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이 생활이다 누구나 예술가다
취미삼아 그림 그려 전시회 열고 책 집필·유통도

누구나 쓰고 그린다. 책을 내고 전시회를 연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흐릿하다. 이는 아마추어 예술인, 문화예술 동아리를 지원하는 '생활문화' 사업 덕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는 '아무나' 창작 활동을 하는 시대에 맞춰 관련 법('지역문화진흥법' 등)을 만들었다. 이제 예술은 일상에서 분리된 고귀한 영역에 있지 않다. 시민 모두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이다. 주체성을 찾은 예술이 됐다. 이 중심에 선 누구나를 만났다.

◇나를 위한 전시회 이벤트

지난달 24일 창원 커피빈에 그림이 내걸렸다. '에뚜아 색연필 그룹전'이라는 제목이다. 안혜원, 강수진, 김지현 등 9명의 이름도 달렸다.

이들은 일반 시민들이다. 9명 중 안혜원 일러스트레이터를 제외하면 모두 예술을 업으로 삼지 않는다. 8명은 문화공방 에뚜아의 '색연필화 취미활동'에 참여해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전문 예술가와 구분되는 평범한 누구나다.

윤혜나(39·중학교 교사) 씨는 "그림을 못 그리지만 재미있다. 1년 가까이 에뚜아에서 색연필을 잡는다. 색연필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도구다. 색칠을 하면서 이러한 느낌을 온전히 받는다. 위로를 받고 치유가 된다. 이를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에뚜아의 색연필화 취미활동을 이끄는 안혜원 작가가 전시회를 기획했을 때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동안 그렸던 여러 그림 중 몇 개를 골라 액자에 넣고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유치원에서 일하는 김지현(39) 씨는 "나만을 위한 유일한 시간이 전시회라는 이벤트가 되어 기뻤다. 작품을 보러 온 가족들에게서 큰 격려를 받았다"고 소감을 말했다.

창동예술촌에 있는 책방 산·책 모습. 누구나 쓴 책을 만날 수 있다. 독립출판물이 300권 가까이 진열되어 있다. /이미지 기자

일반 시민들에게 생애 첫 전시회를 안겨준 안 작가는 "취미활동에 오는 분들 대부분이 그림을 못 그린다, 안 그려봤다는 말부터 한다. 하지만 상관 없다. 개인의 취향 따라 선을 긋고 색을 칠하면 된다. 정해진 답이 없다"며 "전시회 반응도 좋았다. 작품 몇 개 판매됐다"고 했다.

그녀는 지역에서 일러스트에 대한 관심을 취미활동으로 유도한다. 안 작가는 '대중화'는 곧 전문 예술가에 대한 평가를 유도하고 작품 질에 대한 논의를 활발하게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문가 중심을 벗어나려는 문화예술은 전문가를 소외하고 위협하는 형태가 아니라 오히려 예술에 대한 취향과 감상 능력을 높인다고 했다.

◇문단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

창원 창동예술촌에 있는 책방 '산·책'에 들어서면 독립출판물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다. 책 모양과 크기가 가지각색이다. 책장을 넘기자 책을 쓰는 사람과 이유를 하나로 모을 수 없다.

'이 책을 정의한다면 소설가 지망생의 에세이 도전기라고 할 수 있겠다. …(중략)언제든 글을 쓸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에 치였을 때 글은커녕 나를 돌아볼 시간도 없었다'라고 머리말을 쓴 <나는 불행하면 글을 쓴다>의 지은이 김후란 씨. 그는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집필, 편집, 디자인, 제작, 유통까지 직접 해내며 지난해 9월 1쇄, 11월 2쇄를 발행했다.

주로 사무실 밖 현장에서 일하는 광고인 배강일 씨가 쓴 <조용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2015년에 공직자가 되어 <주무관 일기>를 펴낸 도영 씨 등 하나같이 같지 않은 사람들은 저마다 책을 펴냈다.

시민과 색연필 그룹전을 연 안혜원 일러스트레이터. /이미지 기자

산·책에서 만날 수 있는 수백 명의 글쓴이. 이들은 왜 글을 쓰고 책을 낼까?

함께 만들어가는 문학 매거진이라고 밝힌 <옴니글로>로 살짝 엿볼 수 있다. 소소한 일상을 글로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표방하는 <옴니글로>는 문학이 던지는 일방적인 메시지가 아닌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책이 되고자 한다.

또 <인디문학 1호점 소설집>을 넘겨보면 윤태원 씨는 "자아성찰? 독백? '옆집에 사람이 산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300페이지가 넘도록 한결같이 재미없는 문자들을 나열해 놓는 메이저 문단 소설을 정말 혐오한다. 하지만 요상하게도 한국의 '권위 있는' 대형 출판사와 신문사들은 대체로 그런 재미없는 소설들을 선호한다"고 말하며 "자신감을 가지고 내 단편소설을 엮어냈다"고 당당히 밝혔다.

<동네에 남아도는 아가씨>를 펴낸 JUN도 "우리나라는 문학이라는, 글쓰기라는 욕구를 어떤 등용문으로 통과하려는 의식이 강하다. 나도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내 작업, 내가 좋아서 하는 것에 굳이 공식을 끼워 넣어야 할까"라고 했다.

이들은 어떤 일을 하든 자신 안에 숨 쉬는 예술성을 끌어올리고 일상 예술을 하고 있었다.

이현정 산·책 팀장은 "독립출판물이 300권 가까이다. 매달 쏟아져나오고 사라지고 있다.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지 않고 비례 관계도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이가 도전해 쓰고 실패해 중단하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이들을 응원해 책을 찾아 읽고 있다"고 설명했다.

창원 커피빈에서 열렸던 '에뚜아 색연필 그룹전' 모습. /에뚜아

◇일상 예술이 곧 생활문화

지난해 말 창동예술촌 예술학교 사진학과를 운영하는 강순태 사진가와 수강생 5명이 모여 만든 '도시락'이 창립했고 창원대 미래융합대학 평생교육원에서 교육받은 '사림필우회' 회원을 주축으로 '(사)한국서가협회 경남지회 성산지부'가 생겨났다.

창원문화재단은 시민합창단 운영, 청년예비기획자 발굴, 거리아티스트 지원 등 여러 사업을 펼치며 단순히 보고 듣고 감상하는 것을 넘어서 시민이 직접 참여해 즐기는 문화적 소통을 재단 핵심 키워드로 정했다.

이렇게 소개된 것들은 아주 단순하고 작은 예에 불과하다.

일상에서 분리한 권위의식에 사로잡힌 예술이 아니라 우위를 지우고 너와 나를 연결하고 우리를 이해하는 데 이바지하는 예술. 누구나 쓰고 그리고 호평받는 예술은 이미 시작됐다.

함께 만들어 가는 문학 매거진을 표방하는 <옴니글로> 표지. /옴니글로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