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교육 현장 고발했지만 발언 학생 보호 이유 '제자리'
주변인 조사 '머뭇'의지 의문

지난 10일 세계 여성의날 행사장에서 학교 교사의 성추행 발언이 폭로됐지만 경남도교육청은 보름이 지난 현재까지 사실 여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박종훈 교육감은 지난해 8월 창원 한 여고에서 성희롱 훈화를 한 교장 해임 징계와 함께 '성 관련 사건에 대한 경남교육감 담화문'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성 관련 사건에 대해 도교육청은 빠른 대처를 약속했지만 이번에는 폭로 학생이 조사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실태 점검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

◇진위도 확인 못 한 교육청 = 세계 여성의 날 행사 무대에 오른 도내 한 여고생은 교육 현장에 만연한 성 불평등과 성희롱을 고했다.

당시 학생은 "선생님이 정관수술을 했으니 너희와 성관계를 해도 임신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성희롱 발언을 한 교사를 교감에게 고발했더니 다른 교사들이 교실로 찾아와 부모한테 말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폭로했다. 심각한 수준의 성희롱 발언과 함께 교감·교사가 조직적인 은폐를 시도했다는 고발도 있었다.

다음날 도교육청은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자 나섰지만 발언 학생이 조사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보름이 넘도록 발언 내용 진위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행사를 진행한 경남여성단체연합도 '피해자 보호'를 주장하며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8월 도교육청은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성을 팔 수도 있다'고 훈화한 창원 한 교장 해임 결정과 함께 도교육청 차원에서 교사에 의한 학생 성폭력을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그 대책으로 성 관련 전문가, 인권, 교육 분야 외부 인원으로 구성된 상설대책기구를 운영해 사건 예방과 실태 점검, 긴급 대응 등 전반적인 활동을 담당할 것을 강조했다.

이후 자문단과 학교폭력 전담팀 등 성 관련 문제 일원화 처리 시스템은 만들어졌지만 긴급 실태 점검과 대응에 있어 가동은 되지 않고 있다. 도교육청은 "피해 사례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학교를 수소문해 조사를 벌였지만, 발언 학생과 여성단체가 직접 조사와 면담을 거부하고 있어 더는 조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학교가 추정되는 만큼 주변인 조사도 가능하지만 도교육청이 머뭇거리고 있어 성 관련 사건 확인에 의지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학생 발언으로 미뤄보아 당시 다수 학생이 이 같은 발언을 들었을 가능성과 알려지지 않은 추가 피해가 예상된다.

또한 학교 측의 은폐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교육청은 '해당 학생을 만날 수 없다'는 이유로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도교육청과 이번 사태를 공유한 경찰은 정식 수사 의뢰가 있어야 조사에 착수할 수 있다고 했다.

◇여성단체 "피해자 보호"만 주장 = 경남여성단체연합은 발언 학생의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전수조사를 통해 진상을 파악할 것을 교육청에 요청했다. 하지만 발언을 한 학생도, 주최 측도 진상 파악에 협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발언은 창원광장에 300여 명이 모인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에 여성단체는 "학생의 발언은 페미니즘 교사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또한 학생을 불러 조사를 하게 되면 미투운동의 본질과 달리 2차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우리는 피해자 보호 차원에서 해당 학생이 아닌 학교 학생과 교사 등을 전수 조사해 줄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수업 중이었다면 학생 다수가 그 발언을 들었을 수도 있다. 또, 평소 언행에서 성희롱 발언에 대한 거부감도 없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전수조사만 해도 진위는 파악할 수 있으리라 본다"고 주장했다.

발언 내용 진위도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수 조사를 벌이면 교육청이 해당 학교 교사 전체를 준범죄자로 취급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도교육청과 여성단체는 이번 주 협의를 통해 여성단체를 통한 진상조사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