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원로 예술인 '젊음의 기억'과 조우
백치 62주년·동인지 2집 발간 기념회
시 낭송하고 기타 치며 공연 '웃음꽃'
80대 문인들 더러 생각에 잠긴 모습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창동예술촌 남쪽 남성동 한국투자증권 건너편 좁은 골목에 '홍화집'이란 오랜 음식점이 있다. 1998년에 문을 닫은 서성동 '고모령'에 이어 마산지역 예술인, 특히 나이가 좀 드신 분들이 사랑방처럼 애용하는 곳이다. 벽에는 1960~70년대 문화예술행사 팸플릿부터 손때 묻고 켜켜이 먼지가 쌓인 책, 원로 예술인들의 젊은시절이 담긴 흑백 사진이 가득하다.

지난 30일 저녁 이 홍화집이 평소보다 훨씬 많은 문화예술인들로 가득 찼다. <백치> 동인지 2집 출판기념회를 겸한 창립 62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지역 원로 예술인들과 문인단체 대표들이 꽤 많이 참석했다. 그 한편에 이제는 다들 여든이 넘은 백치 동인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 중 소설가, 화가이기도 한 이제하 시인, 조선업체 대표이기도 한 황성혁 시인과 강위석 시인은 실로 오랜만에 문학 모임이란 이름으로 마산을 찾았다. 그 곁에 마산 원로 문인인 이광석 시인과 김용복 시인이 함께했다.

남성동 홍화집에서 열린 백치 동인 모임에서 참석자들이 이제하 시인이 작사하고 조영남이 부른 '모란동백'을 제창하고 있다. /이서후 기자

백치는 1956년 당시 마산지역 남녀 고등학생들이 모여 창립한 문학 모임이다. 대부분 동인이 서울로 진학했고, 신춘문예나 문예지를 통해 등단했다. 그러면서도 방학이면 고향 마산에서 문학의 밤 같은 행사를 열면서 마산지역 문예 부흥에 이바지했었다. 하지만 시대 상황과 생업으로 활발한 활동이 오래가진 못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시집이나 소설이라도 출간하면 서울에서 모임을 하곤 했다. 그러다 동인 창립 53년을 맞은 2009년 동인지 <백치> 창간호를 냈다. 그리고 다시 9년이 흘러 올해 <백치> 2집을 발간했다.

이날 진행은 경남시인협회 김미윤 회장이 맡았다. 참석자 소개에 이어 후배 문인들이 이제하 시인의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와 이광석 시인의 '낙타의 변'을 낭송했다. 이 중 '청솔 그늘에 앉아'는 1954년 당시 학원지가 공모한 '제1회 학원문학상' 응모 작품 전체 5000여 편 중 시 부문 우수작으로 뽑혀 고등학생이던 그를 스타로 만든 작품이다. 이 자리에서 이 시의 배경이 마산 교방동 소나무숲임이 공식 확인되기도 했다. 이 외 변승기 시인도 '이제하 형에게'란 편지 형식의 시를 낭독했다.

이제하 시인은 이날 직접 기타를 치며 축하공연을 했다. 자신이 작사하고 가수 조영남이 불러 크게 인기를 끈 곡이다. 건강이 좋아 보이지 않았으나 그는 참석자들의 호응에 내리 한 곡을 더 불렀다.

이날 분위기는 유쾌했다. 고령 참석자들이 많은 까닭에 '밖에 구급차 준비했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이도 있었고, 사전 행사가 길어지니 '언제까지 할끼고. 빨리 술 한잔하자'며 호통을 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사진가인 라상호 창동예술촌 촌장이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았다.

공식 행사가 끝나자 각자 앞에 놓은 술과 안주로 왁자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이런 가운데 이제하 시인이나 강위석 시인 등 서울에서 오랜 기간 활동한 동인들은 더러 생각 많은 얼굴이기도 했다. 젊은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이날 행사 팸플릿에는 작고한 동인 6명의 사진이 있었다. 옛 장소로 돌아왔지만, 그 시절 치기 어린 젊음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하여, 백치 동인들에게 청춘이야말로 영원한 노스탤지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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