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100명 중 3명 병적 우울증
상담 이후 약물치료 병행 효과적
어설픈 위로보다 치료 권해야 

살다가 우울하지 않고 늘 즐겁기만 한 사람이 있을까. 그러다 보니 우울증에 대해 간과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선입견으로 쉽게 병원을 찾지 못하기도 한다. 마음을 강하게 먹고 즐거운 생각만 하면 우울증은 고쳐질 수 있을까. 창원시 마산회원구 동서병원 손진욱 부원장의 도움말로 우울증에 대해 알아본다.

◇우울증이란

누구나 우울감을 느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전부 우울증은 아니다.

손 부원장은 "우울감이나 무기력감이 2주 이상 지속돼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줄 때 '병적 우울증'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병적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 이외에도 일상생활에 흥미가 떨어지거나, 식욕이나 체중 감소, 수면장애, 불안이나 초조감, 기분이 처지거나 절망감과 무력감, 피로, 활력 상실, 자책감이나 죄책감, 사고력과 집중력 저하, 죽음에 대한 반복적인 생각, 자살 기도, 망상 등 다양한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또한 자신과 주위 환경, 미래에 대해 비정상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하게 된다.

병적 우울증은 정도에 따라 경증 우울증과 중증 우울증으로 나눈다. 중증 우울증은 환자의 고통과 처연함이 주위 사람에게까지 전해져 함께 슬픔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손 부원장은 "기분이 처지고 의욕이 안 생기는 경험은 누구나 있다. 보건의료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70% 이상이 우울감을 느꼈지만, 대부분 문제가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반면 병적 우울감은 겉으로 봐서 표시가 날 정도다. 표정이나 말이 없어지고 행동이 달라진다. 이들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분만 우울한 게 아니라 신체적 증상이 나타난다. 소화가 안 되고, 두통과 피로감, 호흡곤란, 가슴 답답함 등이 동반될 수 있는데, 흔히 내과나 가정의학과를 먼저 찾아가 각종 진찰과 검사를 받아도 특별한 소견이 없어 '신경성'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 100명 중 3명은 현재 병적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10명 중 1명은 평생에 한 번 이상 병적 우울증으로 고통받는다. 하지만 이를 전문가와 상의해 고치려고 하는 경우는 20%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창원 동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손진욱 부원장이 진료실에서 상담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재발 잘 돼 꾸준히 치료해야

유명인 자살 보도에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우울증'이다. 일반적으로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의 약 70%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우울증의 원인은 확실히 알려져 있지는 않다. 대체로 유전적 요인, 정신 사회적 요인, 생물학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보고 있다.

일부 연구는 가족 중에 우울증 환자가 있으면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하지만, 일정한 비율로 후손에게 유전되는 유전병은 아니다.

또 뇌 안의 신경전달물질이 우울증 발생에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으며, 호르몬 불균형도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 경제적인 문제, 강한 스트레스 등 대처하기 어려운 주위 환경도 우울증 발생에 영향을 준다. 또한 같은 환경이라도 개인차가 있다.

손 부원장이 진료실에서 만난 중년 남성 ㄱ 씨. 평소 힘든 일이 생기면 자신감을 잃고 불안해지고 잠을 잘 못 자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잘못을 해 행정기관의 조사를 거쳐 '주의' 조치를 받았다. 이에 ㄱ 씨는 충격을 받고 심한 우울감이 3주 이상 지속돼 병원을 찾았다.

손 부원장은 ㄱ 씨와 면담하고 항우울제를 처방했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증상이 많이 좋아진 ㄱ 씨는 이제 약을 그만 먹어도 될까.

손 부원장은 "약을 제대로 먹으면 일주일 이내에 상태가 좋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금방 약을 끊으면 안 된다. 6개월 이상 용량을 조절하며 약을 먹어야 한다. 약만 중요한 게 아니다. 약 복용과 면담을 병행할 예정이다. 우울증은 재발이 잘 되는 병"이라고 밝혔다.

의사들은 진료실에서 면담을 통해 환자 상태를 파악하지만, 환자나 일반인들은 미국정신의학회가 발표한 진단 기준 등 인터넷 등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도구를 이용해 우울증 정도를 자가 체크할 수 있다.

우울증이 의심되면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나 뇌졸중 등 다른 질환과 감별을 해야 한다. 또 우울 증상은 불안 장애 등 다른 정신과 질환의 증상 중 하나로 나타날 수도 있으므로 정확한 진단을 거쳐야 한다.

약물치료에 부정적인 환자도 많다.

손 부원장은 "약으로는 마음을 고치지 못한다거나 정신과 약은 중독된다, 정신과 약을 오래 먹으면 바보가 된다 등 이야기가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이는 모두 잘못된 오해"라며 "요즘 처방하는 항우울제는 과거 약물에 비해 부작용이 적으며 충분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내성, 즉 중독이 생기지 않는다. 다만 입 마름이나 나른함과 같은 부작용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스로 치유할 수 없는 병

흔히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도 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이 말을 경계하기도 한다.

손 부원장은 "감기처럼 누구나 겪을 수 있고, 흔히 앓을 수 있어서 마음의 감기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버려둬도 며칠이면 낫는 감기처럼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며 "우울증은 그냥 두면 절대 낫지 않는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야지만 호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울증은 비교적 잘 낫는 병이지만, 환자와 주변인들이 겁을 먹고 조심스러워 하며 치료를 꺼린다는 것이다.

손 부원장은 "정신과 질환, 우울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자신이 못나지도, 성격에 문제가 있지도 않은데 왜 우울증이냐고 스스로 부정한다. 일부 종교인 중에서는 신앙심이 부족해 우울증에 걸렸다고 주변에서 비난하는 것을 겁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우울증은 절대 스스로 치료할 수 없다. 웃는다거나 좋은 생각을 한다거나 운동을 한다고 해서 낫는 병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긍정적인 생각 등은 병적 우울증이 되기 전, 가벼운 우울감을 느낄 때는 도움이 되지만 병적 우울증 환자에게는 소용이 없다.

손 부원장은 "우울감을 느끼는 초기에는 스스로 그러한 감정을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웃음이나 운동이 도움된다. 하지만 우울감이 2주 이상 지속되면 그러한 에너지도 없는 상태가 된다"고 설명했다.

우울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던 20대 ㄴ 씨. 상태가 많이 좋아져 가족들이 어느 정도 마음을 놓고 있던 때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에 대해 손 부원장은 "우울증 환자는 증상이 좋아졌을 때 더 위험한 경우도 있다. 우울증이 심할 때는 자살할 힘도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며 "상태가 호전돼 힘이 생기면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면서 더 비관할 수도 있다. 우울증은 좋아진다고 마음을 놓으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우울증은 재발이 잘 되므로 과거력이 있으면 충격이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항상 조심해야 한다. 이러한 사람은 우울한 감정이 들면 심하지 않아도 초기에 병원에 와서 상담하는 것이 도움된다.

◇섣부른 위로는 금물

주위에 우울증 환자가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손 부원장은 "섣부른 위로는 금물"이라고 못 박았다. 고통에 공감한다고 가볍게 말하거나 섣불리 위로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손 부원장은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심해지면 병원에 가도록 도와야 한다"며 "도움이 되는 말을 억지로 하려 하지 말고, 다만 혼자 두지는 마라"고 충고했다.

"별것 아닌 걸로 왜 그래?"라거나 "누구나 다 그런 일을 겪는다", 혹은 "그만 잊고 힘내라"와 같은 말을 하면 우울증 환자들은 자신이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해 더 기분이 나빠지면서 말문을 닫게 된다.

손 부원장은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왜 힘들어할까가 아니라 당사자에게는 큰 문제일 수 있구나 하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성으로 설득하려 하면 안 된다. 감정적인 문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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