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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마음 담은 메모…힘든 여정에 '좋은 기억'

[아들과 함께 오토바이 타고 유라시아 횡단] (3) 벨로고르스크~치타~바이칼호수
치타 시내에서 만난 현지인 바이크클럽 아지트로 안내
전통 음식·숙소 무료 제공 여행길 안녕 빌어주는 글도
바다같이 펼쳐진 바이칼호 노을 보니 도움준 이 떠올라

시민기자 최정환 webmaster@idomin.com 2018년 04월 03일 화요일

러시아에서는 키릴문자를 사용한다. 한국 사람에겐 낯설고 생소하지만 조금만 익히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키릴문자는 러시아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동유럽 등 옛 소련지역에선 아직도 널리 쓰인다.

뜻은 잘 모르더라도 도로에 나타나는 지명 표지판은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좀 길다는 경부고속도로가 대략 416㎞이지만 이곳 러시아는 땅이 넓은 관계로 표지판도 아주 멀리 표시된다.

이번 목적지인 바이칼 호수로 가려면 치타라는 도시를 지나가야 하는데 치타까지 이르는 도로표지판이 2200㎞ 남았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다행히 도로상태가 좋아 하루에 600㎞를 꾸준히 달려 4일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바롭스크 지역을 지나 계속 조그마한 도시가 이어지다 처음 만난 제법 큰 도시가 치타였다. 치타 시내에 들어와 로터리 근처에 바이크를 주차하고 잠시 쉬고 있으니, 한 바이커가 지나가다가 우리를 보고 다가왔다. 이미 두세 차례 러시아 바이커와 교류했던 적이 있어 편하게 그를 대할 수 있었다.

치타바이크클럽 친구들. /최정환

아직 어두워지기 전인 오후 시간이었기에 아들과 나에게 잘 곳이 있는지 물어 왔다. 숙소를 정하지 않았다고 하니 자신의 이름이 자르갈이라고 소개하며 무작정 따라오라고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 허허벌판 한가운데 시골집 한 채가 나타났고 마당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곳엔 고장 난 오토바이 여러 대가 보였고 한쪽 옆에는 운행 가능한 오토바이도 보였다. 처음엔 오토바이 수리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곳은 '치타 바이크클럽'의 아지트였다.

시골집 안에는 침실과 거실 부엌이 나눠져 있는데 우리에게 침실을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 자르갈이 연락을 했는지 오토바이를 타고 한 명, 두 명이 이곳 바이크클럽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디마라는 젊은 친구가 장을 보러 가는 동안 자르갈은 아들 지훈이에게 뭔가 보여줄 게 있다고 자물쇠가 여러 개 채워진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지훈이도 나도 깜짝 놀랐다. 방안 선반 가득히 권총과 장총, 따발총 등 무기가 가득했다.

알고 보니 자르갈은 대학에서 군사학과 역사를 가르친다고 했다. 언젠가 이곳 치타에도 박물관이 생기면 기증할 물건들이라고 했다. 자르갈은 방안에 있는 금고를 열고 총알 두 발을 꺼냈다.

그리고 장총 한 자루를 들고 직접 아들에게 철모를 씌우고 군복을 입혀서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자르갈이 지훈이 옆에 꼭 붙어서서 총에다 총알 두 발을 장전하고 비스듬히 하늘을 향해 지훈이에게 방아쇠를 당기라고 했다.

'탕~' 처음 들어본 총소리에 놀랐나 보다.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에 아이가 폴짝폴짝 뛰었다.

그러는 동안 디마가 시장에서 장을 보고 돌아왔다. 커다란 화물차를 운전하는 알렉세이라는 친구가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마당 한쪽 옆에서 드럼통 속 장작나무에 불을 붙여 숯을 만들고 있었다.

러시아 음식 중 '샤슬릭'이라는 전통 음식을 만드는 중인데 이 음식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각종 육류를 양념하여 기다란 쇠꼬챙이에 끼워 숯불에 구워 먹는 음식이다. 고기가 큼직하고 불 맛이 난다.

아들 지훈과 러시아 전통 음식 '샤슬릭'을 만들어 준 알렉세이.

거실에서 아들 지훈이와 나 그리고 '치타 바이크클럽' 친구들 7명이 모여서 식사를 했다. 아들에겐 주스를 준비해 줬고 어른들은 보드카를 마셨다. 술이 한두 잔 오가고 우리가 한국에서 유럽까지 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디마가 어디서 편지 한 장을 가져오더니 뭔가를 쭉 써내려 갔다.

그런 후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쓴 편지를 전달했다. 편지 한 장 가득히 채워진 러시아글씨가 궁금해서 물어보니 혹시나 여행하는 중 러시아 경찰이나 공무원이 붙잡았을 때 보여주라고 했다.

내용을 물어보니 '이들은 한국에서 왔다. 혹시나 법규를 위반하더라도 러시아의 법규나 규칙을 잘 모르고 한 일이기에 넓은 아량으로 좋게 보내주면 러시아를 좋게 생각할 거다'라고 설명해줬다.

아들과 단둘이 여행하는 우리가 걱정되었던 디마가 준비한 깜짝 선물이었다. 나라는 비록 다르지만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이고 서로 걱정해주며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안녕을 빌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고마웠다.

밤늦게까지 이어진 우리 여행 이야기와 이곳 친구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나누다 어느새 여명이 밝아왔다. 이곳에서 계속 민폐를 끼칠 수는 없어서 잠깐 눈을 좀 붙이고 다시 짐을 챙겨 바이칼 호수를 향해 떠났다.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이 바이칼 호수로 향하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배웅을 했다. 그들은 길 가다 처음 만난 우리에게 잠자리를 내어주고 음식도 해다 줬다. 아주 친한 친구처럼 대해준 이들의 따뜻한 마음이 각박한 한국과 다른 것 같아, 부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바이칼 호수 둘레로 두 곳의 큰 도시가 있는데 바로 울란우데와 이르쿠츠크다. 바이칼 호수를 가기 전 먼저 울란우데에 들렀다. 시청 앞에는 '레닌'의 두상이 있는데 거대한 크기로, 기네스북에도 등재가 되어 이 도시의 상징이 되었다.

울란우데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시 출발한 지 몇 시간 후 드디어 바이칼 호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바이칼 호수는 전 세계 민물의 5분의 1을 담은 세계 최대 담수호이다. 끝없이 펼쳐진 호수가 마치 바다 같았다.

바이칼호수의 석양.

아들과 나는 한적한 시골마을을 낀 호숫가를 찾아가 처음으로 야영을 했다. 낮 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갔다. 겨울엔 동토의 땅이지만 여름엔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서둘러 텐트를 치고 지훈이와 함께 호수에 들어가 물놀이를 했다.

근처에서는 러시아 현지인 가족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도 있었는데 지훈이 또래로 보였다. 그래서 지훈이에게 같이 놀아 보라고 했다. 처음엔 부끄러워하더니 조금 있으니 자연스레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역시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아이들은 말이 안 통해도 재밌게 잘 논다.

오후 들어 우리 캠프 자리로 미니버스 한 대가 다가왔다. 그 미니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중국인이었는데 4명이 중국에서 출발해 유럽까지 대륙횡단을 한다고 했다. 출발한 시기도 우리랑 비슷했다. 우리도 몽골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갈 거라고 하니 응원해 주며 아들 지훈이에게 커다란 육포 봉지를 선물로 건넸다.

여행자끼리는 어디서라도 금방 친해질 수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새 식사를 준비해서 아들과 단둘이 먹고 있으니 서서히 석양이 드리웠다. 일단 1차 목표로 바이칼호수까지만 무사히 가자고 나선 길인데, 그 목적지에 닿아서인지 감회가 새로웠다. 여기까지 무사히 올 수 있게 도움을 준 길에서 만난 러시아 친구들이 하나둘 머릿속에 스쳐 지났다.

이제 여기서 남쪽으로 내려가 몽골로 향한다. 몽골에선 또 어떤 일이 펼쳐질까? 

/시민기자 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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