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루트 따라 떠나다] (3) 부러움을 넘어 감사함으로
위엄찬 잘츠부르크 역사, 눈부신 인스부르크 설산
이곳 주민들 소망 궁금해, 여러 풍광 너무 부럽지만
우리나라 또한 아름다워

어떤 도시를 기억하는 데에는 그렇게 많은 것들이 필요치 않은 것 같다. 하나의 중요한 산업이나 건축물 혹은 단 한 사람의 인물만으로도 그 도시를 정의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로 정의되고 설명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모차르트박물관, 모차르트 생가, 모차르트 광장은 잘차흐강을 가운데 두고 잘츠부르크의 중심부에 연이어 놓여 있다.

하지만 그는 지금의 그로 대변되는 잘츠부르크의 명성이나 화려함만큼 인생은 녹록지 않았는데 내가 비엔나 중앙묘역에서 본 그의 묘지는 가묘였으니 말이다. 갑자기 폭우로 변한 잘츠부르크 시가지의 좁은 골목길에 있는 그의 생가 앞에는 레퀴엠이라도 울려 퍼지는 듯 무리들이 긴 줄에 엉킨 채 서성거렸다. 여행자들은 그런 모차르트의 삶을 이해한다는 듯이 마카르트스테그 다리에 수십만 개의 자물쇠를 채워 놓았다. 내게는 그 모습이 "모차르트여, 이제 편히 쉬시라!"는 합창으로 들렸다.

오스트리아는 내게 참 부러운 나라다. 우리처럼 좌나 우, 남과 북, 진보와 보수, 선거 때마다 약방의 감초가 되어 왔던 전라도와 경상도, TK(대구·경북)니, PK(부산·경남)니 하는 이상하고 케케묵은 지역 논리(물론 이들에게도 지역감정은 분명히 있겠지만)와 같은 것이 국민을 송두리째 스트레스 상태로 몰고 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잘츠부르크 성에서 본 잘츠부르크 시가지. 시가지 중심으로 잘차흐강이 흐른다.

더군다나 유엔 산하 기구들이 대거 비엔나에 본부를 두고 있어 우리말로 '안전빵'으로 국가의 안보를 이들에게 담보해 오고 있기도 한 것이다. 오스트리아는 이들 유엔기구를 유치해 와서는 연간 단 7유로센트의 건물 사용료만 받고 있다니 일거양득, 아니 일거칠득 이상의 반사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꿩 먹고 알 먹고가 아니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정도가 아니다.

또한 자연은 얼마나 잘 보전하고 있는지. 솔직히 자연만 놓고 본다면 우리나라가 그들보다 몇 배는 더 아름다운 게 사실이다. 서부 알프스 지역을 제외하고 중동부 쪽에는 산다운 산, 강다운 강, 시내 같은 시내를 보기가 어렵다. 내 생각으로는 이들 나라가 아름다운 것은 순전히 '인공의 미' 때문인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만지거나 만들면 아름다운 작품이 된다는 것을 일컬어 일명 '프렌치 터치'라고 한다는데 이는 단지 외형적인 것뿐 아니라 프랑스의 정신을 함축한다고도 봐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 '프렌치 터치'는 패션, 디자인, 미술과 음악, 심지어는 요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와 예술장르에서 실현되고 있어서 결국 프랑스의 정신과 문화를 아우르는 용어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의 대부분 나라들이 문화나 역사를 통하여 선조의 혜택을 세계 다른 나라들 보다 훨씬 많이 입고 사는 것은 와 보면 알게 되기에 우리식으로 '원님 덕에 나팔 분다'고 하는 말처럼 나는 이들이 '조상 덕에 나팔 분다'는 말을 자주 썼었다.

마카르트스테그 다리. 사랑을 약속하는 수만 개의 자물쇠가 걸려 있다. 그 모습이 "모차르트여, 이제 편히 쉬시라!"는 합창으로 들렸다.

순수한 자연경관과 인공 경관을 비교해서 두 개의 조건이 경관에 영향을 미치는 비율을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적어도 1:9 정도는 되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어느 지역에 이들이 와서 10년 정도만 산다면 어떻게 될까? 더 나아가 50년, 100년이 지난 후에는 이들의 문화나 건축양식으로 지역이 탈바꿈될 것이고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연출되지 않을까?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그런 면에서는 한참 뒤에 있다.

우리보다 훨씬 후진국인 남미나 동구만 보더라도 그것을 방증하고 있지 않는가? 좀 말이 다른 곳으로 빗나갔지만 요지는 이렇다. 유럽의 나라들, 특히 오스트리아나 스위스와 같은 영세 중립국의 국민이나 국가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호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랬었다. 비엔나의 잘난 거리들이나 멋진 도로를 거닐면서도, 잘츠부르크 성에 올라서 본 그 역사와 위용 속에서도, 인스부르크의 눈 덮인 산을 케이블카 타고 올라가 도시를 내려다보면서도 무척이나 궁금했던 것은 "이들에게는 어떤 꿈이 있을까?"였다. 나를 비엔나에서 안내해 주셨던 오 선생님께 이것을 여쭤 보기도 했었다. 더 이상의 꿈이 필요하지 않을 나라로 보였기 때문이다.

모리츠는 내가 도착하자마자 어제 알프스에 첫눈이 왔으니 해가 지기 전에 눈을 보고 오라는 말을 했다. 호주에서, 중국에서, 남미에서 왔다는 여행자들과 케이블카에서 내려 설산을 밟았다. 남쪽으로는 내가 당장 내일 가야 할 땅 이탈리아, 서쪽으로는 스위스와 프랑스, 북쪽으로는 독일의 뮌헨지역이다. 첩첩산중, 하얀 세마포를 덮어 놓은 것 같은 설산, 까마귀가 떼를 지어 날고 그 위에 독수리 한 마리가 배회를 했다. 동서남북을 연이어 내 몸을 회전시키면서 둘러보았다. 저 눈은 최소 내년 4월까지는 이 산을 덮을 것이다. 봄이 오기까지는 반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알프스 설산. 첫눈이 내려 장관이었다. /시민기자 조문환

인스부르크의 설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시가지, 티 하나, 흠 하나 보이지 않는 마치 청옥과 같은 도시를 내 발아래로 보면서, 눈이 시리고 아니 가슴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을 앞에 두고서도 또다시 내게 다가오는 질문은 이들의 소망은 무엇일까?였다.

하지만 내가 인스부르크 뒷산, 케이블카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올랐던 2000미터가 넘는 설산의 산봉우리에서 본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인스부르크 시가지와 완벽에 가까운 도시 시설이나 사회시스템, 복지와 정치, 문화, 경제와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이 든 것은 왜일까? 무엇에 기댈 언덕이 있어서일까? 이들만큼의 부나 미를 창조해 낼 수 있는 처지가 아닌 현실임에도, 날이면 날마다 거세지는 주변 나라들로부터의 위협 속에서도 뭐가 그리 감사했을까?

"그들 속에는 꿈에도 그리는 소망이나 꿈이나 기도가 있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수준은 다르겠지만 이들에게도 꿈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에 비해 나아가야 할 길이 멀기에 소망이나 꿈 또한 그만큼 간절한 것이다.

겸손한 나라, 늘 깨어 있는 가슴들, 틈새나 보고 약한 자들이나 잡아먹는 그런 치졸한 나라나 그런 치졸한 국민이 아니라 스트레스와 치열한 틈바구니 속에서도 꿈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이라는 땅에 있어 감사하다고 말이다.

이제 인스부르크 설산에서 하산해야 할 시간이다. 이탈리아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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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조문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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