 하노라'

조선 태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직의 작품인데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는 과정에서 변신한 자신의 처세를 변호하는 내용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에 몸담은 사람들은 까마귀로도, 백로로도 변신을 잘하는 모양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까마귀는 사람들과 꽤나 친숙한(?) 새다. 도심에서도 연중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까마귀 종류는 큰부리까마귀다. 그냥 까마귀도 있고 큰까마귀, 떼까마귀, 갈까마귀, 검은바람까마귀, 바람까마귀, 잣까마귀 등이 있다. 전 세계에는 40종 정도가 살고 있다. 생각보다 까마귀 종류가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냥 까마귀는 겨울 철새로 우리나라를 찾아온다. 울산 태화강을 찾아오는 떼까마귀는 주로 농촌 지방에 겨울 철새로 찾아온다. 하늘이 까맣게 될 정도로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는 것이 특징이다. 갈까마귀는 주로 떼까마귀 무리에 작은 무리가 섞여 돌아다닌다. 그 외의 다른 까마귀 종류는 희귀한 편이다. 우리 주변에서 제법 흔하게 볼 수 있는 까마귀들은 큰부리까마귀, 까마귀, 떼까마귀, 갈까마귀 네 종이다.

큰부리까마귀는 한국과 일본에서 가장 흔한 까마귀다. 전체 길이는 50cm 정도인데 날개를 펼치면 1m나 되는 큰 새다. 큰부리까마귀는 부리가 두툼하고 아치형으로 둥글게 굽어 있다. 반면에 까마귀는 평균적으로 큰부리까마귀보다 한 체급 정도 작아 보인다. 부리는 큰부리까마귀와는 약간 다르게 굽어 있지 않고 곧게 뻗은 형태를 보인다.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큰부리까마귀와 그냥 까마귀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큰부리까마귀는 "까악, 까악"하고 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까마귀 울음소리다. 그냥 까마귀는 "가악, 가악"하고 약간 쉰 것 같은 목소리로 운다. 전깃줄에 앉아 우는 자세를 보면 확연히 구분된다. 큰부리까마귀는 머리를 앞으로 내밀고, 꼬리를 들썩이면서 약간 무섭게 우는 반면 그냥 까마귀는 가슴을 부풀려서 턱을 당기고, "가악~"하고 운다. 큰부리까마귀 우는 모습이 더 사납게 보인다.

큰부리까마귀는 농경지보다는 삼림 또는 도시에서 살아간다. 깊은 산속에도 있고 도시의 고층 빌딩에도 있다. 등산하다 만난 덩치 큰 검은 새가 바로 큰부리까마귀였던 것이다. 반대로 그냥 까마귀는 농경지나 강 주변에 많고 도시에는 그렇게 많지 않다. 세계적으로 보면 큰부리까마귀는 동아시아 지역의 새라고 할 수 있다. 원래는 깊은 숲속에 살던 새였는데 지금은 높은 빌딩을 숲속처럼 여겨서 그런지 도심에 적응해 살아가고 있다. 그냥 까마귀는 유라시아 전역에 널리 분포해 있고, 유럽에도 꽤 흔하게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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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수리(왼쪽)와 큰부리까마귀(오른쪽).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우리 주변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새 둥지 중 하나가 까치집이다. 그렇다면 까마귀는 어떤 곳에 둥지를 만들까? 대체로 높은 산 깊은 골 근처에 둥지를 만든다고 한다. 까치둥지는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반면 까마귀 둥지는 보기 어려웠던 이유다. 특히 큰부리까마귀는 둥지가 훤하게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는 모양이다. 주로 둥지가 잘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상록수에 둥지를 튼다고 한다. 처음 둥지를 만들 때는 대부분 1~2주일 정도 걸리는데 다시 지을 경우에는 단 며칠 만에 둥지를 만들기도 한다. 번식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알은 대체로 4개에서 5개 정도 낳는데 올리브 갈색 바탕에 어두운색 반점이 있다. 알은 거의 암컷이 품고 수컷은 먹이를 공급해 준다고 한다. 부화하는 데는 20일 정도 걸린다. 까마귀 수명은 대체로 야생에서는 약 20년, 사육하면 40년 정도다. 까마귀는 다른 새에 비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시기가 많이 느린 편이다.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고사성어는 덩치가 어른 만큼이나 커진 상황에서도 부모로부터 먹이를 받아먹는 까마귀의 생육 특징에서 나온 말로 짐작된다. 새끼 새는 털이 부풀어 올라있어 오히려 어미보다 더 커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망원경이 없이 관찰했던 옛날 사람들은 먹이 받아먹는 새끼 까마귀를 어미 새로 착각한 것이다.

고사성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신화에서도 까마귀는 지구 곳곳에서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고대 중국에는 '다리가 세 개인 까마귀는 태양의 흑점에 산다'라는 전설이 있었다. 한국과 일본에도 그대로 전해졌던 모양이다. 세 발 달린 까마귀. 삼족오의 유래다. 이집트에서도 까마귀는 태양의 새로 여겨졌다. 북미 원주민 신화에서는 조상의 영혼으로 등장한다. 최초의 세계는 거대한 조개 속에 갇혀서 암흑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어느 날 까마귀가 그 조개를 억지로 열고 세계의 여러 가지 것들을 꺼내 퍼뜨렸다는 전설도 있다. 북유럽 신화의 최고 신인 오딘의 양어깨에는 지혜와 기억이라는 두 마리 큰까마귀가 있다. 이 두 마리 큰까마귀는 새벽에 날아올라 세계를 돌아보고, 저녁이 되면 오딘의 어깨에 앉아 양쪽 귀에 그날 세상의 모습을 보고한다고 한다. 인도 남부 지방 전설에도 까마귀가 등장하는데 사람이 죽고 7일이 지나면 혼이 흑백 얼룩 까마귀가 되어 현세로 돌아오므로 먹이를 줘서 대접한다고 한다. 구약 성서에 등장하는 까마귀는 노아가 방주에서 비둘기보다 먼저 날려 보내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둘기는 돌아와서 기쁜 소식을 전해 준 반면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오작교 다리 공사에 동원되는 새도 까치와 까마귀다. 중세 유럽에서는 마녀의 부하로 간주하기도 했다. 사체를 좋아하는 습성 때문에 까마귀는 대체로 장례식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로드킬 당한 동물들을 치워주는 청소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사람들 입장에선 고마운 존재가 된다.

까마귀는 가장 영리한 새로 알려져 있다. 훈련받은 까마귀 지능은 6~7세 아이 정도까지 된다고 한다. 도구 제작 능력을 지닌 까마귀도 있을 정도다. 문제해결 능력도 탁월한 편에 속한다. 병 속에 든 물을 마시기 위해 돌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철사를 구부려 갈고리를 만들어 통 속에 들어있는 먹이를 꺼내먹어 사람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심지어 단단한 호두를 까먹기 위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횡단보도를 이용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신호등에 멈춰있는 자동차 바퀴 앞에 호두를 갖다 놓고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파란불이 들어오면 껍질이 부서진 호두 알맹이를 먹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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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 공원에서 먹이찾는 큰부리까마귀.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이솝 우화에도 머리 좋은 까마귀가 등장하는데 훈련을 시키면 앵무새처럼 사람 말을 따라 하기까지 하는 까마귀도 있다.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까마귀는 수만 개의 씨앗을 구별해내는 능력까지 있다고 한다. 먹이를 숨긴 장소뿐 아니라 숨긴 시간과 먹이 종류까지 기억한다고 한다. 까마귀는 식량을 저장하는 대표적인 조류다. 9000개에 달하는 도토리를 숨겨두고 겨울을 대비한다는 설도 있다. 비밀 창고는 낙엽 아래 또는 흙 속, 나무구멍, 바위틈 등이다. 까마귀들 행동을 가만히 관찰해 보면 꽤나 재밌다. 먹이를 물어와 땅에 놓은 다음 부리로 낙엽을 치운다. 구멍을 판 다음에는 먹이를 안에 넣고 커다란 나뭇잎이나 조각 같은 것으로 먹이 위를 덮는다. 그 위에 치워 두었던 낙엽을 덮어 원래처럼 만든다. 부리로 콕콕 찔러 누른 다음 땅 위를 고르게 해서 표시가 나지 않도록 한다. 숨기는 작업이 끝나면 몇 걸음 물러나 상태를 확인한다. 심지어 뽑았던 잡초를 원래 위치에 다시 심는 행동을 보인 까마귀도 있다고 한다.

까마귀는 새 중에서도 매우 특별할 정도로 잡식성이다. 까마귀는 뭐든지 먹는다. 각종 씨앗류, 열매류, 곤충, 생선, 뱀과 도마뱀, 개구리, 새, 지렁이, 사체까지. 찾을 수 있는 먹이는 뭐든 찾아 먹는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달달한 과일뿐만 아니라 벚꽃, 팽나무, 푸조나무 열매도 잘 먹는다. 과수원 주인 입장에선 아주 귀찮은 존재다. 머리도 영리해서 사람 눈을 피해 잘도 찾아 먹는다. 심지어 두꺼비를 뒤집어 등껍질에 있는 독샘 피부만 남기고 먹을 정도다. 입에 들어갈 만한 크기의 동물은 뭐든지 먹는다는 얘기다. 산란기에 들어간 다른 새들에게 까마귀는 공포의 대상이 된다. 알을 꺼내 먹기도 하고 어린 새를 잡아먹기도 하기 때문이다. '잔혹하고 비겁한 새'라는 딱지가 붙은 이유다. 그래도 까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먹이는 쓰레기 봉지 안에 들어있는 음식 찌꺼기다. 특히 일본 여행할 때 이런 장면을 아주 많이 목격하게 된다. 숲속에 살던 까마귀가 도시로 이주해와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긴 습성이다. 맛있는 먹이가 담긴 쓰레기 봉지가 어떤 가게에서 나오는지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까마귀는 호기심이 많은 새다. 쓰레기 봉지가 보이면 부리로 헤쳐 보기, 부리를 찔러서 벌리기, 덮은 물건 치우기, 뒤집기를 다 해본다. 돌도 뒤집어 본다. 이런 행동을 '슬쩍 떠보는 행동'이라고 한다. 먹이를 찾기 위한 기술의 일종으로 보인다. 반짝이는 물건을 물어가는 습성이 있어서 골프공이나 보석을 훔쳐갈 때도 있다고 한다.

매년 겨울이 되면 울산 태화강 근처 대나무 숲에는 수만 마리의 떼까마귀와 갈까마귀가 모여든다. 몽골과 시베리아 등지에서 찾아오는 겨울 철새다. 이렇게 많은 무리가 한곳에 모이는 이유는 적을 대비한 경계를 강화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먹이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는 설도 있다. 아침 일찍 먹이터로 향하는 무리를 따라가기만 하면 먹이를 얻어먹을 수 있다고 한다. 오합지졸이란 말은 까마귀들이 무리 지어 다니는 특성에서 유래된 말인데 리더가 없는 단순 집합체란 의미가 담겨있다.

까마귀에게도 천적이 있을까? 올빼미류가 천적이다. 수리부엉이, 참매도 까마귀를 잡아먹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낮에 맹금류를 발견하면 무리를 지어 맹렬하게 맹금류를 쫓아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덩치가 작은 황조롱이뿐만 아니라 맹금처럼 생긴 새는 전부 싫어해서 무리 지어 덤비기 때문에 반격하기가 쉽지 않아 도망가기에 바쁘다. 하늘의 제왕으로 불리는 독수리 등에 무임승차하는 까마귀, 맹금류인 흰꼬리수리를 공격하며 못살게 구는 까마귀도 있다. 하지만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사람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눈치를 보다 버려진 음식이 보이면 잽싸게 낚아채 먹는다. 등산객이 많은 봄철에 더 많은 까마귀를 볼 수 있다. 공원에 나타나는 까마귀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도 까마귀도 먹어야 사는 존재. 먹이 찾아 사람들 곁에 다가오는 까마귀들도 알고 보면 가여운 새들이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오랜 세월 동안 사람과 친숙하게 살아왔다는 사실도 새삼 알 수 있다. 얼마나 영리하게 행동하는지도 살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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