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명분 잃은 물 바다 닿아도 썩은물
순리대로 흐르는 물에서 덕목 배워야

봄빛 화사하게 내려앉은 개울에 물 구르는 소리가 납니다. 겨우내 멈추었던 물 위에서 놀던 아이들이 다시 몰려나왔습니다. 판자 조각에 굵은 철사를 댄 앉은뱅이 썰매를 타거나 팽이를 치던 얼음이 일렁거리고 봄 햇살이 다시 반짝입니다. 녹아가는 얼음에 빠져 젖은 옷을 말리며 감자나 고구마를 굽던 냇둑에도 연둣빛이 물듭니다. 아이들은 물수제비를 뜨고 삘기를 뽑아 먹고 계집아이들은 모래톱에다 집을 지어 소꿉놀이를 합니다. 성급한 사내 녀석들은 아직 시린 물에 들어가 다슬기를 줍고 비닐 덮은 사발에 구멍을 뚫고 된장을 넣어 피라미를 잡기도 하고요. 개울은 산에서 나와 골짝 골짝 동무를 만나 제법 큰물이 되어 흐르면서 굼턱을 만나면 소를 파기도 하고 작은 폭포를 만듭니다. 마을을 감돌아 나가는 빨래터에선 아낙네들 질펀한 육담도 들어주고 봇도랑으로 흘러들어 들을 적셔 주었지요.

굽이굽이 생긴 대로 따라 흐르다 보니 물은 맑고 냇둑 따라 펼쳐지는 경치가 정겹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직선 수로에 콘크리트 구조물이나 돌망태 사이로 탁하고 더러운 물이 흐릅니다. 물이 흐르며 절로 제 몸 씻을 것들을 억지로 없애버렸기 때문이지요. 세상천지를 돌고 돌면서 만물을 먹여 살리고 정화 시키는 물이 가진 덕목을 순리대로 흐르게 두지 않고 사람 욕심에 이용하려 물에 패악을 부렸으니 그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모든 것에 이로우면서 다투지 않고 모두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문다. 고로 도에 가깝다. 물처럼 머무를 때는 땅을 좋게 하고 마음을 쓸 때는 그윽하고 사람을 사귈 때는 어질게 하며 말할 때는 믿음 있게, 다스릴 때는 바르게, 일할 때는 능히 하고 움직임에는 때를 보라. 그저 오로지 다투지 않으니 허물이 없다.” 하여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또 사람이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데, 필요한 덕목을 물에서 찾아 일곱 가지를 들었는데요. 그 첫째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손의 덕을 꼽았습니다. 둘째는 막히면 돌아가는 지혜의 덕이요 셋째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포용, 넷째는 그 본질은 변함이 없으면서 어떤 모양의 그릇에도 담기는 융통이라 했습니다. 다섯째는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 끈기와 인내, 여섯째는 장쾌하게 내리꽂히는 용기, 마지막 일곱째는 큰 강을 이루어 도도하게 흘러 바다를 이루는 대의를 품은 덕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수양이 덜된 자들이 이 일곱 가지 덕을 거스르고 날뛰니 물이 썩고 세상이 혼탁합니다. 나랏일을 맡겼더니 지지를 호소하며 머리 조아리던 거짓 겸손조차 팽개치고 섬기지 않고 섬김을 받겠다고 오만하게 굽니다. 지혜를 모아 헤쳐나갈 길을 생각이 다르다 하여 오히려 길을 막고 몽니를 부리지요. 귀를 막고 눈을 막은 체 제 말만 들으라 하며 포용을 모르는 고집불통이 나라를 다스려 보겠다고 설쳐대기도 합니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간도 쓸개도 없이 얼굴을 바꾸고요. 변화가 올 때까지 더디고 힘들지만 오르지 한 길을 가는 이가 드뭅니다. 용기는 참된 가치를 위해 내는 것이거늘 가치 없는 일에 나서 만용을 부립니다. 대의명분을 잃은 강물은 바다에 이르렀다 해도 더러운 똥물일 뿐이지요. 요즘 거리에 나서면 건물마다 대형 걸개그림이 많이 보이는데 그 속에서 봄꽃처럼 화사하게 웃는 사람들이 길목마다 진을 치고 머리를 조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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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이웃 마을과 우리 마을 사이로 흐르던 맑은 개울에는 두 마을을 오가는 징검다리가 있었는데요. 홍수에 징검돌 떠내려갔거나 고임돌이 어그러져 흔들거리는 것이 많았습니다. 징검돌 사이사이가 벌어지고 흔들거리자 아이들은 아예 건널 엄두를 내지도 못하고 어른들조차도 건너지 않게 되었지요. 자연 두 마을은 사이가 멀어지고 서로 헐뜯고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한 사람이 어느 날부터 징검돌 사이사이 새 징검돌을 놓고 고임돌을 괴어 흔들리지 않게 고쳤습니다. 처음에는 이웃 동네 좋은 일 한다고 빈정대던 사람들이 묵묵히 일하는 그를 도와 징검다리를 제대로 고쳤습니다. 당연 두 마을은 예전처럼 사이좋게 지내게 되었죠. 맑은 개울물 닮은 그이를 만날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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