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 가는 3·15 정신'문화 콘텐츠로 재탄생
4일간 관객 2700명 마산 찾아…지역 자산 확대 기회로

마지막을 알리는 배우들의 합창이 끝나면서 공연장은 박수와 환호 소리로 가득 찼다. 단순히 끝났기 때문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것이었다. 끊임없이 훌쩍이면서도 머리 위로 손을 치켜들어 손뼉을 치는 관객들의 모습들이 이를 증명한다.

24일 오후 4시 7회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린 연극 <너의 역사>(각본 이해제, 연출 문종근)는 완성도 높게 잘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정교한 무대와 뮤지컬 요소를 도입한 빠른 진행으로 몰입도를 높이면서도 세심한 서사로 감정을 자극한다. 21일부터 4일간 다녀간 관객이 2700여 명으로 나름 흥행에도 성공한 편이다.

연극은 3·15의거가 일어난 시대배경과 당시 시위에 참여한 인물들을 소개하는 데 초반 14분 정도를 할애한다. 특별하지 않은, 아주 보통인 사람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던 사람들이 불의와 그릇됨에 항거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장면 전환이 빠르고 여러 인물이 순식간에 등장하기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지나치게 설명이 나열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연출을 맡은 문종근 객석과 무대 대표는 "작품에는 감정뿐 아니라 정보 전달도 중요한 요소"라며 "시대 상황과 시위자들이 추구했던 가치를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연극에서 배우 21명이 1인 다역을 맡으며 무대 구석구석을 누빈다. 그러면서도 세심한 동선, 자막, 무대 장치가 극의 현실감을 살린다. 여기에 뮤지컬처럼 춤과 노래를 곁들여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예를 들어 시내버스 장면에서 급정거를 하거나, 타이어 펑크 난 부분, 그리고 이어지는 배우들의 노래와 춤 같은 것이다. 또 연극은 깨알 같은 소재로 웃음을 주기도 한다. 극 중 무학에서 만드는 '좋은데이' 소주를 빗대어 "오늘 진짜 좋은 데이네! 뭐라카노 좋은데이? 그거 한참 있다 나오는 긴데…"하는 대목이 그렇다. 원래는 "아, 기분 좋네" 정도였던 대사를 연습과정에서 바꿨다고 한다. 지역에서 하는 공연인 만큼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자는 취지다.

이번 공연은 지역 배우들에게도 큰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배우 구성은 오디션으로 선발한 서울 지역 뮤지컬 배우가 12명, 나머지는 객석과 무대 배우를 캐스팅했다. 그만큼 뮤지컬 요소가 중요한 부분이다. 지역에서는 이처럼 무대 전체를 알뜰하게 사용하는 연극을 할 기회가 거의 없다. 이에 앞서 제작비 문제로 시도조차 못 할 가능성이 크다.

배우 21명이 무대 전체를 누볐던 연극 <너의 역사>. /극단 객석과 무대

연극 <너의 역사>는 '3·15의거 58주년 기념공연'으로 준비된 것이다. 당연하게도 1960년 3월 15일 당시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에 반발해 마산에서 일어난 3·15의거를 소재로 한다. 하지만,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어느 시대나 어느 장소에서도 있음 직한 보편성을 띤다. 바로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용기와 이를 통해 얻게 되는 삶의 진정성이다. 부산, 광주에서 온 연극인들이 <너의 역사>를 보며 부마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연상된다고 한 이유다.

연극을 만든 마산 극단 '객석과무대'는 앞으로 이 연극을 정례화할 계획이다. 우선은 경남 지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잘 다듬으면 전국 무대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너의 역사>는 확실히 가슴을 벅차게 하는 연극이다.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김주열과 오성원의 일기는 이들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은 3월 15일 끝난다. 하지만, 불의와 그릇됨을 바로잡고자 하는 이들의 정신을 사람들이 이어받으면서 너의 일기는 너의 역사가 된다. 그리고 연극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지금, 우리가 넘어야 할 불의와 그릇됨은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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