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 10시 제주 전역 '1분 묵념'희생자 넋 기려
강요된 침묵, 민주화로 깨 특별법·진상보고서 '결실'
행방불명인 유해 발굴도, 책임자 처벌은 흐지부지돼
"미국 사과·유엔 조치 촉구"

제주에서는 3일 오전 10시 정각에 1분간 묵념 사이렌이 울린다. 올해 70주년을 맞은 4·3을 기억하고, 무고하게 희생된 넋을 기리는 추모 차원에서다. 지역과 국경을 넘어 곳곳에서 4·3을 떠올리고 있다. 지난달 31일에는 제주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와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민주노총이 공동 주최한 '제주4·3 민중항쟁 70주년 정신계승을 위한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또 전국 주요 도시에서 4·3을 상징하는 동백꽃 배지를 나누고 있고, 경남도청 민원실 입구에 가면 배지를 자율적으로 가져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추념일을 하루 앞둔 2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주 4·3 유가족에게 위로를 건네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교황의 전언은 이번이 처음으로, 지구촌 이웃들이 함께 기억하도록 했다.

대한민국의 해방공간에서 벌어진 참혹한 역사인 4·3은 제주도민의 끊임없는 요구와 희생으로 알려지고 기록되었다. 여기에 민주정부의 힘도 주요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4·3은 여전히 제대로 된 이름을 갖지 못했다. '항쟁', '학살'보다 '사건'으로 주로 불리며 불완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끝나지 않은 4·3 = 오랜 기간 제주 4·3은 입 밖으로 내기 어려운 단어였다. 강요된 침묵은 오래가지 못한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 열기가 고조되면서 4·3의 억울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1989년 4월 3일 제주시민회관에서 처음으로 공개적인 추모 행사가 열렸다. 제주도민의 열망은 결실을 맺어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4·3특별법이 제정 공포되었고, 2003년 노무현 정부 때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발간되었다.

4·3평화기념관에 기록되어 있는 수많은 희생자들의 얼굴.

하지만 4·3이 제대로 해결된 것은 아니다. 5·18 발포 책임자가 처벌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4·3 역시 가해자에 대한 조치가 취해진 적이 없다. 여전히 4·3을 '빨갱이'로 매도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명박 정부는 과거사와 관련한 위원회가 많고 예산이 낭비된다는 이유로 4·3위원회를 포함해 각종 과거사 위원회를 폐지하려고 시도했다. 다른 위원회와 달리 4·3위원회의 임기는 특별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법을 개악하지 않고서는 위원회 폐지의 법적 근거가 없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아래서 반공·보수 세력의 결집으로 4·3희생자에 대해 공격을 쏟아냈다. 헌법소원 2건, 행정소송 2건, 국가소송 2건으로 대부분 보수세력의 패소로 마감됐다.

진상조사는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 2003년 나온 진상조사보고서는 4·3이 일어난 시기를 개념화하고, 포괄적인 피해 실태를 밝혀낸 성과가 있다. 그러나 역사적 평가, 진압작전에 대한 지휘 체계, 마을별 피해실태 등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한 부분은 미완성이다. 이에 추가 진상조사 필요성이 제기됐고, 2007년 4·3특별법 개정 과정에서 추가 진상조사는 4·3평화재단의 업무로 조정됐다.

지난달 21일 찾은 제주4·3평화기념관은 견학 온 이들로 가득했다. /박정연 기자

지난해 12월 제주4·3연구소는 제주도 용역으로 진행한 '4·3 행방불명인 유해발굴 예정지 긴급 조사' 결과 최종보고서를 제출했다. 행방불명인 유해발굴은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돼 2018년 국비 15억 600만 원이 반영된 사업이다. 용역 조사에서 발굴 예정지로 제주공항 내외 1곳, 선흘리, 북촌리, 구억리 등 5곳이 제기됐다. 이에 제주도가 국토교통부, 한국공항공사 등과 발굴 가능 여부를 협의한 결과 남북활주로 동쪽 뫼동산 인근과 남북활주로 북단 서쪽, 화물청사 동쪽 구역 3곳으로 정해졌다.

유해발굴과 더불어 희생자·유족 추가 신고도 진행한다. 제주도는 신고기간을 2018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1년으로 정했다. 4·3특별법 제정 이후 5차례에 걸쳐 신고를 받았지만, 일가족 사망과 해외거주 등을 이유로 신고를 못 한 사람이 상당수 있다. 이에 유족회 등에서 추가신고 기간을 마련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해 받아들여졌다.

◇죽음의 땅에서 평화의 땅으로 = 제주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 중에서 4·3을 추념하는 이들이 올해는 특히 많다. 지난달 21일 찾은 제주4·3평화공원은 견학을 온 이들로 가득했다. 신정원(16·한국국제학교) 양은 "제주도에 살면서도 4·3에 대해 잘 몰랐다. 끔찍한 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억하고 추모해야 한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제주4·3평화기념관 1층에 마련된 북카페에 있는 동백꽃 순심이 인형.

제주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는 '미국과 국제연합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범국민위원회는 "제주4·3은 미군정이 통치하던 시기에 일어난 민간인 대량학살사건이다. 미국은 4·3 학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해 사과하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 유엔도 조사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3의 비극은 일제 강점기가 비정상적으로 막을 내리면서 엉클어진 역사의 한 조각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고 미국과 소련이 승리하면서 실제로 한반도에서 점령군으로 통치권을 행사했다. 1차적으로 4·3에 대한 책임이 미국에 있다. 미군정은 제주도를 '붉은 섬'으로 규정하고, 마을을 적들의 근거지로 판단했다. 이승만 정부의 무차별 초토화 작전을 승인하고 명령했다.

하지만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부를 수 있을까. 지난 2005년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됐지만, 강정해군기지 건설로 평화의 섬 자체가 논쟁이 되는 현실이다. 강정 해군기지에는 미 해군의 첨단 함정이 방문하고 있다. 2007년 강정 해안이 해군기지 건설부지로 확정되면서, 주민은 생존권을 지키려는 평화운동을 줄기차게 전개했다. 결국 2016년 완공된 해군기지 맞은편 강정마을 주민은 스스로 '생명평화문화마을'로 선포하고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4·3 70주년은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것과 더불어 한반도 평화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실현하는 차원에서 지혜와 용기를 모아야 하는 때이다. 〈끝〉

4·3평화기념관에 있는 희생자들을 형상화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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