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사람 차이
마음이 곧 근본, 다스릴 수 있어야

사람은 태어난 모습 그대로 두면 그야말로 혼탁한 물이 될 수 있다. 무릇 교육학자들이 환경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자주 거론하는 늑대소년의 경우를 보라. 그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늑대의 젖을 먹으며 늑대처럼 성장하였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늑대소년과 같은 환경에 처하면 똑같았을 것이다. 인륜도덕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성인들을 믿고 그 가르침을 믿고 살아가는 일은 그야말로 흐린 물을 맑게 하는 구슬의 역할과 같다.

또한, 믿음은 대지와 같다는 말도 있다. 대지에서 모든 식물이 자라고 사람은 땅 위에 건물을 세우고 삶을 영위한다. 믿음은 지팡이와 같다고 한다. 늙고 몸이 불편한 이는 지팡이를 의지하여 길을 간다. 사용해 보지 않은 사람은 지팡이가 얼마나 든든한지를 모른다. 또 믿음은 큰 배와 같다고도 한다. 무거운 짐도 배에다 실으면 바다를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다. 이처럼 성인을 믿고 그 가르침을 믿는 일은 사람이 보다 사람답게 그리고 의미 있고 보람 있게 살아가는 데 매우 소중한 일이다.

이런 말이 있다. 성인구심불구불(聖人求心不求佛), 성인은 마음을 구하고 부처를 구하지 않으며 우인구불불구심(愚人求佛不求心), 어리석은 사람은 부처를 구하고 마음을 구하지 않는다. 무엇이 근본인가? 마음이 근본이다.

성인과 어리석은 사람의 다른 점도 이 근본을 아는가 모르는가에 달렸다. 지혜로운 이와 어리석은 이도 이 근본을 아는가 모르는가에 달렸다. 그래서 성인은 근본인 마음을 구하지 지엽인 부처를 구하지 않는다. 어리석은 사람은 지엽인 부처에게만 매달리고 근본인 마음은 내팽개친다. 역시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다스리는 데 마음을 쓴다. 어리석은 사람은 몸을 다스리는 데 마음을 쓴다. 사람이 사는 데는 몸도 중요하다. 그러나 인생을 더욱 값지고 의미 있고 보람되게 살다 가려면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몸을 잘 다스려 건강하고 연년익수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사람이 천년을 살고 만년을 살다가는 것이 아닌 바에야 마음을 잘 다스려 뜻있게 살다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몸을 잘 다스리면 금생뿐이지만 마음을 잘 다스리면 세세생생 좋은 인생이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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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명일찬(伴命一鑽), 화신투입(和身透入)이라는 <선요>의 말이 있다. 즉 목숨을 버리고 한 번 뚫으면 몸까지 뚫고 들어간다는 고봉 원묘(1238~1295) 화상의 법문집에 나오는 간화선 참선 공부하는 일을 이렇게 비유했다. 마치 모기가 무쇠로 만든 소의 등에 올라가서 그 연약한 침으로 두꺼운 무쇠판을 뚫는 것과 같다. 모기가 무쇠판을 아무리 뚫으려 해도 도저히 뚫을 수 없다. 그러나 반드시 뚫어야 한다. 만약 무쇠판을 뚫지 못한다면 비록 하늘을 높이 나는 재주가 있어서 저 비상비비 상천에까지 날아 올라갈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한갓 배고픈 모기에 불과하다. 기어이 무쇠로 된 소의 등판을 뚫고 피를 빨아 먹어야 모기가 할 일을 다 하는 것이고 주린 배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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