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과객 하룻밤 잠자리 얽힌 옛이야기
가야사 복원, 규모보다 실속 중시해야

옛날, 과객질로 이력이 난 선비가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면 과객들은 밤 이슬을 피하고 곡기를 때우려고 가던 길을 멈추고 가까운 마을로 찾아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을이 크고 번듯하여도 과객 한 몸 편히 하룻밤을 지낼 수 있는 인심이 있는 집을 찾기란 쉽지 않다. 봇짐에 ‘꼴랑’ 헤진 짚신만 매달려 있을 뿐 곡식여비도 없는 선비 처지에 좋은 묵을 처에서 대접을 받기란 애초에 기대를 말 일이기도 했다.

매화꽃 만발하고 봄이 성큼 온 누리에 차오르는 어느 날도 선비는 길 위에 있었다. 주막은 멀고 노잣돈 없이는 설령 주막이 나타나도 물벼락 맞기 십상인 처지의 길 동무 서넛과 함께 밤이 스며드는 한 마을로 들어섰다. 그 중 한 사람은 갈 길이 바쁘다며 마을 초입의 집들을 기웃거렸고 또 한 사람은 체신을 찾는다며 마을에서 가장 덩그르한 집을 찾았다. 그러나 이 선비는 이전에 왔던 것처럼 한 집으로 들어섰다. 그 집은 고대광실과는 비교할 바가 아닌 삼 칸 초가였고 대나무 울타리에 싸리문이 고작인 그 마을뿐 아니라 어디에나 흔한 집이었다.

다음 날 마을 어귀에서 다시 만난 길동무들의 표정은 그들이 찾아든 집들처럼 제각각 이었다. 제일 먼저 마을 입구에서 잘 곳을 찾았던 사람은 잠을 영 설친 표정이 역력했는데 밤새 짐승들 짓는 소리와 고객 알기를 지나는 개 취급에 이력이 난 주인의 홀대로 겨우 처마밑에서 이슬만 피했노라며 신세 한탄을 했다. 번듯한 집을 찾았던 사람도 얼굴에 나타난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주인이 인색했고 밤새 그 집 머슴들의 신세 한탄을 들어주느라 겨우 머슴밥 한 그릇에 뜬눈으로 지새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선비만큼은 과객의 노곤한 피로감은 간데없고 또 하룻길을 가기에 거뜬한 표정이었다. 동행들이 운수가 좋았다며 부러워하는데 선비는 과연 그랬노라며 자신의 노하우를 말해 주었다. 번듯한 집은 격식을 따지기 쉽고 먹는 것과 잠자리가 이롭기는 하지만 진정으로 편하기는 어려우며 마을 어귀 집은 과객들이 자주 찾아드니 사람대접에 소홀하며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지라 곤궁함에 짐을 보태는 격이며 자신이 하룻밤 지낸 집은 살림이 넉넉하지도 않고 식구는 많은 편이어서 숟가락 한 개 더 놓는 표시가 덜 했으며 울타리가 잘 정돈되어 있고 집 앞 고샅길까지 깨끗하게 비질이 되어 있는 걸 보니 체면을 차릴 줄 알고 그만큼 남을 대함에 범절이 있었다고 말했다. 과객들은 제 각각의 사정대로 다시 길을 떠났고 이 선비 또한 그다음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선비로부터 교훈을 들어 새긴 과객들은 마음 한편 어제보다 여유롭게 걸음을 보탤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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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기 마련이고 여행은 먼 옛날이나 현재에나 이런 심리를 채워주며 인간사를 연결해 왔다. 우리 고장 경남은 가야사 복원을 위한 분주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훗날 가야사를 보려고 우리 고장을 찾는 여행객들이 어떤 감흥을 가질지 아직은 깃털만큼도 알 수 없다. 신라 고도 경주는 유적이 많이 남아 있어 역사 여행의 일번지로 꼽힌다. 하지만, 화려한 복원과 거대한 박물관 크기만큼 역사의 향기를 전해주고 있는지 의문이다. 백제의 고도 공주와 부여는 뒤늦게 복원을 시작하였으나 유적이 많지 않다 보니 백제를 실감할 수 없고 박물관은 크기에 비해 내용이 적다. 그나마 백제는 역사는 남아 있지만 가야는 역사로도 온전치 못하다. 어떻게 복원이 될지 안갯속이니 설왕설래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 복원이라고 사람살이와 크게 다른 이치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 다가가는 그리하여 제대로 가야역사가 펼쳐질 수 있어야 비로소 가야의 역사에 낯을 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큰 집도 좋지만 실속이 차 있어야 하며 마을 가녘살이처럼 들까 불까 걱정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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