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분권이다] (11) 대통령 개헌안
현행 '법령의 범위 내에서''법률 위반하지 않는 범위'로 자치입법권 놓고 평가 갈려 진일보 VS 제자리
'지방분권 지향 명시''지방세조례주의'긍정 오늘 대통령 개헌안 발의 자치입법권 변화 주목

진일보냐, 제자리냐?

21일 공개된 문재인 대통령 발의 예정 개헌안 중 '지방분권' 분야에 대한 논쟁이다. 핵심은 자치입법권, 자치재정권 관련 내용이다. 현행 "법령의 범위 내에서…"를 "법률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로 바꾼 것을 놓고 진일보다, 제자리다 논쟁에 불이 붙었다.

헌법 1조 3항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는 내용을 넣은데 대해서도 "자주권 보장이다", "데커레이션에 불과하다"는 등 평가가 엇갈린다. 부정적 평가자들은 "26일 예정된 대통령 발의 때에는 반드시 지방정부의 완전한 자치입법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자치입법권 쟁점

가장 큰 논란이 자치입법권이다. 자치입법권은 지방자치단체가 법률·조례·규칙 등을 스스로 제정하는 권한이다. 현재 우리는 자치단체의 법률 제정권은 없고, 법령의 범위 내에서 조례와 규칙을 제정하게 돼 있다.

개헌안에는 지방정부의 자치입법권이 더욱 폭넓게 보장되도록 현재의 '법령의 범위 안에서' 조례를 제정할 수 있도록 하던 것을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에서' 조례로 제정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주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사항은 법률의 위임이 있는 경우에만 조례로 정할 수 있도록 해 주민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했다.

지방정부의 완전한 자치입법권 보장을 요구하는 지역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열린 지방분권개헌국민회의 대구경북본부 행사 장면. /지방분권국민회의

그 차이에 대해 지방분권경남연대 안권욱 공동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법령에는 시행령까지 포함된다. 국회가 만든 법률뿐만 아니라 각 행정부처에서 만든 '부령'까지 지자체의 입법권을 제한해왔다. 특히 지방자치법 172조에는 중앙정부의 재의요구 권한까지 명시했다. 이를 어기면 제소할 수 있게 했다. 공익(개념 모호)을 현저히(기준 모호) 해한다고 판단되면 주무부처 장관이 재의결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공익'이나 '현저히'라는 기준은 모호하다. 결국, 부령의 범위를 벗어나 예규· 훈령·고시·일일명령·편람까지 법령과 동일한 기능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법률은 대통령령보다 앞선다. 지자체의 의사결정 권한이 중앙정부의 자의적 판단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반면, 전국 지방분권운동 연대단체인 지방분권국민회의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지금과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먼저 자치입법권의 범위를 정하는 헌법상 규정이 없어 지방분권이 작동할 수 없다. 지방의 다양성이 요구되는 경우에 지방정부가 국가법률과 달리 정할 수 있는 변형입법권도 없다. 국가법률의 위임이 없으면 지방정부는 조례를 정할 수 없어 활동을 못하도록 손발이 묶이게 된다. '법령의 범위 내에서'를 '법률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에서'로 개선하였다고 하지만 국가 법률에서 광범위하고 세부적으로 규정하여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에 위임하게 되면 지금과 같이 여전히 국가 법률에 종속적인 조례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자치재정권으로 언급한 '지방세 조례주의'도 자치입법권의 제약으로 인해 그 의미가 거의 없게 된다."

자치재정권

자치재정권은 지방자치단체에 '돈'을 보장하는 것이다. 현재 국세:지방세 8:2의 구조, 국고보조금으로 지자체를 길들이는 현실에서 지방자치는 꿈이다. 자치재정권 보장이 이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개헌안에는 '지방세 조례주의'를 도입해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에서' 자치세의 종목과 세율·징수 방법 등에 관한 조례를 정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누리과정 사태'와 같이 정책시행과 재원조달의 불일치로 인해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서로 재정 부담을 떠넘기는 사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자치사무 수행에 필요한 경비는 지방정부가, 국가 또는 다른 지방정부 위임사무 집행에 필요한 비용은 그 국가 또는 다른 지방정부가 부담'하는 내용의 규정을 신설했다.

20.jpg

안권욱 공동대표는 이를 획기적으로 평가했다.

"지방세조례주의 채택은 획기적이다. 현행 법률은 지방재정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자치재정권 0'라고 보면 된다. 현행 헌법 117조 1항에 '지자체는 재산을 관리할 수 있으며…'로 돼 있지만, 그 재산은 건물·토지·동산 같은 공유재산이다. 재정권 언급은 없다. 지방세조례주의가 헌법에 명시되면 과세 대상과 표준을 조례로 정할 수 있다. 과세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 하나 획기적인 점은 재정조정제도다. 지금은 수직적 일방 조정만 있다. 이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양 지방정부 간 두 방향으로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지방분권국민회의는 "지방세조례주의도 자치입법권의 제약으로 인해 그 의미가 거의 없다"며 부정했다. 법률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지방정부의 과세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방분권국가 지향 명시

대통령 개헌안을 설명한 조국 민정수석이 가장 먼저 내세운 것이 헌법 제1조 3항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고 명시한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가 쓰는 '지방자치단체', '지방자치단체 집행기관' 명칭을 '지방정부', '지방행정부'로 바꿔 중앙정부와 대등함을 나타낼 것이라는 점도 그렇다. 국가와 지방정부 간, 지방정부 상호 간 사무의 배분은 주민에게 가까운 지방정부가 우선하고, 중앙정부가 이를 보충하는 내용의 '사무 보충성의 원칙'을 법률로 정해 자치행정권을 강화한다는 점도 추가됐다. 또, 지방정부의 자치권이 주민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명시해 주민이 지방정부 조직·운영의 주체임을 명확히 한 점, 법률상 권리였던 주민발안·주민투표·주민소환 제도를 규정한 점, 대통령의 제2국무회의 공약에 따라 국가자치분권회의를 신설한 점도 대표적 지방분권 강화 규정으로 언급됐다.

이에 대해서도 지방분권국민회의는 "이런 내용이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려면 결국, 자치입법권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반복했다.

그러고는 "대통령이 헌법개정안을 발의하기 전에 지방의 손발을 풀기 위한 자치입법권의 대폭적인 보강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중앙집권적 권력구조는 여전히 유지되고, 지방정부는 국가의 하급기관으로 남게 된다"고 못박았다.

조국 수석은 이 지적에 "지방정부의 입법권 등을 국회 권한과 똑같게 해달라는 요구가 있는데 그건 대한민국 민주화 원리에 맞지 않다고 봤다. 연방제 국가라면 모르겠다. 각 지역에서 만든 조례나 자치법률이 전국적 선거로 뽑은 국회의원이 만든 법률과 같거나 우위에 있다면 연방공화국과 다름없다"고 지난 21일 밝혔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