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즘 사진가의 고백 "냉랭한 현실 담고 싶었죠"
이갑철·이희상·한금선 작가
흑백 사진 30점…관객 대화

"파리에서 사진 공부를 할 때 짧은 신문 기사를 봤어요. 집시들이 프랑스 남쪽 마을로 모여드는데 그래서 마을이 텅 비었다는 내용이었어요. 이상하더라고요. 집시들이 오면 재밌을 텐데 마을 사람들이 왜 떠났을까 궁금했어요. 당시 KBS 통신원을 하고 있을 때여서 이걸 취재를 하겠다 하고 마을을 찾아갔더니 정말로 그 마을에 호텔이나 식당이 문을 다 닫은 거예요. 그리고 집시들로 가득 차 있었고요."

전 세계 집시들이 성녀 사라를 찾아 순례를 오는 프랑스 땅끝마을 생트 마리 드 라 메르. 현재 가장 활발한 여성 다큐멘터리 사진가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한금선 작가의 10년 남짓한 사진 여정이 시작된 곳이다.

지난 23일 오후 6시 진주문화공간 루시다 갤러리 1층에서 갤러리 개관 4주년 특별전 참여 작가와의 만남 행사가 열렸다.

이날 이갑철, 이희상, 한금선 작가와 작고한 한영수 작가의 딸이 함께했다. 한금선 작가가 자신의 사진 앞에서 설명을 이어갔다.

"2005년 사진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지금 한국에 가면 가장 후회될 일이 무엇일까 고민을 했어요. 프랑스 몇몇 성지가 아니라 집시의 근원을 찾아보고 싶더라고요. 2차대전 후 집시들이 강제로 정착을 당했어요. 그런 마을을 돌아보지 않으면 후회가 될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2005년에 6개국을 3개월 동안 다녔어요. 이 작업을 하고 와서 집시에 대한 전시와 <집시 바람새 바람꽃>이란 사진집으로 한국에서 사진가로 첫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고요. 지금 보시는 사진들이 저에게는 사진가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해준 의미 있는 작업이에요."

23일 열린 진주문화공간 루시다 갤러리 개관 4주년 특별전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참석한 관람객 모습. /이서후 기자

한 작가는 2005년 한국으로 돌아와 강정 마을, 용산 참사 같은 우리 사회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소재로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초기작인 '집시' 4점과 '밀착' 1점을 볼 수 있다.

다음으로 40년간 아날로그 흑백사진으로만 작업하는 이희상 작가가 적막, 배회, 사선이란 제목으로 걸린 자신의 작품 5점 앞에 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따뜻하고 감성적인 것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감각적이고 냉랭하고 차가운 게 제 사진의 성격입니다. 그러니 사진을 볼 때 따뜻함보다는 디테일과 테크닉, 그것이 어떻게 감각적으로 표현됐는가를 잘 살펴보세요."

한금선 작가가 자신의 초기 작품인 '집시' 시리즈 앞에서 설명하는 장면. /이서후 기자

이번 특별전에서는 이들 외에도 일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미연, 끊임없이 한국적인 것에 천착하는 이갑철, 세계 격동의 현장을 담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성남훈을 포함해 우리나라 최초 리얼리즘 사진 연구단체 '신신회'를 만드는 등 1960년대 사진 발전에 이바지했던 사진가 한영수(1933~1999) 등 당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사진을 볼 수 있다.

루시다 갤러리의 이번 특별전은 서울 강남에 있는 사진예술 전문 갤러리 '스페이스22'가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전시된 사진 30점 모두 이곳에서 소장하고 있던 것이다. 모두 흑백으로 보존성이 뛰어난 은염방식으로 프린트한 것이다.

전시는 4월 3일까지 계속된다. 문의 루시다 갤러리(055-759-7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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